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쓰기'를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세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을 출발점 삼아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들불레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덧. 레터 하단에 '도서 증정 이벤트'를 마련하였으니, 참여하셔서 좋은 책 받아가세요! 💗

👏  들불의 PICK!
  • 『여성의 다시 쓰기』, 노지승
  • 『계속 쓰기』, 대니 샤피로, 한유주 옮김
  • 『빈 일기』,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성원 옮김

💬  (광고) 들불이 만난 이야기
  •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윤이나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여성 서사'라고 부르시나요? 이 질문을 받은 여러분의 머릿 속엔 지금 정말 다양한 여성 서사들이 떠올랐을텐데요. 우리가 이렇게 다종다양한 여성 서사를 떠올린 이유는 여성 서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소설인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이 작품들을 여성 서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여성의 다시 쓰기』에서 노지승 작가는 비록 이 소설들이 가부장제의 규칙을 잘 따르는 여성들의 승리를 그리고 있지만, 여성의 텍스트가 주류가 될 수 없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성 독자들이 위 작품 속 여성 캐릭터에 몰입하고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현했다고 말합니다. 
또, 저자는 여성들이 여성 인물들의 저항적이고 비타협적인 모습에 몰입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노와 원망, 여러 형태의 저항을 텍스트를 경유하여 표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렇게 여성들이 여성 인물에 대해 가지는 몰입과 동일시는 다시 읽기, 다시 쓰기의 중요한 요건이며, 이러한 요건들이 다시 읽고 다시 쓰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 고소설이 '개작*'이라는 형태로 활발하게 재생산되는데 크게 일조했다고 말합니다.

위 고소설들의 개작으로는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영화 <장화, 홍련>, 독일어로 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그리고 장 승상 부인이 청이한테 공양미 300석을 대신 내준다고 했던 이유를 묻는 것에서 출발한 웹툰 <그녀의 심청>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영화, 오페라, 웹툰 등의 다양한 형태로 현재까지 개작이 진행되고 있는 고소설들이 지금의 페미니즘과 조응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성 서사'의 판단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  "독자들에게는 모든 텍스트를 새롭게 읽어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다시읽기와 다시쓰기의 주체, 서사를 향유하고 즐기는 주체로서 '여성'들을 지목하고 있다. (...) 미처 못다 한 말, 했어야 하는 말,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시쓰기를 통해 텍스트 안에 새겨진다."

* 개작 : 각본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는 것.

👀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계속 쓰기』, 대니 샤피로
한유주 옮김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레터를 쓰고 있는 저도, SNS에 게시글을 올리거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여러분도 여러 형태의 글을 쓰고 있죠. 최근에는 글쓰기 붐이 일면서 자신의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요.  이에 글쓰기 강의나 모임 등이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지만,  강의와 모임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어디서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해야할지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또, 쓰면 쓸수록 쓰는 행위가 어렵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겪다보면, '아니 내가 이렇게 고생해가면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나' 싶은 마음도 생겨나기 마련인데요. 글쓰기를 지속하고 싶지만, 글쓰기를 향한 나의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이 바로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입니다.

이 책은 '내면의 검열관', '습관', '빈 페이지', '현재를 살기' 등 글 쓰는 마음과 글 쓰는 생활을 담은 길지 않은 내용으로 구성된 여러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법서나 글쓰기의 효과를 일깨워주는 책은 아니지만, "작가이건 아니건,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삶에 필요한 자질들을 발견하고 다시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p.13) 동시에 글쓰기를 통해 '더 낫게 실패하길'(p.15) 바라는 책이라는 점에서 글쓰기의 한복판에서 방황하고 계신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글쓰기가 내 삶을 구했고, 글을 쓰며 살다 보니 글쓰기를 가르치게 되었다. 날마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데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수는 없다. (...) 가끔 우리는 스스로를 책임자라고, 혹은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삶은 대개 바로 거기 있지만, 지나친 자기확신에 사로잡힌 우리를 때려눕히는 것이 삶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이런 교훈을 오랫동안 배우고 겪어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견딜 수 있다. 우리는 더 낫게 실패한다.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시작한다."  
『빈 일기』,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성원 옮김

책에 매료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기도 하고, 책의 첫 문장에 반해 순식간에 빠져들기도 하죠.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빈 일기』는 독자를 사로잡을만한 여러 매력을 지닌 책입니다. 표지도 아름답고, 책의 도입부에 적힌 인용구들도 흥미롭죠. 하지만 이 책의 강렬한 한 방은 바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장입니다. 단 한 장으로 쓰여진 1장에서 저자는 어머니가 죽어 가던 그 때, 본인에게 일기장을 모두 남기겠다던 어머니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펼쳐든 어머니의 일기장에 충격을 받는데요. 왜냐면 그 일기장이 '백지 일기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일기장은 어머니가 말한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 첫 번째 일기장을 펼쳤다. 비어 있었다. 두 번째 일기장을 펼쳤다. 비어 있었다. 세 번째를 펼쳤다. 역시 비어 있었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도. 선반 하나하나에 꽂힌 어머니 일기장은 모조리 비어있었다."

이렇게 텅 빈 지면을 마주한 저자는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어머니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의 침묵으로부터 목소리를 부여 받은 내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살아있을 때에도, 죽을 때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름으로써 내게 목소리를 주었습니다. 편지 한 통, 밥 한 끼, 함께 하는 산책을 통해서 말이죠. 한편, 미미(할머니)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내게 목소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증조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받은 목소리로 세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상실한 슬픔으로부터 출발한 이 책은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으로 이어지고, 이내 저자는 어머니가 '빈 일기'를 남긴 이유가 '가능성의 공간'을 남겨두기 위해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침묵에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써 개인의 일기를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시킵니다. 빈 공간이 주는 상상력을 가장 아름답고 대담한 방식으로 활용한 셈이죠. 누군가 여러분에게 빈 일기장을 남긴다면, 여러분은 그 지면을 어떻게 채워보고 싶으신가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침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궁금해하는 바로 이 시점부터 우리의 목소리가 세상을 향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지면, 텅 빈 지면을 받을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침묵의 지도 작성법"을 남겼다.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과 권력의 아름다운 진실이지 않은가?"
*(광고)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레터 하단에 도서 증정 이벤트가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윤이나

 

자기계발과 성장이 이 시대의 지상명령이 되어버린 요즘, '하루 종일 누워서 넷플릭스만 봤다'는 말은 오늘 하루 쓰레기처럼 살았다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관용구가 되어버렸습니다. OTT 플랫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넷플릭스' 의 자리를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왓챠, 티빙 등이 대체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플랫폼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에도 OTT 서비스를 즐기는 행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음' 으로 여기는 현대인의 오해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윤이나 작가의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는 여러 OTT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양한 콘텐츠를 섭렵한, ‘이야기를 사랑한 이야기꾼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스스로에게, 또 세상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노동에 가까운 유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 우리가 방점을 찍어야 하는 포인트는 노동보다는 '유희'입니다. 작품을 충분히 즐겼기 때문에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장면, 대사들을 여러 번 곱씹고, 이야기 속에서 여러 질문들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사회로 그 질문들을 토스하는 모든 과정이 가능했던 거니까요. 이 과정은 마치 노동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한없이 유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윤이나 작가는 꽤 공들여 이 책에 담아냈어요


윤이나 작가는 전작에서 라면의 맛어떤 순간은 달아서 발가락까지 간지럽고, 어떤 순간은 눈물 쏙 빠지게 맵기도 한, 씁쓸하지만 달콤하고, 시큼하면서도 새콤하고, 짜다가도 싱겁고, 그렇게 알고 있던, 또 몰랐던 맛이 같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는데요(『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에서 소개하는 작품들 역시 윤이나 작가가 표현한 라면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간절하게 꿈을 꾸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당황하고, 사랑만으로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청춘들1)을 보면서는 조금 씁쓸한 맛을,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엔딩인 행복할지 불행할지, 기쁠지 슬플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 알 수 없는 세계로 향하며 전하는 안녕’2)’을 보며 지금까지도 몰랐고, 앞으로도 영영 모를 신비한 맛을,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차별하며 멸시하고 괴롭혀온 사람들, (...) 권력과 남자들의 세계 한복판으로 불화살을 쏘았고, 모두 불태운3)' 작품에서는 맵고 강렬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는 세상과 사람,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깊은 애정을 기반으로 어떤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호명하고, 어떤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힘을 보탭니다. 저자의 글을 통해 이야기가 힘을 얻듯, 우리 역시 저자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읽고, 탐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난 용기는 우리 곁으로 점차 뻗어나가 세상을 바꾸고 사랑과 아름다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테죠. 도통 희망이란 걸 발견하기 힘든 요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작은 용기가 큰 희망을 부르는 '윤이나 식 콘텐츠 유니버스'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  사랑하는 나의 자매들, 부디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기를, 노래해주기를, 세상이 터져나가는 순간, 옆에 있는 자매의 손을 잡아주기를. 때로는 귀를 막아주기를. 눈을 가려주기를. 그러다가 서로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다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마음을 기울여주기를. 나도 그렇게 하겠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 <위 아 레이디 파트>, p.317)


🏷️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거야. 우리의 미래는 오직 우리에게 달려 있어.˝ 이렇게 정직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정확한 대상, 자기 자신과 같은 젊은 여성들에게 직진으로 전달하는 영화와 인물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소녀는 돌아가지 않는다」 - <에놀라 홈즈>, p.39)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총 24편입니다. 저는 이 중 14편을 봤고, 그 중 5편에 대해서는 저자와 조금 다른 감상을 가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꽤 흥분한 상태로 책을 읽었습니다. 자고로 덕후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해석과 감상이 많이 붙을수록 흥분하는 존재니까요. 또, 제가 보지 못한 열 편을 이참에 보기로 맘 먹고 하나씩 격파 중인데요. OTT의 홍수 속에서 정신 없이 헤엄치고 계시는 수많은 덕후 여러분, 이 책 속 작품들을 전부 섭렵해보겠다는 이유로 하루쯤 종일 누워 OOO(넷플릭스, 왓챠 기타 등등)을 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오해를 불식할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1) 「인생의 기본값은 적당한 불행 - <콩트가 시작된다>」, p.197

2)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 방식 - <노멀 피플>」,  p.127

3) 「이방인을 향한 혐오와 멸시의 결말 - <킹덤:아신전>」, p.85

👀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도서 증정 이벤트 설문조사 결과 공개!
  
  
들불레터 48화에서는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도서 증정 이벤트를 열었어요. 이벤트와 함께 구독자 여러분들을 대상으로 최근에 읽은 여성 작가의 책과 좋아하는 여성 작가가 누구인지 여쭤보는 간단한 설문조사도 진행했습니다. 이에 총 67명의 구독자 분들이 응답해주셨고, 93권의 책과 78명의 여성 작가를 소개해주셨는데요. 오늘은 설문 조사에서 2회 이상 언급된 여성 작가 또는 작품을 여러분께 공유드리면서 레터를 마무리해보고자 합니다. 설문조사에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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