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신드롬", "챗GPT가 대체할 직업 10가지..." 여기저기서 챗GP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근 몇 년간 챗GPT에 견줄 혁신은 없었다는 호평부터 챗GPT가 인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글까지, 다양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표절 검사를 가뿐히 통과하고 로스쿨, 경영대학원 시험도 패스하는 AI의 등장이 꽤 두려운 모양입니다.

챗GPT는 우리에게 익숙한 심심이, 이루다와 유사한 원리로 만들어졌다는데, 앞선 이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AI 혁명'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존 대화형 AI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기존의 대화형 AI는 인터넷에 널린 방대한 텍스트를 활용해 양으로 승부를 봤습니다. 또, 질문에 걸맞은 단어를 예측할 수 있도록 문장의 괄호를 내어 학습시키기도 했고요. 고양이가 __에 앉는다는 질문에 '방석', '의자'와 같은 빈칸을 AI가 채울 수 있도록 하는 식입니다. 다만, 그렇게 가르친 대화형 AI는 이용자의 질문과 관련 없는 답을 내놓기도 했죠. 나아가 편향적이거나 틀린 답을 하기도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챗GPT는 사람이 직접 교육하고 평가한 대화형 AI입니다. (챗GPT의 개발사 '오픈AI'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형 AI의 학습에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고 하네요.) 교육 주체가 데이터에서 인간으로 넘어왔다고 볼 수 있죠. 인터넷에 널린 텍스트 중에서도 사람이 직접 품질 높은 텍스트를 모아 챗GPT에 가르쳤습니다. 이후 챗GPT에 다양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답변이 질문자의 의도를 얼마나 파악한 건지 사람이 평가한 후 다시 교육합니다. 이는 사용자의 의도에 더 걸맞은 답을 내놓게 하기 위한 과정이랍니다.

계속 가르치다 보면 챗GPT가 질문의 의도를 진정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이해한 척 질문 의도에 맞게 답할 수 있게 된다는데요. 다시 말해, "어떤 질문에 이렇게 답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는 겁니다. 교육을 마친 뒤엔 평가의 시간입니다. 이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내놓았는지, 가짜 답변을 내놓진 않았는지, 답변에 차별적인 요소는 없는지 사람이 확인합니다.

사람이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AI 혁신이 일어났다니, (실직을 걱정하는 우리) 인류에게 희소식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챗GPT의 한계는 인간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교육도, 평가도, 성능 개선도 인간의 몫이니 개인의 편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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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람이 AI를 학습시킨다고 했었죠.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실력 있는 개발자가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듯 AI의 답안을 채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을 하기엔 이들의 연봉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생각하던 차, 챗GPT를 가르친 건 챗GPT를 만든 개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픈AI는 챗GPT의 윤리 기준을 높이기 위해 케냐 노동자에게 시간당 2달러 미만의 급여를 지불해왔습니다. 업무기간 동안 이들은 폭력, 증오, 편견 등 혐오 발언과 밀접한 단어를 분류하는 업무를 수행했는데요. 연구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 4명은 모두 업무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윤리적 기준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작업이 되려 노동자를 위험으로 몰아 넣은 셈이죠.

챗GPT 뿐만이 아닙니다. 각종 AI 뒤편에 있는 “은밀한 자동화 장소” 에는 단순 반복 작업에 시달리는 임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책 <노동자 없는 노동> 저자 필 존스는 이런 이면을 짚으며 기술과 거대 IT 기업들이 “노동을 자동화한다기보다 비공식화하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미세노동. 이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저성장과 맞물리며 노동에 미친 비극적 파급효과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2차대전 이후 번성했던 자본주의는 1970년대 본격화한 수익성 위기로 오늘날 성장이 정체되어 고용은 더 이상 늘지 않고 공급은 과잉으로 치닫는 데 이르렀다.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0시간 계약, 무급 노동 등 노동자들이 실업보다도 못한 상태의 일자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하등 취업이다…그 절정에 있는 게 미세노동이다.”

이런 파편화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20세기 공장제 산업 사회 하에서 발달한 노동법으로는 보호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개해 드리는 기사는 <노동자 없는 노동>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희 에디터들도 감탄하며 돌려 읽은 만큼,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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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비단 개발도상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챗GPT가 글을 써 내려가는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선진국 중산층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도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절로 들죠.  중산층의 몰락은 곧 소득 양극화를 의미하는 바, 기술 발전과 노동의 미래는 중요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별로 대표 직군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미국은 양극화의 징후를 가장 먼저 포착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디트로이트 등의 제조업 도시는 쇠퇴하고, 그 외 대부분의 도시가 그저 그런 성장률을 기록할 때, IT 기업이 몰린 팔로 알토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이 분명한 명암 대조는 기술 발전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는 예이기도 합니다. 이 주장은 단순한 인상 스케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도 경제학의 대가 애스모글루(Acemoglu)는 자동화가 미국 소득 불평등 심화의 50%에서 70%를 설명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실증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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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 나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숙련 노동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숙련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대체 가능한 노동만이 늘어나는 것이죠. 그러니 기업 측에서는 단기 계약하는 비정규직을 더욱 선호하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 변화, ‘숙련 해체’로 인해 소득은 양극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특히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소득 양극화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기업의 숙련 노동 수요는 점점 낮아지지만, 구직자의 좋은 일자리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인데요. 이 둘 사이의 미스매치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으로 정이환 교수는 ‘먼저 희생하는 연대’를 말합니다. 좀 더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갖춘 정규직 노조 측이 한계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써 전체 노동자를 아우르는 연대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기사에서 정이환 교수도 본인 논리의 약점이라고 인정하듯,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먼저 희생할 것을 권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그들이 직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사측에 요구할 수 있을까요. 또 기업은 아무 부담을 지지 않은 채 그 부담을 온전히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요. 머리를 스치는 여러 물음들 앞에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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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챗GPT로 시작해 기술 발전로 인한 숙련 해체, 그리고 노동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자동화 원리로 ‘알아서 잘’ 작동하는 줄 알았던 챗GPT의 배후에는 비서구권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이 있었다는 것, 그 노동을 착취적인 방식으로 거두고 비공식화 해 왔다는 것,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다수 노동자가 탈 숙련화되는 문제까지요. 

AI, 플랫폼 산업은 이 시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도 칭송받지만,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과 고용 형태의 문제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법적/윤리적 가이드라인과 같은 보호망의 부재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술로 인해 어떤 이들의 노동과 삶의 취약성은 계속 심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영역의 개입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번 호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자꾸만 여성들이 떠올랐습니다. 여성의 돌봄노동 (육아, 요리, 교육, 간호, 감정적 지지 등)이 ‘재생산 노동’으로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구성품으로 작동하지만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플랫폼 노동 또한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해 계속 불안한 형태의 노동을 요구하고, '노동'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파편화하고 비공식화 되니까요. 앞서 <한겨레 21> 오영진 기자의 글로 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첨단기술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육체와도 연결돼 있지만 한편으론 불평등한 연쇄 과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문제를 문제라고 깨닫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겠습니다.

위 구글 북스의 이미지 이야기로 레터를 마칠까 합니다. 구글 북스란 구글이 주요 도서관의 도서를 모두 스캔화하고, 스캔본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서비스입니다. 위 이미지 또한 구글북스의 수많은 도서 중 한 페이지인데요. 다만,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분홍색 골무를 낀 유색인종 여성의 손이 함께 찍힌 것으로 유추해보자면 일일이 스캔을 뜨는 작업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수행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첨단기술은 불평등한 연쇄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그 복잡하고 촘촘하게 이루어진 연쇄 과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스캔본에 찍힌 노동하는 여성의 손, '비공식화 된' 노동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합니다. 기술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과정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고, 매끄럽지 않고, 어떤 노동은 은폐되고 있다는 것을요.

참고하면 좋은 자료들

https://collectiveaction.tech/: 미국의 기술 분야 노동조합과 노동 관련 운동을 기록하는 사이트

https://culturescience.kr/26 : 문화이론 계간지 <문화/과학> 105호 (인공지능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