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혹시 이 문장을 기억하세요? 지난 2월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사건 대법원 판결문의 내용인데요. 내일 다시 한번 중대한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어요. 헌법재판소가 오랜 시간 미뤄온 군형법 제92조의6 (’군형법 추행죄’)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죄’)의 위헌 여부를 내일 선고하기로 했어요. 오늘은 분량이 조금 많지만 중요한 쟁점인 만큼 다다닫 정리해볼게요!

합의한 성관계도 처벌하는 군형법 추행죄

• 군형법 추행죄는 합의한 동성 군인의 성관계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이에요. ‘강제추행’과 달리 이때 ‘추행’은 사실상 남성간의 성행위를 가리켜요. 몇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동성애를 처벌하는 본질이 변하지 않은 거죠.
• 내일 헌법재판소는 2017년 육군의 ‘성소수자 색출사건’과 관련된 두 건의 위헌제청(서울서부지법, 수원지법)과 세 건의 헌법소원을 병합하여 판단을 낼 예정이에요.

3전 4기, 이번에는 위헌일까?

•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군형법 추행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2002년 7대2 합헌, 2011년 5대4 합헌, 2016년 5대4 합헌) .
• 2016년 판결에서 합헌 다수 의견은 우리나라의 안보상황과 징병제도가 갖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동성 군인을 차별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이 법이 평등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보았어요. 또, ‘추행’을 기준으로 ‘형사상 처벌’을 한다는 점도 명확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지는 않는다고 보았죠.

🏳️‍🌈 그러나 군형법 추행죄의 위헌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어요.

• 예컨대 수원지방법원은 처벌 대상과 기준이 불명확하며 처벌의 합리적 근거가 없다며 이 법이 명확성, 과잉금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어요.
• 작년 대법원에서는 유죄로 인정된 원심을 파기하면서 이 법이 헌법상 평등권, 존엄성,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하기도 했죠.
• 특히 2017년 ‘성소수자 색출사건’ 당시의 모욕적인 심문과 위법한 증거수집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점도 문제가 됐어요.

대세는 소도미법 폐지

동성애를 처벌하는 시대착오적인 소도미법을 폐지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어요.

•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군형법 추행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제출했어요.
•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례검토, 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는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해왔어요.
•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도 최근 소도미법이 잇따라 폐지됐어요. 2018년 인도, 2022년 싱가포르가 대표적이죠. 한국이 뒤를 이을 수 있을까요?

HIV 전파매개행위는 무조건 처벌하는 에이즈예방법 19조

•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는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며, 25조에서는 형량을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법이 감염병 예방이라는 취지보다는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이들을 범죄화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어요.
• 헌법재판소에서 이 법의 위헌성을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2019년 1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이 법의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한 이후 꼬박 4년 만에 결정이 나오는 셈이에요.

감염인의 성관계는 범죄일까?

공개변론에서 쟁점은 전파매개행위죄가 명확성, 과잉금지, 평등 원칙 등을 위반하는지 여부였어요.

• 질병관리청은 전파매개행위죄가 위헌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전파매개행위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 19조가 규정하는 ‘체액’의 범위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판단하기에 모호함이 없으며(명확성 원칙), 감염병으로부터 일반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엄중한 제재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과잉금지원칙)는 거예요.

🏳️‍🌈 반면 이 법이 위헌이라고 보는 입장은:

• ‘체액’이나 ‘전파매개행위’가 지시하는 바가 모호하고 광범위해 실제 전파와 무관한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으며(명확성 원칙 위배), 다른 비슷한 감염병과 비교했을 때 형벌이 과중하다(평등 원칙 위배)는 점을 지적해요.
• 또, 이 조항의 실질적인 적용이 질병관리청에 등록 및 관리되는 감염인으로 한정되는 만큼, 이들의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 등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어요.

감염인의 건강과 행복을 보호하기

• UN 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는 HIV와 관련해 특정 집단에 억압적인 예방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인권침해적이라고 지적해왔어요. 에이즈가 유행하던 1980년대에 만들어진 처벌적인 제도가 HIV가 관리가능한 질환이 된 오늘날 오히려 의료적으로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도 많아요.
• HIV 바이러스가 미검출인 상태에서는 타인을 감염시킬수 없다는 ‘U=U 원칙’(Undetectable=Untranmittable)이 일반적인 상식이 된 오늘날 중요한 과제는 HIV 감염인을 비범죄화하고 낙인과 차별을 감소시켜 감염예방에 동참시키는 것이기도 해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마지막 판결

이번 판결은 다음 달 초에 임기가 끝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사실상 마지막 판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어요.

• 현재 헌법재판관 9인의 성향은 일반적으로 진보 5명, 보수 4명으로 분류되는데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한 유남석 소장이 퇴임하면 새로운 헌법재판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하게 되므로 헌재의 지형이 변화하게 되거든요.
• 내일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추행죄와 전파매개행위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여러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놓을 예정이에요. 국회에서 큰 갈등을 빚었던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판결이 대표적이에요.

군형법 추행죄·전파매개행위죄는 위헌이다!

판결에 앞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26일 12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두 조항의 위헌을 촉구할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겠죠? 다다닫도 판결의 결과와 의미를 빠르게 전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