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2회 (2021.04.28)

잘들 지내시나요?
소설 쓰는 김연수라고 합니다.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이젠 꽃잎이 흩날리네요. 이렇게 또 봄이 지나가나봅니다. 여름은 길어질 것이라던데, 과연 이번 여름은 또 어떨지……
언젠가 경영학과 교수들이 오랜 연구 끝에 알아낸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 옮겨볼게요.

과식과 과음을 피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음미하며 식사하고 늘 감사하기. 좋은 매트리스를 사서 편안하게 자고 신선한 공기 많이 마시기. 동료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평생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근무하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검소하게 살며 제일 좋은 것이 제일 마지막에 온다고 상상하기. 질투하지 않고, 겸손하며,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기.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날마다 조금씩 전진하기. 화내지 말고 용서를 구하고 연민을 실천하며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기.

다 아시는 얘기라구요? 그러게요.  이런 걸 알아내려고 책 한 권이나 쓰면서 연구를 했나 싶다가 아차차,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었어.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전 일단 매트리스부터 바꿨습니다. 여름이 길다 하니, 차차 다른 것도 바꿔보기로 하죠.
 
다가올 여름을 생각하며, 두 편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것도 소개해드릴게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다들 건강하시길.

💗 김연수 소설가의 첫번째 추천 시
사건과 갈등(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갈등이라는 게 뭐지, 소설을 쓰는 네가.
그러자 갈등이 생기는 기분.
 
맞은편 건물이 몇 층까지 올라가는지 못 보고 회사가 망할 때
그것이 갈등인가.
임종을 못 보고 깔깔대며 육개장을 먹을 때
그것은 갈등이 아닌가.
 
소설을 쓰는 네가 소설을 못 쓴다고 울고
나는 남 일인 것처럼 차를 마신다,
 
그러다 눈이 내렸고
눈이다, 그 소리에 강아지가 벌떡 일어났고
 
내리는 눈을 보고서 너는
 
임종이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
소설에 그렇게 썼다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네 소설 속에서 흰 천이 흔들리고 임종이 생기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주인공은
새로 지어지는 맞은편 건물을 덮은 파란 천을 바라보며 흰 천이 흔들리고 임종을 바라보았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갈등이란 아름답구나,
갈등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되고
 
창밖에 눈이 그친다
흰 천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렇게 내내 서 있어도 될까
 
이렇게 오래 사람인 척해도 될까
 
우리는 계속 사람인 척한다.
너는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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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쓰는 네가 소설을 못 쓴다고 울고라는 구절 때문에 이 시를 고른 것은 아니고, 실은 그러다 눈이 내렸고/ 눈이다, 그 소리에 강아지가 벌떡 일어났고라는 구절이 너무 귀여워서. 소설을 못 쓴다고 우는, 소설을 쓰는 너가 아니라 눈이다,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강아지에 감정이입이 됐기에. 어느 틈엔가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것에는 어떤 유감도 없다. 그러다 눈이 내린 날들, 그러나 비가 내린 날들, 그러다 바람이 불던 날들이 내 인생에 숱하게 지나갔다. 비록 그때마다 벌떡 일어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일으켜세운 것은 그러다 눈이 내리고 누군가 눈이다, 라고 외치는 소리 같은 것이었다. 덕분에 간신히 사람인 척하며 살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다 눈이 내리겠지, 그러다 비가 오겠지, 그러다 꽃이 피고, 그러다 꽃이 지겠지. 그때마다 누군가는 눈이다, 비다, 꽃이다, 라고 외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살아갈 날들에 대해 어떤 걱정도 없다. 그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아무 걱정도 없게 될 테니까.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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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소설가의 두번째 추천 시
서핑(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멀리까지 가기로 했다
 
발밑에 부드럽게 밀려오는 페이지를 보고 있다
 
바다 저편에서 파도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누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결국 잘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먹어치우는 사람이 있다
 
이곳이 인공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부드럽게 젖어 떠내려간다
 
다음 페이지, 밀려오는 또 그다음 페이지까지
👍 추천의 글
나는 이 세상의 비밀을 하나 알고 있다. 어쩌면 그건 비밀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의 첫머리에 그 비밀이 나와 있으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리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 만물을 만든 것과 같이, 우리의 작은 세상은 우리의 작은 말들이 만들 것이다. 작은 세상이나마, 이토록 날씨가 좋으니, 우리는 조금 더 멀리까지 가자, 고 쓰고 또 쓰자.
 
얼마 전,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란 책을 끝까지 읽은 뒤에야 나는 우리의 마지막이 다음과 같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덟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후, 미야노와 저는 참으로 많은 약속을 했습니다.

    “기대된다. 두근거려. 앞으로가.”
    “그러게. 두근거린다는 말이 딱 맞네.”
    “, 이기러 가자.”
    “무조건 이기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여름이 될 거야.”
    “최고의 여름이 될 거야.”
 
다음 페이지, 밀려오는 또 그다음 페이지까지 최고의 여름이 될 거야라고 쓰고 또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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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김금희 소설가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추천인은 바로 김금희 소설가입니다. 
그럼 모두,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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