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금요예찬 쓰는 큐레이터Q입니다.
주말동안 좀비 영화 한편 즐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짧은 글월을 지어 올리고 저는 다음 금요알람을 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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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좀비
달리는 좀비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2002)”가 아닐까 싶다. 강렬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멀리서 보이던 좀비 그림자가 순식간에 달리는 좀비 떼로 변해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장면은 보는 이를 공포로 옥죄었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로 거의 모든 좀비는 단거리 육상 선수 뺨치는 실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이 갑자기 몰아치고 난 후 완전히 에너지가 방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널브러져 있을 때 “좀비 같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어눌한 움직임은 그전까지 좀비를 정의하는 여러 특성 중 하나였다. 어쩌다 다시 움직이게 된, 생명체라 부르기는 뭣한 이 존재는 굳어버린 관절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달리는 좀비라니. 여차하면 야구 방망이로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좀비였건만 이제는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야 한다. 좀비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움직이는 시체라는 점에서 강시와 좀비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문득 이 둘의 운명을 가른 건 바로 "달리기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 보면 좀비 이전에 강시라는 존재가 있었다. 강시는 왜 인지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 두 발을 모은 채 콩콩 뛰어다니며 어쩐지 중국집 짜장면이 생각나는 청나라 복장에 얼굴에는 부적을 붙이고 있었다. 부적이 떨어지면 포악하게 변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강시는 무섭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주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주는 비디오나 명절 특선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나도 친구들과 강시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는 콩콩 뛰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움직이는 시체라는 점에서 강시와 좀비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좀비는 대세라 해도 어색함이 없는 반면 강시는 스크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지금은 강시라는 존재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 것 같다. 비슷하게 시작하여 하나는 그 존재의 이름만으로 장르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소멸했다. 문득 이 둘의 운명을 가른 건 바로 “달리기 능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연에서 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듯, 공포 영화라는 장르에서도 더 강하고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존재가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너른 벌판을 질주하고(28주 후, 2007),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킹덤, 2019), 사랑도 한다(웜 바디스, 2013).
"좀 어떻게 안 돼요? 고전으로의 회귀 같은 거?"
"어쩔 수 없어.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거든."
뜀박질하는 좀비는 무서운 기세로 그 저변을 넓혀 갔다. 아드레날린으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는 좀비와 액션은 찰떡궁합으로 결합해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온갖 배경에서 각종 무기를 동원해 달려드는 좀비를 제압하고 때려잡았다. 그 밖에도 좀비는 휴먼 드라마로,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고뇌하는 철학적 대상으로 변주되었다. B급 영화로 시작한 좀비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까지 어떻게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공포 영화의 여러 하위 장르 중에서도 좀비 영화를 가장 선호한다는 자칭 좀비 영화 마니아인 지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깔끔하잖아. 귀신 나오는 건 보고 나서 꼭 어디서 나올 것 같고 괜히 신경 쓰이고. 그런데 좀비 영화는 그런 게 없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끝이야.” 

명쾌한 설명이었다. 두 시간의 여흥, 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찝찝한 뒷맛은 금물이다. 어쩌면 좀비는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을 가장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대화 마지막은 이랬다. 

“대니 보일 감독 이후로 좀비들이 죄다 죽기 살기로 뛰잖아요. 안 그래도 힘든데 하다 하다 이젠 좀비까지 뛰어야 해요? 좀 어떻게 안 돼요? 고전으로의 회귀 같은 거?” 

“어쩔 수 없어.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거든.”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츠 MAGDALENA ABAKANOWICZ (1930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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