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기업 현주소를 짚어주는 글만 모았습니다
찬비      "스타트업에서 일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찬비입니다.

지난 레터에서 할리우드의 파업을 다루었는데요, 파업은 (작가 조합 파업 시작 기준) 130일을 넘겨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영화 ⟪듄2⟫ 개봉이 연기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파업의 영향이 느껴지고 있어요. 지난 레터에서 수익보다 구독자를 늘려 주가를 올리는 데에 집중했던 넷플릭스의 기존 전략이 통하지 않는 시기가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사실 아마존이 만들어 실리콘밸리 전반에 퍼진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실리콘밸리 및 테크 기업의 사업 모델과 문화를 다루는 세 가지 읽을거리를 소개합니다. 명확히 한 가지 키워드로 공통점을 뽑아낼 순 없지만, 한때는 기발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당연해진 것들의 문제점을 짚는 글이라는 점이 유사합니다.
1. TV의 스트리밍 모델은 끝났다
2. 대량 해고를 밥 먹듯 하는 테크 업계
3. 펀더멘탈보다 비전을 중시하는 투자자들

📺 TV의 스트리밍 모델은 끝났다

© Vulture

할리우드 파업에서 가장 가까운 읽을거리부터 소개합니다. 이 글은 지난 6월, 벌쳐에서 OTT를 주로 다루는 조 애덜리안과 레인 브라운의 ‘The Binge Purge’입니다(파도에서 발행한 번역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어요). 부제는 매우 단도직입적입니다. “TV의 스트리밍 모델은 망가졌지만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해결 방식을 찾는 것은 호러 쇼와 같을 것이다.”


시작은 항상 그렇듯 넷플릭스입니다. 2013년,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첫 번째 시즌을 한 번에 공개하면서 시청자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보는 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콘텐츠에 투자해 왔습니다. 월스트리트는 수익성을 무시하고 성장에만 집중하는 넷플릭스를 두고 넷플릭스는 차세대 HBO가 아니라 차세대 테슬라라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컴캐스트 등의 엔터 업계 기업들은 넷플릭스에서 자사 콘텐츠를 빼와 자체적으로 OTT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엔터테인먼트를 하지 않던 아마존과 애플 역시 OTT 경쟁에 참전합니다. 지금 봤을 땐 이게 어떤 파국으로 갈지 선명히 보이지만, 당시 투자자들은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을 반겼습니다. 디즈니+를 런칭한 이후 100달러 근방에 머물던 디즈니 주가가 150달러까지 성장했을 정도이니까요. 


그 뒤는 이전 레터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선 수익을 내길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플랫폼들은 해고와 예산 삭감을 통해서 수익을 내려 안간힘을 씁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제작이 마무리된 작품도 취소되고 거물이 참여한 작품도 취소됩니다. 차기 시즌이 예고되었던 작품들 역시 없던 일로 됩니다.


이 글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라고 짚고 있는 것은 스트리밍 시대에서 ‘히트작으로 돈을 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드라마가 히트하게 되면 더 많은 시청자가 보기 때문에 광고 단가도 올라갔고, 타 방송사나 해외에 라이선스를 판매하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과거 히트 친 제작자는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제작자에게 주어지는 추가적인 보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죠. 제작자뿐 아니라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에 역시 히트친 만큼의 수익을 올리고 않습니다. OTT 회사들이 자신들의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만큼 구독자가 빠르게 모이진 않고 있기도 하고요. 넷플릭스가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해도 이전 미국 가정에서 케이블에 75달러씩 쓸 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벌던 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이 글에서 가장 놀라웠고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업계의 많은 이는 스트리밍 생태계가 결국 주요 플랫폼 네 개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케이블 TV를 희생시켜 그것을 고작 방송 독점으로 대체한 셈이다.” 제작자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도, OTT 플랫폼도 이전의 케이블TV 시대만큼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다시 TV의 시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현재의 넷플릭스 상황을 두 기자는 우버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해요. 우버 역시 벤처캐피털 투자를 통해 성장하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다양한 도시의 택시 시스템을 손상시켰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워졌을 때도 사람들은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서비스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빠르게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수익에 대한 고려 없이 대량으로 콘텐츠 업계에 투자했던 넷플릭스도 현재의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겠죠. 넷플릭스가 만든 상황임에도 책임은 공동이 져야 하고요.


파업이 어떤 식으로 종식되든 할리우드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한때 다양성이 꽃 피우던 영화/드라마들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플랫폼에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호러 쇼라고 느껴질 만큼 쉽진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대량 해고를 밥 먹듯 하는 테크 업계

위 기사를 읽고서 조경숙 작가의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여성 개발자로 일하는 글쓴이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테크 업계에 대한 관찰기인데요, IT업계 종사자이고 여성으로서 객관적인 언어로 묘사되는 익숙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이 책이 떠올랐던 이유는 ‘왜 테크 업계는 대량 해고를 밥 먹듯 할까' 챕터 때문이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빅테크는 수많은 사람을 해고해 왔습니다. 어거스트 레터에서도 많이 언급되었고, 당장 위 파트에서도 ‘수익을 내기 위해 해고와 예산 삭감을 했다'고 건조하게 썼죠.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어려운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왕왕 있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 닥친다면 ‘왕왕 있는 일’ 정도의 무게감이 아닐 겁니다. 
심지어 외국인 신분인데 해고를 당한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겠죠
글쓴이는 테크 업계에서 대량 해고가 자주 이뤄지는 이유가 성장을 위해 낙관주의에 휘둘려 공격적으로 채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당장 명확한 수익구조를 만들기보다, 일단 사용자를 끌어모아 시장에서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 방향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 하나라도 시장성에 들어맞는 길을 찾아보는 데 주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쓴이는 메타를 예시로 드는데요,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사명을 변경하고 수많은 직원을 새로 채용하며 메타버스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은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에 대한 강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 연구를 주로 하는 리얼리티 랩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결과 작년에는 1.1만 명을, 올 3월에는 또 1만 명을 해고했습니다. 경영진의 잘못된 낙관주의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책임진 것은 직원이었던 것입니다.

테크 업계에서는 J커브를 이루는 성장을 강조합니다. 창업자는 장밋빛 그림을 그림을 그려 투자자를 설득하고, 투자받은 금액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대규모 인원을 채용해 박차를 가합니다. ‘빨리 시도하고 빨리 실패하자'는 문화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것이든 하나만 대박 나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이나 서비스가 사회에 미칠 영향 같은 것은 고려되지 않는 거죠. 그런 점에서 '어떻게든 빨리 성장하는 것을 장려하는 지금의 문화가 과연 과연 바람직한가? 성공하면 장땡인 걸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빠르게 성장하지 않더라도 경영자의 철학 하에 탄탄하게 운영되는 회사가 더 높게 평가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동시에 ‘현실적으로 회사가 사회적인 결과까지 생각하도록 할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했어요.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회사에 지속 가능한 미래까지 고려해서 영리활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문화가 바뀌어서 빠르게 성장하기만 하는 회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받아들여지려면 회사가 지속 가능한 미래나 근로자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요. 현재의 체계 내에서 어떻게 해야 사회도 기업도 윈윈할 수 있을까요.
© 휴머니스트

저는 IT업계 종사자이긴 하지만 개발자는 아니어서 익숙했지만, 잘은 몰랐던 개발자의 세계를 알 수 있는 ‘2부: 업계 한복판에서 체감하는 테크 노동의 현실’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쓴이는 ‘이런 것도 모르냐?’ ‘이건 어차피 작동 안 할 거다'와 같은 엔지니어들의 독성 말투가 개인의 성향도 분명히 있겠지만, 빡빡한 일정과 과중한 업무 탓에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일 수도 있음을 짚고, 서비스의 연속성을 위해 개발자들이 당연하게 명절 연휴에 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묻습니다.


IT업계 종사자인 분들께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다른 분들께는 서비스의 뒷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 책을 추천해봅니다.

🤑 펀더멘탈보다 비전을 중시하는 투자자들

© No Mercy No Malice

‘Fake it till you make it(될 때까지 되는 척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스타트업 대표의 기본자세이기도 한데, 비전을 실제로 이뤄낸다면 대단한 게 되지만 이뤄내지 못하면 사기가 되는 마법의 문장입니다. 작년 1월 NYU 교수 스콧 갤러웨이가 썼고 최근 재발행한 레터에서는 위에서 이야기했던 스타트업 문화를 넘어서 실체가 없는 비전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에 대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가는 영업사원이고, 모든 영업사원은 이야기꾼입니다. 기업가는 미래를 앞당기고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상상력과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기업가와 사기꾼의 차이는 뭘까요? 기업가는 자신이 하는 말이 진짜라고 믿고 사기꾼은 가짜라는 걸 안다는 것? 사실 그사이의 선은 명쾌하게 그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창업자들은 과거에 이뤄내지 못한 다양한 발언들을 해왔습니다. 2013년에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 글래스가 대중화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2014년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프라임 멤버를 위해 더 좋은 핸드폰을 만들 수 있다고 선언했고, 2019년 일론 머스크는 1년 안에 완전 자율주행 차가 백만 대 이상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은 이를 현실화하진 못했지만 이들을 아무도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론에 ‘역대급 사기'라는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홈스는 테라노스에서 혈액 몇 방울로 각종 질병을 단번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올 5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요, 흥미롭게도 환자들을 속인 혐의에서는 무죄를 받았고,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비전을 현실화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를 물은 것으로, 위의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갤러웨이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비전과 사기 사이의 선은 뒤늦게 그어진다. 우리는 기업가들이 비전을 실현하는 데에 시간을 딱히 정해주지 않고, 우리가 시간이 다 됐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의 비전은 사기가 된다. 만약 홈스에게 5년이란 추가 시간과 함께 10억 달러가 추가로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급성 호흡기 증후군을 위한 가정용 검사기로 피봇했다면?” 


기업가치가 창업자들이 주창하는 비전과 스토리에 좌지우지될 때, 투자자들은 이 비전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게 됩니다. 누군가 비전에 의구심을 던지면 이단자로 몰기도 하고요. 사실 창업자들이 비전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은 투자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투자자들이 비전과 함께 펀더멘탈 즉, 기업의 내재 가치에 대한 평가도 함께 고려했다면 현재는 또 달라졌을 수 있겠죠. 갤러웨이의 글은 현재의 상황에 투자자들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IT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땐 양가적인 마음이 듭니다. 빠르게 시도하면서 '이게 되네?'하는 순간을 만날 땐 정말 짜릿하고 좋다가도, 다른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것들과 그로 인한 영향을 만나면 아무도 모를 불매를 결심하기도 해요. 하지만 대다수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겼기에 생긴 문제를 맞닥뜨린 지금, 정말 당연한지를 되짚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서도 좋은 세상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요?

엘리자베스 홈즈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한번 제대로 다뤄볼 예정입니다. 오늘 레터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추천할 읽을 거리가 있다면 하단의 피드백을 통해 전달해주세요 🙃

이영지 | 엄청 커다란 모기가 나의 발을 물었어

에디터 <찬비>의 코멘트

2년 전과 똑같이... 저는 ⟪스우파2⟫를 보고 있습니다 😇 영상들 다 좋지만 젤 좋은 영지의 모기춤 보고 가실게요 🦟💚 과연 제 최애 팀은 오늘 탈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엠넷 제발 탈락을 멈춰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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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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