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DM을 받아요.

"우리 아이는 왜 시키는 것만 할까요. 스스로 척척 했으면 좋겠는데."

"할 시간이 되면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책 읽고, 알아서 움직이는 아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짠해져요.

이 마음이 뭔지 아니까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혜린이가 저학년일 때, 저는 시간표를 짰어요.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공부하고, 몇 시에 책 읽고. 제가 설계한 하루를 혜린이가 그대로 따라왔어요. 그게 잘 되는 것 같았어요.이렇게 쭉 가면 되겠다 싶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자각이 왔어요.

혜린이가 착착착 따라오는 게, 사실은 혜린이가 잘 크고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저학년이었고, 외동이었고, 순한 편이었고, 저랑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이 네 가지가 맞아떨어졌을 때는 엄마가 설계한 대로 어느 정도 굴러가거든요.
그게 마치 내 육아가 옳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그게 착각이었어요.

아이가 잘 크고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아이 자신이 없어서였어요.

9살, 10살, 11살 아이가 시간 개념이 잡혀서 척척 움직이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초등 저학년까지는 전두엽이 아직 조용해요.
전두엽은 계획하고,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뇌예요.
이게 본격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하는 게 초등 3~4학년이에요.

그 전까지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어느 정도 따라와요. 착착착처럼 보여요.

근데 3~4학년이 되면서 "왜요?"를 묻고, "싫어"를 하고, 안 따라오기 시작하는 건 아이가 달라진 게 아니에요. 아이가 드디어 자기 뇌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이 전두엽이 완성되는 건 25살이에요.
지금 아이에게 스스로 척척 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을 요구하는 거예요. 아이가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 그 뇌가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아이가 착착착 안 한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근데 왜 그렇게 착착착을 원하게 되는 걸까요.

저도 돌아보면요.

그렇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삶을 살 거라고 믿었어요.
지금 이러다 뒤처지면 어쩌나 싶었어요.
남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못 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어요.

그 마음이 나쁜 게 아니에요. 다 아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거잖아요.

근데 그 불안이 아이한테 전달될 때, 말의 모양이 바뀌어요.

"빨리." "왜 시켜야 해." "이것도 못 해?"

아이는 말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요.
엄마가 지금 불안하다는 것. 내가 뭔가 부족하다는 것. 그게 아이의 하루 공기가 돼요.

착착착 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했는데, 아이 안에 쌓이는 건 불안일 수 있어요. 해도 안 된다는 무기력.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저도 그 악순환을 겪어봤어요.


그러면 스스로 움직이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시켜서는 안 되더라고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경험이 쌓일 때 조금씩 생겨요.

인간은 자기가 직접 뭔가를 해봐야 생각이 생겨요.
시켜서 한 건 기억은 나도 내 것이 안 돼요. 스스로 한 건 틀려도 내 것이 돼요.
실패해봐야 다음번에 다르게 해볼 수 있고, 뜻대로 안 돼서 답답해봐야 어떻게든 뚫어보려는 힘이 생겨요.

아이가 다른 걸 해보고, 틀리고, 돌아오는 그 경험들이 쌓여서 그 아이만의 사람이 돼요.

엄마 시간표 안에서는 이게 일어나기가 어려워요. 할 것이 정해져 있고, 순서가 정해져 있고, 방법이 정해져 있으면 아이는 그냥 따라가면 되거든요. 막힐 일도 없고, 실패할 일도 없어요.

그렇게 자란 아이의 끝이 사실 걱정돼요.

엄마 말 잘 듣는 아이가 자라서 엄마 말 잘 듣는 어른이 될 수 있거든요.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없으니까. 막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착착착을 원했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한테서 가장 중요한 걸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얼마 전에 혜린이가 혼자 요리를 했어요.

제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장보기부터 요리까지 전부 혼자. 부대찌개, 메추리알 조림, 오뎅볶음, 딸기모찌. 마트에 1시간 넘게 있었어요. 매일 가던 마트인데 처음 가는 사람처럼요. 재미나이 라이브를 켜놓고, 어떤 재료를 사야 하는지 물어보고, 가격 비교를 하고, 양을 계산하면서요.

요리는 3시간이 걸렸어요. 간이 안 맞으면 다시 맞추고, 순서가 틀리면 돌아가고.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과물은 꽤 그럴싸했어요.

근데 저한테 더 인상적이었던 건 결과물이 아니었어요.

혜린이 얼굴이었어요. 그렇게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 거였으니까요.


저는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봤어요. 솔직히 끼어들고 싶었거든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 순서가 맞는데. 근데 참았어요.

만약 제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했다면, 그 요리의 주인공은 어느새 혜린이가 아니게 됐을 거예요.


지금 혜린이가 소설을 쓰고, 스스로 장을 보러 가고, 틀렸을 때 다시 맞춰가는 사람이 된 건 제가 잘 가르쳐서가 아니에요.

시간표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에요. 넘어지고 일어날 공간을 뒀기 때문이에요.


착착착 하는 아이를 원하는 마음, 저도 너무 알아요.

그 마음이 나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잖아요.

근데 한 번만 들여다봐 주세요.

그 마음이 아이 걱정인지, 내 불안인지.

아이 걱정이면 기다려줄 수 있어요. 아이를 믿어줄 수 있어요.

내 불안이면 그 불안을 아이한테 넘기지 않는 게 먼저예요.

아이는 공부보다 엄마 눈치를 먼저 읽거든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