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플랫한 문화생활에선 플랫팀 이아름 기자가 책을 소개합니다😋 무려 모계 전승을 주제로 한 작품 모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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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매듭
<질긴 매듭>은 ‘모계 전승’을 주제로 다섯명의 작가가 쓴 단편을 엮은 앤솔로지입니다. 입주자님은 ‘모계 전승’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딸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무언가’의 개념은 너무 크고 희미해서 선뜻 구체적인 이미지로는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주근깨를 물려받았습니다. )
책을 기획한 길상효 작가는 ‘모계 전승’이라는 주제가 ‘모녀 서사’에서 확장된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모녀 서사’를 떠올리면 엄마와 딸 사이의 생활, 애정과 오해, 몰이해, 다투는 장면까지 쉽게 떠오르지만 ‘전승’이라는 개념은 여전치 낯설게 느껴집니다. ‘부계 전승’이라는 단어에서 많은 제도가 떠오르는 것과는 다르게요. 길 작가는 “모계와 모녀를 잇는다면 시간의 축과 방향성이 생성될 테고, 그것을 타고 흐르는 ‘무엇’이 이야기가 되어 스스로를 드러내리라 생각했다”고 밝힙니다. “더 많은 여성서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봄직한 시도였다”고 해요.
책에는 배경, 인물, 상황이 모두 다른 모계 전승이 등장합니다. 딸들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름답지도 애틋하지만도 않습니다. 한 대를 거쳐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에게 전해 받기도 해요. ‘질긴 매듭’이라는 제목처럼 이어받는 무언가는 질기고 질겨서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첫딸이 딸을 낳지 않으면 그 어머니가 죽는다. 첫딸은 딸을 낳아 어머니에게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딸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 딸의 딸이 다시 또 딸을 낳아 어머니의 목숨을 보장한다. 그렇게 여자에게서 여자로 생명이 이어진다. 여자가 웃으며 상냥하게 설명했다. “나는 너를 낳아서 내 엄마를 살렸어.”
-<엄마의 마음> 중에서
정보라 작가가 쓴 <엄마의 마음>에서 초경을 시작한 주인공 열세살 ‘완’은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에게서 “첫딸이 딸을 낳지 않으면 엄마가 죽는다”는 집안의 저주를 듣습니다. 완이 여지껏 어머니라고 믿었던 사람은 할머니였고, 친엄마는 “어서 딸을 낳아 나를 살리라”고 요구합니다. 그때부터 완은 검은 형체를 보고 날카로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어머니인줄 알았던 할머니 조차도 “빨리 해치우고 도망쳐”라고 요구하죠. 그러나 끝내 완은 결심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고, 엄마가 되지 않기로요. 완은 자기 대에서 핏줄을 끊는것이 “앞으로 결단코 태어나지 않을 아이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확신합니다.
‘첫딸이 딸을 낳아야 어머니의 삶이 보장되는 저주’는 한국사회에서 첫 딸과 딸을 낳은 여성이 받아온 시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들 하나만 낳으면… (모든것이 다 해결된다)’는 관념을 정면으로 비트는 저주입니다. 또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는 일’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도록 가르쳐온 사회에 대한 비난이기도 합니다. 정보라 작가는 이를 통해 “여성은 애 낳는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해요. “내 삶을 갉아먹는 존재들은 다 버려도 된다”고요.
아이를 태어나지 않게 하는 모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책에는 불임시술을 받으면 ‘인센티브’를 받는 제도가 있음에도 아이를 낳은 모성 또한 등장합니다. 배미주 작가의 <이삭은 바람을 안고 걷는다>의 ‘이삭’이 그렇습니다. 내적자원이 없는 몽골,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이삭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낳은 엄마는 결국, 이삭을 버리지만 그럼에도 이삭은 태어난 존재입니다. 답답하고, 느리고, 같은 말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삭은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노동자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엄마가 이삭을 두고 떠난 뒤에도 도도씨 옆에서 일상을 꾸립니다. 도도씨의 보살핌은 전통적인 가족보다 깊은 연대를 보여줍니다.
장르도 주제도 다른 두 작품에 담긴 ‘모계 전승’ 외에도 세 가지 이야기가 더 있는데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각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SF라는 장르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저인데요 흑흑😂)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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