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김종민입니다. 코로나가 온 세계를 긴장하게 만들던 2020년 초 저는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에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일 년에 열 번이 넘는 여행을 다니며 전세계의 XR 작품들과 XR 피플을 만나고 다니던 그 때가 마치 지난 세기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즈음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뉴스레터를 통해 짧은 리뷰를 보내드리기도 했었죠)

저는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축제와 온라인에서 열리는 축제는 무엇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SXSW가 2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본격적으로 열면서 전세계에서 많은 친구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랜 수감생활에서 풀려난 듯 모두 들떠 있었고, 마음은 더 열려 있었으며, 반가움과 설렘과 즐거움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즉각적이고 정성어린 피드백을 주고 받았구요. 그동안 온라인 축제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주고 받았지만, 우리에게 결여되었던 것은 이런 비언어적인 감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빛, 음성, 몸짓 등 우리가 소통하면서 주고 받는 것은 아직 디지털로 치환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온전히 전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휴스턴에 우버를 타고 가다
오늘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SXSW 소식은 아닙니다. 바로 휴스턴에서 열리고 있는 <인피니트(The Infinite)> 전시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캐나다의 대표적인 XR 스튜디오 펠릭스 앤 폴(Felix and Paul)은 NASA와 협력해서 우주 정거장에 VR 카메라를 실어 보내게 됩니다.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된 매우 귀한 경험입니다. 그 경험을 실감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프로젝트의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환호했습니다. 역시 펠릭스 앤 폴이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바로 <Space Explorers : The ISS Experience>입니다. ISS는 International Space Station, 즉 국제 우주정거장의 약자이구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저는 그 동안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 많은 XR 창작자들이 6DOF(6축 자유도)의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360 영상들은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SF 영화에서 보아왔던 다이내믹한 스토리나 영상이 아니었고 잔잔한 인터뷰 위주의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귀한 영상이지만 말입니다.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 공식 포스터
이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가 파이센터(Phi Centre)의 협력으로 재탄생한 전시가 바로 <인피니트>입니다. 파이센터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트센터이자, XR 전시에 진심인 곳입니다. 그 동안 파이센터가 만들어 온 전시는 동료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에게 영감과 놀라움을 선사해왔죠. SXSW에서 만난 파이센터의 디렉터 미리엄 아샤(Myriam Achard)가 <인피니트>전시 소식을 전해주면서 근처에서 하는 거니 꼭 한번 들러보라고 초청을 해주었습니다. 믿고 보는 파이센터 전시니까 흔쾌히 초청을 수락했죠. 전시는 SXSW가 열리고 있는 오스틴 바로 옆동네 휴스턴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휴스턴은 오스틴에 딱 붙어있지만 차로는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남은 일정은 하루,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해오지 않은 터에 렌트를 할 수는 없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비용이나 시간 상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우버를 타고 휴스턴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100명이 한번에 볼 수 있는 전시라고 미리엄이 자랑을 했는데, 그럼 100명이 360 영상을 단체로 감상하는 것인가? 기대반 걱정반의 마음으로 우버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버 기사도 역시 걱정이 많은 표정으로 휴스턴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전시를 본 후에 제가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으면 빈 차로 오스틴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거든요.
인피니트 : 우주 정거장을 걷다!
더 인피니트 전시 소개영상
<인피니트>는 커다란 대형 컨테이너 건물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빈 공간에 전시 프론트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전시 입장을 도와주는 안내 스태프가 마치 우주인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을 맞이하듯이 친절하지만 기계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하얀 테두리의 입구가 보이는데, 그 테두리의 빛이 너무 밝아서 저 너머의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해놓았습니다.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헤드셋 착용에서부터 XR을 체험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이해하기 쉬운 인포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줍니다. 역시 파이센터는 작은 디테일 하나도 꼼꼼이 챙기고 있구나! 그리고 천천히 빛의 문을 통과해서 들어갑니다.

빛의 문을 통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사실은 엘리베이터가 아니지만 문 틈새에 LED 라이트를 점멸하도록 배치해서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줍니다.) 마침내 문이 열리면 우주 정거장으로 향하는 우주인이 된 것처럼 도열해서 헤드셋을 하나씩 쓰게 됩니다. 헤드셋은 우주선 탑승을 위해 준비된 어떤 시스템의 일부처럼 자동으로 캡슐에 담긴 모습으로 도열해 있습니다. 관객이 그 앞에 서면 자동으로 캡슐이 열리고, 우주복 헬멧을 쓰듯이 하나씩 잡아서 착용하게 됩니다. 일일이 스텝들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미 우주선에 오르기 전에 영상으로 교육을 받은 데다가, 쓰기 좋도록 잘 준비되어 있었거든요. 그렇죠. 우주인이 자기 복장 하나 정도는 스스로 챙기는 것이 맞죠. 헤드셋을 착용하고 나면 선임처럼 보이는 스탭이 헤드셋 앞에 붙어 있는 QR을 하나씩 스캔합니다. 신기하게도 스캔을 마친 관객은 헤드셋 안에서 그 형체가 드러납니다. 서로의 위치를 아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죠. 거기서 처음 만난 관객들은 가슴에 푸른 빛이 빛나고, 저와 함께 온 동료는 금빛을 품게 됩니다. 서로의 위치와 형체는 매우 정확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인이 된 듯한 시야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서는 우주로 걸어들어갈 것을 명령받습니다. 검은 공간에 작은 빛으로 안내된 허공의 길을 따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깁니다. 약간은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앞 사람을 살짝 만져보면 시스템 오류로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정확하네요. 눈으로 보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빛을 따라 걸어들어가다보면 붉은 색 문이 나옵니다. 그 문을 지나치자 세상에! 거대한 우주 정거장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함께 우주로 나온 수십명의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릅니다. 우리는 우주 정거장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뿌려진 영상 구슬을 손으로 터치하면 펠릭스 앤 폴이 만든 짧은 영상들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아.. 이것은 실제 우주 정거장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우주인을 만나 인터뷰를 듣는 느낌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환호와 탄성, 잡담, 서로의 느낌을 바로바로 전달하고자 재잘대는 이야기 소리. 저와 함께 전시를 본 동료의 위치도 보이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은... 진짜다!

그렇게 우주 정거장을 걸어다니다가 빛의 길을 따라서 다른 문으로 들어가도록 안내를 받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저 멀리 좌석 부스들이 보입니다. 약 40개의 좌석 중에 한 자리가 저에게 배정된 자리입니다. 그 쪽에 가서 앉게 됩니다. 물론 헤드셋은 계속 착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른 자리는 앉지 못하도록 되어 있네요. 관객들은 각자의 자리에 하나둘씩 들어와 앉습니다. 역시 공간도 정확하게 스캔되어 있어서 매우 안정감을 줍니다. 자리에 앉으면 우주 정거장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주인들의 모습과 저 멀리 지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구 테두리에서 밝게 해가 뜨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황홀한 한 시간의 경험이 끝나고 나면 헤드셋을 벗어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게 됩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하나씩 하나씩 헤드셋을 수거합니다.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는 헤드셋을 소독하고 재정비해서 다시 캡슐 안에 들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인피니트 전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Ep1
한 시간이 어떻게 갔나 싶을 정도로 장엄한 투어를 하고 나면, 몇 개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더 보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지상에 발을 딛기는 아쉽기 때문에 거울과 빛으로 된 여러 전시 공간을 뚫고 나오는 것은 관람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모든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다시 처음의 그 황량한 로비공간으로 나옵니다. 굿즈를 파는 곳도 기념사진을 찍도록 설치된 포토월도 생뚱맞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죠. 우주 발사대는 사막이나 광활한 평야에 설치되는 것이니까요. 아쉬운 마음에 뒤를 계속 돌아보며 전시장을 빠져나왔습니다. 
SXSW 가방을 매고 미디어아트 존을 빠져나가는 필자
인피니트 전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Ep2
분명 펠릭스 앤 폴이 만든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는 360 다큐멘터리 영상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잘 설계된 프리로밍(Free-roaming, 요즘에도 이 용어를 쓰는 지 잘 모르겠어요) 전시를 통해 아주 강렬한 경험으로 되살아났습니다. 360 영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제 편견이나 좁은 인식도 순식간에 박살났구요. 

서두에 오프라인 축제가 가진 특별함에 대한 짧은 생각을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몰입형 콘텐츠들은 콘텐츠 자체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누구랑 같이 보는지에 따라 수많은 컨텍스트가 생기게 됩니다. 전시 과정에서 우연하게 마주치게 되는 다른 관객들의 반응과 소리, 움직임도 이 경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제가 움직이는 걸음의 속도, 감정의 모양새도 다른 관객들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형태로 모여 살기 때문에 주고 받게 되는 감정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경험 콘텐츠 안으로 끌어 들여올 것인가 생각이 많아지네요. 온라인 연결 경험만으로는 부족한 그것 말이죠.

이 전시가 한국에 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우버도 살짝 무리기는 했지만, 비행기 타고 가기에는 넘 멀잖아요.
인피니트 전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Ep3
좀 더 알아보고 싶다면
TIME 기사(by JP Karwacki) (유료 But 1년 44,000원 구독 가능) 

XRMust 기사(by Philippe Bé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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