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을에서]


사랑은 지금 손을 잡는 것


이재철 목사
 
하루는 아내와 손을 잡고 마을길을 걸었습니다. 마침 우리 마을에서 가장 고령이신 구십 넘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저희 부부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셨습니다. 구십 평생에 부부가 손을 잡고 가는 것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면서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 부부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도 아직까지 부부가 길을 걸을 때 서로 떨어져 걷습니다. 남편은 앞장서 걸어가고, 아내는 남편을 뒤따라 걷는 식입니다. 그렇기에 손을 잡고 걷는 저희 부부를 평생 처음 보신 고령의 할머니가 놀라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내 표정을 바꾸며 탄식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손 많이 잡아줘요. 한 사람 먼저 가면, 잡아 주고 싶어도 잡지 못해요…”
그 할머니는 수십 년 전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겐, 한번 잡고 싶어도 잡을 남편의 손이 오래전부터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책]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 5

사생의 사람에 대하여


만약 호흡이 멎는 순간에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력서를 지금 엮어오고 있다면, 그런 삶의 이력서는 여러분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무의미하게 죽기 위해 살아온 생사의 삶에 마침표를 찍읍시다. 이제부터 참되게 살기 위해 죽어서 사는 사생의 삶을 살아갑시다. 바울처럼 주님의 뜻을 좇아 살기 위해 사생결단의 삶을 시작합시다. 비록 말로 유언을 남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생이 끝난다 할지라도, 지금부터 엮어갈 사생결단의 삶의 이력서는 우리가 한 마디 말로 된 유언을 남기지 못해도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유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_첫째 날. 유언, 삶의 이력서(행 20:17-21)


고독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사람만이 자기 부인의 삶이 가능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27절을 통해서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죄성을 가진 인간은 조그만한 것을 하고서도 풀무질을 하거든요. 그건 하나님 앞에서 패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바울은 매일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발적인 자기 격리를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도 자기를 쳐서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구해놓고, 내가 나를 풀무질해서 패망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 위해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고독하게 서는 사람만이 결과적으로 사생결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_둘째 날. 고독, 유언의 동력(행 20:22-24)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이 덮칠 때 여러분은 어떤 얼굴을 이 땅에 남기고 가시렵니까. 사람들은 여러분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거든요. 지금 얼굴을 아름답고 세련되고 멋지게 가꾼다 해도 다 썩어 문드러집니다. 그런 얼굴은요, 세월이 흐를수록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절대 생명의 유언으로 승화되지 않습니다. 생명의 유언으로 승화되는 얼굴은 아름답고 멋지고 세련되게 가꾼 얼굴이 아니라 사생결단의 삶이 묻어 있는 얼굴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얼굴이 주름투성이라고 해도 나이가 들어서 바울처럼 지병을 앓는 얼굴이라고 해도, 그런 것에 개의치 말고 사생결단의 삶을 사는 얼굴로 살아갑시다. 그 얼굴이 삶을 유언으로 승화시켜 주는 완성판이 될 것이고, 세상을 떠난 뒤에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그 얼굴로 우리를 기념할 것입니다. _셋째 날. 얼굴, 유언의 완성(행 20:25-38)


이재철 지음 | 2025년 6월 출간

[읽기의 순간들]



김광우, 영상 편집자


《부활이 있기에》와 〈폭싹 속았수다〉, 두 매체에서 이승장과 양관식, 두 제주 소년이 말하는 천국을 보게 됩니다. 천국을 잃어버리는 슬픔에서 다시 천국으로 걷는 두 사람의 여정은 모두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삶은 대체로 우리에게 살면 살아진다고 말합니다. 아파도, 슬퍼도 우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올거라구요. 하지만 현실의 우리 삶은 16부작짜리의 완벽한 복선이 깔린 드라마가 아니라서, 살면 살아진다는 말은 때로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그저 홀로 서게 하는 고독한 위로로 남아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계획 중 최후의 완벽한 한 획, 화룡점정입니다. 눈 없는 용이 없듯, 부활 없는 하나님 나라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활이 이토록 필연적이므로, 부활은 하나님이 굳게 약속하시고 우리가 불안함 없이 모든 것을 다해 매달릴 절대적 위로가 됩니다.
부활이 주는 위로는 우리의 삶을 살아지는 것에 그치게 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살아지는 것을 넘어 살려냅니다. 나를 살려내고, 내 이웃을, 이 세상을,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를 살려냅니다. 《부활이 있기에》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서 부활을 햇빛 아래 드러난 듯 명징하게 서술합니다. 그저 막연한 위로로써의 부활이 아니라 부활이 무엇을 어떻게 살려내고, 부활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지상과 천상이 맞닿는 지점에서 세세하게 풀어냅니다.
책의 서두는 복음과 죽음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합니다. 가장 큰 소망과 가장 큰 절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이한,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바로 옆에 존재하는 갈등이 비추어집니다. 이윽고 1장을 통해 복음을 초기화하고, 2장을 통해 죽음을 거슬러 십자가에 닿고나면 이 갈등을 풀어낼 열쇠가 제시됩니다. 부활이 그렇게 우리에게 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게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에 매몰되어 꽃밭에 산다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목매어 낭떠러지 앞에만 서는 일도 아닙니다. 영원을 꿈꾸지만 오늘에 모든 것을 걸고 무언가를 살려내는 것. 그것이 내 삶이든, 타인의 삶이든, 세상이든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고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듯싶습니다. 부활이 주는 묵직한 소망과 부담이 느껴집니다. 부활이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부활이 있기에 무거운 짐을 한 번 더 들어올려 봅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드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제 앞가림을 하는 어른이라고 스스로 선뜻 나서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마음같지 않지만 괜찮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가까이 또 멀리]

연설이 끝나 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역할도 끝나고 있음을 알았다. "저는 우리가 이 여정의 마지막에 접근하고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27세에 시작한 일의 끝을 바라보는 듯이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그때 모임 장소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윌버포스는 1792년에 피트가 밤이 맞도록 노예무역 폐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고 나자 의사당을 비추었던 그 새벽 빛을 떠올렸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우리 앞에 있는 목표는 명확합니다. 하늘의 빛이 그것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성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듯 이 장면은 노예제 폐지법이 실제로 통과되기 전에 그것을 미리 보았던 윌버포스의 승리 선언이었다. 

새 책 나옵니다


𝓃𝑒𝓌 청소년 사역 핵심파일(개정판)

초판 발행(2020년) 후 변화된 청소년 사역 현장의 이야기들을 보강하여 5년만에 개정판을 출간한다. 저자가 현장에서 부딪치며 얻은 철학과 경험을 모두 담아낸 이 책은 성공의 사례뿐만 아니라 쓰디쓴 실패의 이야기들까지 진실하게 전하며, 독자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석원 지음 | 2025년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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