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는 인생 한방을 노린다. 골방에서 라면을 먹어가며 주식시장 내공을 쌓고 있다. 그러다 오메가정보통신으로 수천만 원을 벌게 된 강현수는 이렇게 외친다.
“한 번에 1,000만 원, 통장에 10억 찍는 날, 이 생활도 쫑이다.”
노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충분한 돈을 번 뒤 조기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라고 부른다. 즉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일찍 은퇴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현업에서 은퇴는 5060세대가 하지만 이보다 빨리 30대 말이나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은퇴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파이어족은 원래 회사생활을 하는 20대부터 소비를 줄이고 수입의 70~80% 이상을 저축하는 등 극단적으로 절약을 해서 일찍 은퇴해 자신의 삶을 즐기는 사람을 의미했다. 즉 원하는 목표액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은 생활비 절약을 위해 주택 규모를 줄이고, 오래된 차를 타고, 외식과 여행을 줄이는 것은 물론 먹거리를 스스로 재배하기도 한다.
파이어 운동은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확산됐는데, 방법론은 달라졌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어진 경제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들은 저금리·저성장시대를 맞아 과거처럼 돈을 절약해 저축하는 것으로는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일에 대한 불만족도, 높은 청년실업률,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 등도 차분히 돈을 모으는 것을 어렵게 했다. 이 세대들로 인해 주식, 가상통화, 부동산 등 자산투자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서 빨리 은퇴하는 것으로 파이어 운동의 의미가 바뀌게 됐다.
미국 파이어족이 목표로 하는 노후자금은 우리 돈 약 11억~22억 원 정도다. 이 돈을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연 5~6%의 수익을 얻어 생활비로 사용한다. 2021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이 평균 12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10억 원은 크지 않은 돈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금 10억 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이 돈을 굴려서 연간 5% 수익률을 낸다면 연간 5,00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 웬만한 직장인들의 한 해 연봉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이 10억, 20억 원이나 되는 집들을 엉덩이에 깔고 살고 있다는 건 비극일 수도 있다.
영화 속 현수는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집주인이 집을 싸게 내놔서 집을 사는 바람에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화가 난 현수는 큰 소리로 따진다. “과천 촌구석이 무슨 비전이 있다고 집을 덜컥 사. 이 동네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안 올라요. 엄마가 부동산을 알어?” 이 영화는 2009년에 제작됐다. 현재 과천 이 아파트의 집값은 얼마일까? 집값이 조정을 받았다고 해도 역시 높다. 영화 <작전>에 붙은 댓글은 이렇다. “역시 집이다. 엄마 말 잘 들어.” 부동산이 자산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가계의 웃픈 현실을 대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