EP09. 조금 늦어도 괜찮아! 멈추지만 않으면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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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일만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
하나의 몸으로는 부족해보일 만큼 여러가지 일을 해내고 계신 선배님!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뉴스레터 마지막에 Bridge 굿즈 소식도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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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약 36년간 교육 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2년 전에 명예퇴직을 했고, 현재는 교육 행정학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미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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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일용직 공무원으로 시작했어요. 요즘에는 일용직이라는 개념이 보
편화 되어있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았었죠. 그 이후에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오랫동안 일했고, 시간이 흘러 기능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제한경쟁임용시험이 시행됐었는데요. 3수만에 합격해서 2011년에 임용됐어요. 오랜 시간을 한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같은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업무와 관련하여 강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는데, 누군가를 돕고 알려주는 일이 저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육행정직 공무원의 삶을 세상에 드러내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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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행정실이 있잖아요? 쉽게 말하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학교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에요.(사실 헌트는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났어요..😅) 학교 시설물 관리부터 학교 운영에 소요되는 각종 예산을 수립하고, 지출하고, 학교에서 일하는 인력을 관리하는 등 전반적인 업무를 두루두루 다 하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다 한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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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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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좋았어요. 제일 좋은 점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거죠. 아이들이 선생님 심부름으로 행정실에 오면 단순히 필요한 것을 주고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소통하려고 했었어요. 제가 주로 근무했던 곳이 시골의 작은 학교들이어서 전교생을 다 알고 있었거든요. 결손 가정 자녀들도 많다 보니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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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박사 과정을 밟아가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소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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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죠.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 생활까지 하다 보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접어두고 있었어요. 둘째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이제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공부가 하고 싶다’고 이어져서 방송통신대학교의 문을 두드렸어요.
방송대에서는 청소년교육학을 전공했는데요,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게 너무 즐거워서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4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어요. 대학 재학 중에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 진학도 생각했지만, 사실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잠시 미뤄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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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만으로도 하루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거라 퇴근 후에 대학 생활까지 병행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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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그렇게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 방송대를 다니고 싶다고 해서 저의 경험을 토대로 알려주었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기회에 저도 다시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한번 더 방송대에 입학하게 되었죠.
이번에는 농학과로 입학을 했는데, 사실 농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채로 들어갔는데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재밌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러 오는 분들이 많다 보니 서로 공감대도 잘 맞아서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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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하신 것도 대단한데, 전혀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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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은 달랐지만, 그래도 이미 공부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을 도와
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처음 대학생활을 할 때는 정말 혼자만의 싸움이었는데, 이번에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스터디 모임을 이끌면서 동기들과 퇴근 후에 함께 공부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제가 경험했던 과정을 다른 동기들도 똑같이 겪을 거라는 생각에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학습자료를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나누는 일이 저한테는 너무 신나는 일이었어요.
농학과를 다닐 때는 공부하는 것도 좋았지만 각종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동기들과 교류하고, 기말시험을 치고 나면 1박2일로 MT를 하는 등 대학생활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때 만난 동기들과는 지금까지도 분기별로 정기 모임을 하면서 자주 소통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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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도 벅차셨을 텐데, 본인이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동기들이 겪지 않도록 대가없이 도와주셨다는 게 멋있으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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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저도 그 사이에서 얻는 에너지들이 많아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다시 1학년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이 저한테 무척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다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의 칭찬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됐었는데요, “ 너 정말 강의 잘한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대학 강단에 서면 좋을 것 같아.” 그 조언들이 저에게는 무척 자극이 됐던 거 같아요. 그래서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경북대학교 교육행정학 석사과정에 지원했고, 합격이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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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직장생활과 더불어 학사, 석사 세 가지를 동시에 하셨던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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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때는 정말 제 마음속에서 열정이 막 뿜어져 나오다 보니 뭔가에 이끌려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가며 공부했던 거 같아요. 출퇴근길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하면서도 USB에 담긴 강의 파일을 들으며 잠시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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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도 가끔 지칠 때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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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대학원을 갔다가 집에 오면 보통 밤 11시 정도가 돼요. 저희 집이 시골 전원주택이다 보니 그 시간이 되면 사방이 캄캄해요. 캄캄한 밤하늘에서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별들이 항상 저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이미희!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거 같아서 피곤함도 이겨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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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심히 사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선배님만의 꿈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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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예전에는 막연했었죠. 그러다가 일을 하면서 직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거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동기들에게 공부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게라도 저의 꿈이 구체화돼서 지금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2021년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학회지 논문을 쓰고 있는데요.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학회지에 2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야 해요. 지난해에 1편이 게재되고 지금은 두 번째 논문을 투고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요. 사실 이 논문은 일 년 가까이 붙들고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고 있는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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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고 계시지만 분명 선배님만의 삶의 지혜와 경험으로 충분히 극복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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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계속 시간이 지연되다보니 저도 사람인지라 지치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는 말 아시죠?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오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에요. 이 말처럼 간절히 바라고 계속 도전하다보면 세상에 안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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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만의 슬럼프 극복을 위한 취미 생활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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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 생활이 있던데, 저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남들 있는 취미 하나 없었어요. 그나마 가끔 책 읽는 게 취미 아닌 취미였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무언가에 빠지면 쉽게 빠지는 반면 싫증도 쉽게 내는 편인데요, 늦게 시작한 공부는 취미가 된지 오래고요, 또 하나의 취미는 영탁이라는 가수를 덕질하는 거예요.
예전부터 노래 듣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냥 노래만 좋았거든요? 근데, 이 영탁이라는 가수는 노래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있죠. 공부하다가 힘들고 지칠 때 그의 노래 한 소절이, 그의 미소 한 조각이 저에게 위안을 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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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이 선배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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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물론 끝내주게 잘하지만,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박영탁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저에게는 또 다른 자극을 주고 있어요. 15년이 넘는 무명 생활을 이겨내고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지금의 영탁이 됐거든요? 그 사람이 고통의 시간들을 이겨내고 자신을 닦아나가는 것처럼 누구든 꾸준히 노력하면 안 될것이 없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렵게 성공했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어쩌면 저의 모습같기도 해서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의 성장이 마치 저의 성장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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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었나? 사랑의 콜센터’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영탁이 부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막으로 깔린 문구가 저에게 너무나 큰 위로를 주었어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 딱 제 얘기였어요. 늦게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성과가 나지 않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주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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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막연한 꿈만 꾸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마흔다섯에 시작한 공부를 통해 제 꿈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교단에 서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가 아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 제 꿈이에요. 그 꿈을 향한 여정이 힘들어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건, 그걸 함으로써 저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 꿈을 너무 늦게 찾은 것은 아닐까, 라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늦게라도 찾았다는 것이 감사해요. 자기가 진정 무엇을 잘 하는지,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를 깊이 고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래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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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인생의 1막을 마치고, 2막을 준비하고 계신 선배님을 보면서 인생의 끝은 본인이 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많건 적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된 거 같아요. 물론 여러 이유 때문에 잠시 미뤄둘 수는 있겠지만,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라는 말처럼 느려도 계속 나아가 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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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주
끊임없이 꿈을 찾아가시는 모습이 멋있으세요! 선배님의 에너지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거 같아요. 저는 요즘 큰 전시를 끝내고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는 시점에서 쉬고만 있었어요. 지칠 때 별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선배님의 이야기에 저도 지칠 때마다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것들이 님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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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저도 요즘 가끔 하는 일에 확신이 없거나, 진척이 없을 때 슬럼프가 오곤 하는데, 선배님 말씀처럼 묵묵히 간절히 바라면서 될 때까지 도전하는 방법이 정답인 것 같아요. 해야할 일을 꾸준히 하면서,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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