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 👀

이번 2주 간은 자유주제, 자유형식으로

여섯 작가들의 제각각 개성을 담은 ⭐특편⭐이 발송됩니다!


오늘, 마지막 특별편은 

안착한여성들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편도 기대하고 읽어주세요😃



이하녕이 쓰는 안착한여성들 비하인드

👩‍🚀😇🛸  

  나는 전부터 시험 기간만 되면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는 했다. 독서실 인터넷 강의용 pc에 하루 종일 앉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첫 화부터 정주행한다거나, 19살 먹고 한때 유명했던 귀여니 소설을 보면서 운다거나, 어느 날은 야자하다 말고 뛰쳐나와 뒷산을 탄다거나.

 

  아무도 몰랐겠지만 안착한여성들 역시 그런 식으로 급조되었다. 어느 시험 기간, 열람실에서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을 공부하다가 말고 갑자기 메일링을 하고 싶어졌다. 에세이면 좋을 것 거 같았다. 모임을 만들 거면 여자끼리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6월 9일, 그리하야 갑작스럽게 탄생한 '안착한여성들'. 그날 당장 모집글을 쓰고 디자인 템플릿 사이트에서 포스터도 얼기설기 만들었다. 더 고민해봤자 고민만 할 것 같아서 눈 딱 감고 그냥 그대로 올렸다. 시험 기간의 미친 짓 중 하나로 남을 것인가, 훗날 돌아볼 전설의 첫 발자국이 될 것인가.

 


  가장 걱정했던 건 무관심이었다. 포스터도 못생기고 활동 내용도 부실하고, 무엇보다 내가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닌데 누가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할까? 모집글을 올리면서 ‘이하녕의 편지’를 첨부했는데 그 글을 내릴까 말까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올리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5명을 모집하기로 했는데 5명도 채 지원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던 우려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고 많은 지원자를 받았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땐 흥분이 최고조였다. '이런 귀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누추한 곳에...?' 그 지원서들을 받은 것만으로도 뭔가가 이뤄질 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대학교 동아리 플랫폼에 홍보글을 게시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저 여자들이 모여서 글을 쓰는 모임이라는 이유로 악의를 표하는 이들이 있었다. 여자끼리 글을 쓰겠다는 말이 공격적으로 들렸던 건지, 착하지 않은 여자라는 모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게시글에 정체 모를 댓글들이 달렸다. 아무런 코멘트 없이 ‘ㅋㅋㅋㅋㅋ’만 연달아 잔뜩 달려 내가 뭔가 잘못 쓴 걸까 덜컥 놀랐다. 알고 보니 그런 건 페미니즘 관련 모임 모집글에 흔히 달리는 댓글이었다. “페미니즘은 뚱뚱한(또는 못생긴) 여자의 마지막 보루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댓글도 달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가 보니 최근에도 ”남자도 가입하고 싶어요. 배워보고 싶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단순히 여자끼리 글을 쓰면 더 편할 거란 생각으로 성별 제한을 걸었던 내 결정에 의미와 근거가 부여되는 느낌이었다. 여자끼리 글을 쓴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필요하겠네.

  


  6월 26일. 안착한여성들의 첫 만남이었다. 얼굴을 보기에 앞서 글로 먼저 만난 사이는 처음이라 떨렸다. 우리는 서울 동서남북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한가운데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는 카페도 없어서 한두 시간은 걸려 카페를 골랐다. 최종 선택된 장소는 을지로의 ’루이스의 사물들‘이라는 카페였다. 나는 나름 오티 준비를 하겠다고 일찍 도착해서 카페를 구경했다.


 '루이스의 사물들'은 전형적인 을지로 카페답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골목에 박혀 있었고, 간판이 작아 찾기 어려웠다.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가구 하나하나, 소품 하나하나 신경 쓴 듯한 공간이 나왔다. 선반에 놓여있는 컵 중 하나를 골라 가져가면 그 컵에 음료를 담아주었다.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커피 맛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고, 다른 안착한여성들도 나처럼 이곳에 와서 기분이 좋았으면 했다.

 

  안착한 여성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어떤 사람은 글의 분위기가 그대로 닮아있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글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들 글에 대해서는 많게든 적게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티는 내가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고 통지하는 것이 아닌 ’우리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를 묻는 자리에 더 가까웠는데, 고맙게도 모두 그렇게 허술한 안착한여성들을 기꺼이 함께 이끌고 싶어 했다.


 그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 어떤 모임을 기대하는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혹은 수줍게 이야기하는 그 반짝임이 너무 반가웠고 설렜다. 속으로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착한여성들의 메일링 방식, 디자인, 합평 분위기 어느 하나 내가 혼자 주도해서 만들어낸 것이 없다. 전부 안착한 여성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끈기 없는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글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일 것이다.

  대학생이 대다수인 안착한여성들은 학기 중에는 천천히 달린다. 방학에 처음 만나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썼는데 지금은 이주일에 하나씩 완성한다. 그럼에도 조금 벅찰 때도 있다. 이주간 특별편을 발송한 것도 사실 시험 기간 템포 조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착한여성들은 느려질지언정 멈추지는 않으려 한다. 빠른 것보다 오래 가는 것이 더 귀중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나는 안착한여성들과 그렇게 느리고 질기게 가고 싶다. 


  다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읽을지 궁금하다. 안착한여성들을 읽는 게 요즘의 낙이라고 말해주신 구독자가 계셨다. 평범해보일 수도 있는 그 말이 마음에 진득히 박혀있다. 누군가의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지치거나 짜증나는 일을 잠깐이라도 잊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일은 없는 듯 하다. 부디 누군가의 하루에 자그마한 힘이라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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