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스무 번째
✧ 오늘 소설은 구독자 연주님의 사연을 소재로 창작되었습니다.
내용은 사실과 무관하며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
  자취방이라니. 생애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 아침을 깨우는 엄마의 노랫소리도, 언젠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타날 것만 같은 이웃의 노랫소리도 없다. 볼륨을 올릴 대로 올린 텔레비전 소리도, 쩌렁쩌렁 울리는 아빠의 목소리도 없다. 우리 집 강아지가 산책하러 가자고 보채는 소리도, 문 앞으로 종종종 걸어오는 발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니까,

  좋네 뭐.


- 뭐해

- 그냥 누워 있어. 유튭 봄.

  얘가 웬 카톡을 이렇게 진지하게 보내지. 급 두근거리네.


- 히. 나 지금 자소서 쓰는데 니 취업 노하우 좀 알려주라. 뭐 써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힘들당.

- 헐, 자소서. 개고생. 힘들고 말고요. 그렇고 말고요.

나도 첨에 완전 힘들었어. 나는 꾸준함을 어필했었음.

기록 같은 거 좋아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고, 또 기록을 하면 이게 흔적이 되잖아?

흔적이 남고, 흔적은 다시 보면 추억이 되고.

그래서 허투루 지나갈 시간을 붙잡아서 가치를 찾는 사람?

어딘가에 깃든 소중함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식으로.

꾸준한 기록으로 소중한 이야기를 만든다고 썼던 거 같은디.


  그러고 보니 취업하고부터는 블로그에 통 글을 올리지 못했다. 블로그를 채우는 것보다 새로운 내 공간을 채우는 게 아무래도 더 재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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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난 김에 들어간 블로그에 알림이 잔뜩 떠 있다. 이게 뭐야. 누가 이렇게 공감을 다 눌러놨데? 갑자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건가, 라고 하기엔 한 사람이 눌렀다.


딸. 아빠가 시끄럽게 안 하니까 살만허지.


  도대체 내 블로그는 어떻게 알고 들어온건지. 아빠가 죄다 눌러놓은 블로그 속 일상을 다시 읽었다. 쌓여 있는 내 일상 안에 기록된 우리 가족과 우리 집을 읽었다. 그건 무척이나 일상적이었다. 무척이나 일상적이어서…


  자주 무얼 먹었고, 가끔 어딜 갔다. 엄마와 또는 아빠와 또는 언니와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였다. 어느 날은 집이었고, 어느 날은 밖이었다. 나는 자주 요리를 하고 빵을 만들었다. 가족들은 대체로 좋아했고 가끔은 솔직했다. 그런 소박한 날들이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서 웃음이 났다.


  본가는 오래됐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여가는 물건이 싫었다. 작은 내 방도, 창문을 열면 들리는 옆집 소리도 싫었다. 싫은 마음이 싫어서 물건을 덜어내자고 했다. 그러면 오래된 것도 오래되지 않을 것 같았고, 작은 방도 작지 않을 것 같았고, 옆집과도 멀어질 것 같았다. 아빠는 내버려 두라고 했다. 버릴 게 없다고 했다. 버릴 건 분명히 있었는데. 아빠가 버리지 못했던 것은 정말 물건이었을까.


  어쩐지 블로그 글을 평생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지난 몇십 년간 아빠가 집안에 쌓여가는 흔적을 지우지 못한 것처럼.


  조용하니까, 조금 싫네.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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