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전 건강검진은 산업보건영역의 윤리적 쟁점
채용 전 건강검진의 목적은 직업병, 부상, 병가에 걸릴 위험이 높은 사람을 찾아서 고용하지 않음으로써 질병이나 부상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직자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합니다. 채용전 건강검진이 없다면 약 2%정도에서만 구직이 거부되나, 채용전 건강검진을 시행할 경우 최대 35%까지 채용이 거부된다는 보고가 있으니까요. 채용이 거부되는 사유가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타당한 근거없이 거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라도 회사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업무에 적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죠. 과연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채용전 건강검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채용전 건강검진, 폐지되었으나 금지된 것은 아니다
채용전 건강검진이 분별없이 시행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 요추분리증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했던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10월 7일 산업안전보건법 상 채용'시' 건강진단 실시의무가 폐지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원래 이 제도는 채용 전 건강진단이 아니라 이미 채용된 근로자에 대하여 유해부서 배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사업주가 실시하는 검진이었습니다. 모든 근로자에게 시행되는 배치 전 건강진단과 같은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을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 “사업주가 질병이 있는 자의 고용기회를 제한하는 검진으로 잘못 활용되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채용 시 건강검진의 실시의무가 폐지되었으니, 그 이후 채용 전 건강검진은 시행되지 않았을까요? 대부분 아시다시피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권위 보도자료] “B형간염 양성반응 이유로 채용거부는 차별”
공무원 채용신체검사
우리나라의 공무원 채용신체검사는 대표적인 채용전 건강검진입니다. 이 검진은 "국가공무원을 신규로 채용할 때 그 직무를 담당할 수 있는 신체상의 능력을 판정하기 위하여 실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무원 채용검사는 공공기관이나 일반 사기업에서도 준용하고 있으므로 사실 상 한국의 채용전 건강검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검사의 불합격 기준은 급성질환이 있거나, 전염병이 있거나, 업무수행에 큰 지장이 있는 장애나 합병증이 있는 경우입니다. 다만,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은 예외로 두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급성질환이 있는 사람이 채용에 응시하지는 않을 것이고, 장애인이면 예외가 되므로, 불합격이 될 수 있는 경우는 만성질환자로 국한됩니다. 그러나 '업무수행에 지장을 주는 만성질환'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가 제시되어 있지는 않으며, 관련 분야 전문의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구직자들에게 시행하는 이러한 채용신체검사는 꼭 필요한 제도일까요?
채용전 신체검사가 꼭 필요한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채용전 신체검사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직종은 선원입니다. 우리나라도 선원법에 따라 선원건강진단을 시행합니다. 이 건강진단은 선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선박내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체격, 운동기능, 청각과 시력에서 제시된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체력을 요구하는 소방관과 같은 직종에서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항공안전법에 대한 신체검사는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조종불능상태를 사전에 찾아내고 예방하는 것이 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건강검진들은 채용전 신체검사가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논문] 업무 적합성 평가 기준 및 방법: 체계적 검토. 2007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향
무분별한 채용전 건강검진으로 고용의 기회를 박탈당할 위험이 가장 큰 경우는 장애인과 만성질환자입니다. 미국은 1992년에 미국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s)을 제정하였는데, 이 법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채용전 건강검진을 불법화하였습니다. 만약 장애인에 대해 업무를 제한하려고 한다면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구통계적 접근이나 평생위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별 평가에 기초하여야 하고, 임박하고 심각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배제기준을 만든다면 직무와 관련되고, 사업상의 필요에 부합해야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채용전 검진의 불법화는 업무적합성 평가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채용 전 건강검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채용전 건강검진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기여할까?
그렇다면, 채용전 건강검진이 직업병과 결근을 예방할 수 있을까요?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11개의 연구에 대한 코크란 리뷰에 따르면, 채용전 검진을 하지 않은 경우와 일반적인 채용전 검진을 한 경우를 비교한 결과 12개월의 추적기간 동안 병가에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직무별로 특성화된 채용전 검진은 일반적인 채용전 검진에 비해 병가일수를 줄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다만 연구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채용전 검진의 딜레마는 구직자를 거부하면 직업병은 예방할 수 있으나, 근로자의 채용이 거부되는 것입니다. 즉, 채용전 검진은 필연적으로 부당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채용전 검진이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이득보다 해로움이 클 수 있습니다.
[논문] 근로자의 부상, 질병 및 병가 예방을 위한 채용 전 검사, 코크란리뷰 2016
채용전 건강검진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려면
그렇다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채용전 건강검진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1. 채용전 건강진단의 예방효과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채용전 건강검진이 이득이 있다고 확인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위 코크란그룹의 리뷰에 따르면 현재 문헌 상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직종으로는 전문운전자, 크레인운전자, 밀폐형 호흡보호구 착용자, 소방구조팀, 원격지 단독근무자 정도입니다.
2. 채용전 건강진단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건강보호조치와 합리적인 편의제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채용을 거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방관한다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3. 채용전 건강검진에서 업무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더라도 채용 후 직무 수행 능력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채용전 건강검진에서의 업무적합성 평가는 채용이후 질병감시와 연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4. 채용 당사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대안은?
모든 직종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채용전 건강검진은 시행하지 않을 것을 권장합니다. 부당하게 채용의 기회를 박탈할 위해가 이득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위험 직종에서는 근거에 기반한 구체적인 지침과 가이드에 기반하여 채용전 건강검진이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전문운전자, 조종사, 원자력 발전 종사자와 같은 고위험 직업에 대한 구체적 법률이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교사, 식품취급자, 의료종사자를 위한 지침, 미국의 경찰, 응급구조대원, 소방관을 위한 국가차원의 인정된 전문지침도 있습니다. 따라서 채용전 검진은 명확한 규정에 따라 업무적합성 평가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는 배치 전 검진으로 흡수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더라도 곧바로 채용을 제한하여서는 안됩니다. 업무적합성 평가에서는 “나.일정한 조건하에 업무수행가능”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즉 장애나 질환자에 대해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 합리적인 편의제공을 제공함으로써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업무적합성 평가에서 전문가들의 역할?
업무적합성 평가의 목적은 고용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될 장애나 만성질환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장애나 질환이 있더라도 본인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제 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역할이 필요합니다.
- 근로자가 수행할 업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신체적 요소 뿐만 아니라 심리적 요소도 포함됩니다.
- 회사가 시행할 수 있는 지원이나 합리적인 편의제공이 범위를 이해해야 합니다. 회사의 지원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사항도 있고,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사항도 있습니다.
- 만약 사업주가 근거없는 부당한 업무제한을 시도하는 경우 ‘선행의 원칙*’에 따라 사업주를 설득하고, 근로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 업무적합성 평가가 꼭 필요한 고위험직종에 대한 합리적인 채용전 검진 지침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선행의 원칙은 의료윤리 4원칙 중 하나입니다. 이 중 선행의 원칙은 ‘환자의 이익이 언제나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여러가지 이해관계 중에서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기 보다는 악행금지의 원칙, 자율성존중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논문] 브라질의 고용 전 의료 검사: 윤리적 문제 2012
[논문] 필수 채용 전 건강 검진 - 관행과 법률: 정당한가? 2017
글쓴이: 송한수 (오이레터 편집인, 조선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추가적인 정보
- ADA(장애인과 함께 하는 미국인 법 = 미국장애인법): ADA라는 약어를 가진 미국장애인법은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 채용절차법: 2020년 5월 26일부터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률은 채용절차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구직자의 부담을 줄이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이 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용모, 키, 체중, 출신지역, 혼인여부, 학력 등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중대재해법으로 인한 채용거부 논란: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채용전 검진을 통해 기저질환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중대재해법의 부작용을 강조하려는 맥락 속에 나온 기사이긴 했지만, 채용전 건강검진으로 부당하게 채용을 거부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기사] “건강검진 재검만 나와도 채용 안한다” 2021.12
- 배치전 검진을 채용전 검진으로 이용: 채용시 건강진단이 폐지된 직후 시행된 채용전 건강진단의 실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채용후 시행하는 배치전 건강진단을 기존의 채용시 건강진단처럼 사용되는 관행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배치전 건강진단결과 질환 유소견 판정을 받은 사람 중 질환 유소견을 이유로 채용이 거부된 사람은 185명 중 51명(27.4%)이었습니다. [논문] 채용시 건강진단 폐지 후 배치전 건강진단의 실태.2008
- 채용전 건강검진의 비용 부담논란: 공무원 채용신체검사 규정에 따르면 비용은 구직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1년 7월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구직자에게 채용신체검사 비용을 부담시키면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3개월 계약직으로 취직하는데 4만원을 지출해 채용 신체검사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것이 맞나요?”라는 국민신문고의 민원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구체적인 개선방안으로 행정공공기관에서 고용주가 비용을 부담하고 구직자에게는 부담시키지 못하도록 인사규정을 고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2년 마다 시행하는 국가건강검진 결과를 활용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에서는 2022년부터 채용 건강검진 대체 통보서 발급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제도는 최근 2년내 국가건강검진 결과를 활용하는 것으로,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건강in의 나의 건강관리 - 건강검진결과조회 - 채용건강검진 대체통보서(직장제출용)에서 이용가능합니다. [기사] 권익위 “구직자에게 채용신체검사 비용을 부담시키면 안돼” 2021년, [기사] 채용시 신체검사, 국민건강검진으로 대체하자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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