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최민서 인턴기자가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페트리샤 피치니니: 킨쉽> 후기를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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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
돌봄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본 경험은요? 이러한 질문을 가져본 적 있다면 낯선 생명체들을 만나 새로운 공존의 방법을 상상해보세요. 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답을 줄지도 모르니까요.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은 기이함 속에서 돌봄의 의미를 발견하고, 낯선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공존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호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는 실리콘과 사람의 머리카락, 유리섬유 등을 활용해 인간과 동물, 자연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명체를 만들어냅니다. 사람의 얼굴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 동물 같지만 동물도 아닌 생명체. 이 기괴하고 낯선 존재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타자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되묻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모색해 나갑니다.
‘킨쉽(Kinship)’은 보통 친족, 혈연, 가족 관계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피치니니의 작업에서의 킨쉽은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낯선 생명과의 관계로 확장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깨어나다-조우하다-유대하다-흔적들’이라는 네 개의 전시 흐름 속에서도 이어집니다. 작가는 낯선 외형의 생명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돌봄, 유대, 연결, 책임과 사랑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관람객은 피치니니의 시선을 따라 새로운 생명체를 마주하고 돌봄과 책임의 의미를 고민하며 전시가 남긴 질문을 자신의 언어로 되새기게 됩니다.
전시장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바쳐진 존재>라는 작품을 직접 만지며 피치니니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됩니다. 갓 태어난 듯 보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와의 접촉을 통해 낯선 감각을 깨우는데요. 전시장 1층인 1부 ‘깨어나다’에서는 알을 품고 있는 독수리 인간이나 나무처럼 얽힌 존재 등을 보며 돌봄과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2부 ‘조우하다’에서는 인간과 낯선 존재가 마주하는 순간을 다룹니다. <포옹>이라는 작품 역시 인상 깊었는데요. 낯선 생명체가 여성을 끌어안는 장면은 얼핏 다정해 보이지만 압도당할 것 같은 긴장감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 속 여성은 작가 자신을 본떠 만든 인물이라고 합니다. 피치니니는 부모가 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아름다운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돌봄이 사랑과 기쁨뿐 아니라 부담과 두려움, 죄책감까지 함께 품는 복합적인 경험임을 드러내는 것이죠. 이는 모성을 신성한 희생으로 이상화해 온 기존의 재현과는 다른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 ‘유대하다’에서는 낯선 생명이 인간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고, 돌봄을 넘어 책임의 문제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요. 가장 오래 발걸음을 붙잡았던 작품은 <신생가족>이었습니다. 작품중앙에 보이는 인간과 돼지의 특징을 함께 지닌 어미는 장기 이식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생명체인 동시에 새끼들을 다정하게 돌보는 어머니로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기술 발전의 윤리를 넘어 우리가 어떤 생명을 목적이나 자원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지, 돌봄을 받 자격은 누가 결정하는지 질문합니다. 3부에서 ‘킨쉽’이 품고 있는 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킨쉽은 나와 비슷한 존재들 사이의 애틋한 감각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이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피치니니는 우리가 낯선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지도 모르는 근미래의 풍경을 조금 일찍 그려나갑니다.
피치니니의 작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돌봄과 모성, 가족 같은 주제를 여성의 경험 안에서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 속 돌봄은 희생이나 본능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때로 부담이고 돌봄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돌봄이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비인간 같은 이분법을 넘어 서로를 책임지고 함께 공존하는 관계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4부 ‘흔적들’은 전시가 남긴 생각을 다른 관람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관객이 그저 감상자로 머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작품이 던진 질문에 자신의 언어로 답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식을 제공합니다. 기괴한 생명체를 보여주는데서 그치는 전시가 아니라 각자만의 공존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작가와 관람객의 거리를 좁히고 전시가 남긴 질문을 미술관 밖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합니다.
사실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황소윤의 첫 정규 앨범 <So!YoON!>의 앨범 커버를 통해서였습니다. 황소윤은 첫 솔로 앨범을 준비하며 새소년의 황소윤도, 평범한 개인 황소윤도 아닌 ‘제3의 존재’처럼 들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새소년의 프론트 퍼슨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기괴하고도 낯선 작품을 앨범 커버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관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해당 앨범 커버를 밀고 나갔다고 합니다.
전시를 보고 나니 두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가 꽤 닮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장르와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건넨다는 점에서요. 피치니니의 여정을 따라가며 낯선 존재가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셨나요?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황소윤의 음악도 함께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전시는 11월 1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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