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통찰함으로써 오는 지혜, 염오의 지혜는 혐오와 다릅니다. 그래서 철저히 괴로움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 - 언젠가는 변하고 무너지기 마련인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마음이 자연스럽게 대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지혜가 예리해 지면 탐욕에 깃든 잠재성향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동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신 포도를 두고 떠난 여우가 마땅히 배고픔을 내려놓지 못했다면, 다시 신 포도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것과 같은셈입니다.

  머리를 깎는다고 갑자기 있던 번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나날들입니다. 그것이 좌절로 다가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살아온 날 속에서 외면해 오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내가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실은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출가할 때 해결되었다고 자신하던 문제들이 재발했을 땐 왜 그럴까 고민을 좀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진실하게 해결됬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았습니다. 그런 관찰력에서는 예리함이 생겼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향이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대답은 그냥 시간 되는대로 선방에 올라가서 있는 것이었는데, 일단 선방에 올라가면 신심이 생기고 감각기관을 단속하게 되고 계목을 단속하는 부분 있어서 가장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호흡을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그 사이로 튀어나오는 개인적인 탐욕에 대해서 대상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을 구분하며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어디까지가 탐욕이 섞인 마음이었는지, 그리고 냉소 속에 교묘히 숨겨진 성냄을 발견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관찰 중에 번뇌에 말려들어 우울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것도 내가 아니다. 조건 지어짐 속에서 이런 마음이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되뇌곤 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일단 마음 자체는 고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제가 선방에 앉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 문제들 속에서 생긴 산란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하면서 외부조건을 차단한 선방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요함이나 한거에도 집착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호흡만 보려고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숨은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집중력이 조금 떨어져서 숨이 잘 안 보이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올라올 때는 고요해진 마음 상태에서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이런저런 생각 속에 숨겨진 번뇌들을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