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성장, 로맨스 그리고 위대한 드래곤
  
다음에 실린 문서는 바스지아스 군사학교 서기 분과의 제시니아 닐워트가 나바르어에서 현대어로 충실히 옮긴 내용이다. 모든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전사자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이름도 그대로 옮겼다.
그들의 영혼이 말렉에게 맡겨졌기를.



- 이 책은 드래곤 라이더를 양성하는 군사학교를 배경으로, 경쟁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쉴 새 없이 고군분투하는 모험 판타지입니다. 내용 중에 전쟁과 전투, 폭력, 살인 등 위험한 상황과 함께 성적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참고한 후에 모험을 시작해 주세요. 
“고개 좀 숙여봐. 머리카락은 잘랐어야 했어.” 미라는 땋은 가닥을 내 머리에 단단히 당겨 붙이고, 마저 손을 놀렸다. “머리가 길면 커다란 과녁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대련에서나 전투에서나 불리해. 이런 식으로 자라면서 은색으로 변하는 머리카락이 또 있을 리도 없으니 그 녀석들은 안 그래도 널 노릴 거야.”

“언니도 자연색은 길이에 상관없이 점점 드러난다는 걸 알 텐데.” 내 눈동자 색도 똑같이 애매했다. 다양한 색조로 바뀌는 파란색과 호박색이 섞인 옅은 헤이즐넛을 닮은 색이었는데, 사실상 어느 색깔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다른 모두가 색깔을 두고 걱정한다는 점만 제쳐두고 보면 이 머리카락은 나에게 유일하게 흠 없이 건강한 부분이야. 이걸 자르면 겨우 잘하는 걸 두고 내 몸을 벌하는 기분이 들 거야. 그리고 내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아.”

“그렇지 않아.” 미라는 내 머리를 잡아당겨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영리해. 그 점을 잊지 마. 네 두뇌가 네 최고의 무기야. 네 꾀로 상대를 이겨, 바이올렛. 내 말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는 손에 힘을 빼고 머리를 마저 땋은 다음 나를 일으키면서 몇 년에 걸친 지식을 계속 쏟아냈다. 급하게 15분 안에 요약해 설명하느라 거의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관찰력을 발휘해. 조용하게 지내는 건 괜찮지만 주위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네게 유리한 방향으로 파악해. 코덱스는 읽었어?”
“몇 번.” 라이더 분과용 규정집은 다른 분과에 비하면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라이더들이 규칙을 따르는 데 어려움을 겪어서 그렇겠지.

“좋아. 그렇다면 라이더들이 언제든 널 죽일 수 있고, 잔인한 생도들이 실제로 시도하리라는 거 알겠지. 생도가 적을수록 탈곡 때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니까. 계약할 마음이 있는 드래곤의 수는 충분하지 않고, 어차피 살해당할 만큼 경솔한 생도라면 드래곤을 얻을 자격이 없어.”

“잘 때는 빼고. 어떤 생도든 잘 때 공격하는 건 위반 행위야. 코덱스 3조에 보면….”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밤에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야. 가능하면 이걸 입고 자.” 미라는 내 코르셋의 배 부분을 두드렸다.

“라이더의 검은 제복은 자기 힘으로 얻어내야 하는 거잖아. 내가 오늘 튜닉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거 확실해?” 나는 두 손으로 가죽을 훑었다.

“낙낙한 천은 난간다리 위에 부는 바람을 받아서 돛처럼 부풀어오를 거야.” 미라는 나에게 훨씬 더 가벼워진 짐을 건넸다. “옷이 딱 붙을수록 저 위에서도 좋고, 격투 시합을 시작하면 대련장에서도 유리해. 그 갑옷은 늘 입고 살아. 단검도 늘 가지고 다녀.” 언니는 자기 허벅지에 찬 칼집을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이 난 이걸 입을 자격이 없다고 할 거야.”“넌 소른게일이야.”

미라는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남들이 뭐라든 알 바 아니야.”
“그리고 드래곤 비늘은 부정행위 아닐까?”

“일단 탑을 오르면 부정행위 같은 건 없어. 오직 생존과 죽음, 두 가지만 남을 뿐이라고.” 종이 또 울렸다.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미라는 침을 삼켰다. “시간 다 되어간다. 준비됐어?”
“아니.”
“나도 그랬어.” 미라는 입 끝을 올리며 찡그린 미소를 지었다. “난 평생 그걸 위해 훈련했는데도 그랬지.”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배낭을 어깨에 메고 오늘 아침보다는 조금 편하게 숨을 쉬었다. 확실히 훨씬 감당할 만했다. 우리가 나선계단을 차근차근 내려가는 동안 요새의 중앙 행정구역 복도는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했지만, 내려갈수록 바깥의 소음이 점점 커졌다.

창밖으로, 정문 바로 밑에 위치한 풀밭에서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해마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가족은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지원자를 붙잡았다.

요새로 이어지는 네 개의 도로는 말과 마차로 꽉 막혔고, 학교 앞에서 길이 모이는 지점은 특히 심했다. 그러나 나는 들판 가장자리에 보이는 빈 도로들을 보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시체들이 잠드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미라는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굽이 길을 돌기 직전 걸음을 멈췄다. “뭔데… 웁.” 언니는 나를 잡아당기더니,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복도에서 꽉 끌어안았다.

“사랑한다, 바이올렛. 내가 해준 말은 전부 기억해. 사망자 명단에 올라가지 마.” 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힘주어 포옹했다. “난 괜찮을 거야.” 나는 다짐했다.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정수리에 언니의 턱이 부딪쳤다. “나도 알아. 이제 가자.”

미라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떼어내더니, 요새 정문 바로 안에 있는 북적이는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교사들, 지휘관들, 심지어는 우리의 어머니까지도 비공식적으로 모여서 벽 바깥의 광기가 벽 안의 질서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학교의 모든 문을 통틀어서 정문만큼은 오늘 어떤 생도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각 분과마다 전용 입구와 시설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라이더들에게는 자기네 성채도 따로 있다. 허세 가득하고 자기중심적인 새끼들 같으니라고.

나는 몇 걸음을 빠르게 걸어서 미라를 따라잡았다. “데인 에이토스를 찾아.” 미라는 안마당을 가로질러 열려 있는 요새 정문을 향해 가면서 말했다.

“데인?” 데인을 다시 본다고 생각하자마자 미소가 지어지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못 본 지 1년이나 지났는데, 그동안 데인의 부드러운 갈색 눈과 웃는 모습이 그리웠다. 그 조화로운 몸도 보고 싶었다. 우리의 우정도 그리웠고, 적당한 상황만 주어지면 우정 이상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그리웠다. 나를 가치 있는 사람 보듯 쳐다보던 눈빛도 그리웠다. 그냥 다… 데인이 그리웠다.

“나야 분과에서 벗어난 지 3년이 넘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소식으로는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 데인이라면 널 안전하게 지켜줄 거야. 그렇게 웃지 말고.” 미라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데인은 2학년이야”라며 손가락도 흔들었다. “2학년들과는 얽히지 마. 혹시 누구랑 자고 싶다면, 물론 앞날이 어떨지 모르니 자주 그렇겠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럴 때는 같은 학년과 뒹굴어. 생도 사이에 네가 위 학년과 자서 보호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면 최악이야.”

“그러니까 1학년이라면 누굴 침대에 들여도 자유란 말이지?” 나는 슬쩍 히죽거리며 말했다. “2학년이나 3학년만 말고.”
“바로 그거야.” 미라가 눈을 찡긋했다. 우리는 요새를 나서는 관문을 차례차례 통과하여, 그 너머에 펼쳐진 조직적인 혼란에 합류했다.

나바르의 여섯 개 지방 모두가 올해 몫의 군복무 지원자를 보냈다. 일부는 자원했고, 일부는 징벌 대상자였다. 대부분은 징집병이었다. 여기 바스지아스에 모인 우리에게 공통점이라고는 입학시험에 (필기시험만이 아니라 아직까지 내가 통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민첩성 시험까지) 통과했다는 것 하나뿐인데, 그건 적어도 우리가 최전선 보병단의 소모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미라에게 이끌려 남쪽 망루로 이어지는 낡은 자갈길을 걷는 동안에도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에 차 있었다. 학교 본관은 바스지아스 산비탈에 지어졌는데, 마치 봉우리 능선 자체를 쪼개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지원자들과 눈물 바람인 가족들 위로 제멋대로 뻗어나간 무시무시한 탑들에다가, 안쪽으로 높이 솟아난 성채를 지키기 위해 지은 몇 층짜리 석벽들, 그리고 모퉁이마다 종을 품고 서 있는 방어 망루들까지.

모여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보병 분과의 입구인 북쪽 망루 아래에 줄을 서기 위해 움직였다. 일부는 우리 뒤쪽으로 향했는데, 군사학교 남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힐러 분과 방향이었다. 요새 지하의 아카이브로 이어지는 중앙 터널로 들어가는 몇 명을 보자 질투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힐러 분과에서 이어지는 서기 분과에 들어갈 사람들이었다. 라이더 분과 입구는 북쪽에 자리 잡은 보병용 입구와 마찬가지로 망루 기단부에 있는 견고한 문에 불과했다. 다만 보병 지원자들은 바로 1층에 있는 분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반면, 라이더 지원자들은 올라가야 했다.

미라와 함께 라이더 줄에 서서 서명할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실수로 위쪽을 보고 말았다. 머리 위 높은 곳에, 대학 본관과 그보다 더 높은 남쪽 능선 위에 우뚝 솟은 라이더 분과의 성채 사이를 가르는 계곡을 난간다리가 가파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으로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라이더 생도와 라이더 지원자 사이를 갈라놓을 죽음의 돌다리였다. 내가 곧 저길 건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지난 몇 년 내내 서기용 필기시험 준비만 했다니.” 목소리에서 나도 모르게 날 향한 비아냥이 뚝뚝 떨어졌다. “책상이 아닌 평균대 위에서나 놀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앞줄이 점점 짧아지며 지원자들이 문 안쪽으로 사라지는 가운데, 미라는 내가 한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바람에 발밑이 흔들리면 안 돼.”

우리 앞에 서서 젊은 남자를 안고 울던 여자가 배우자의 손에 이끌려 뒤로 밀려났다. 줄에서 빠져나간 그 부부는 눈물 바람으로 비탈길을 내려가, 도로 양 옆에 줄지어선 지원자 가족 무리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 앞에는 수십 명의 지원자만이 명단 기록관들 쪽으로 움직였다.

“네 앞에 있는 돌만 보고 아래는 내려다보지 마.” 미라는 얼굴선을 팽팽하게 굳히며 말했다. “균형 잡기 좋게 팔은 뻗고, 혹시 배낭이 미끄러지거든 떨어뜨려버려. 너보다는 배낭이 떨어지는 게 나아.”

뒤를 돌아보니 몇 분 사이에 내 뒤로 수백 명이 줄을 선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을 먼저 보내는 게 좋을지도….” 갑작스레 공황 상태에 빠졌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안 돼.” 미라가 대답했다. “저 계단에서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그러면서 탑 쪽을 가리켰다. “두려운 마음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 공포에 사로잡히기 전에 난간다리를 건너.” 줄이 앞으로 움직였고,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8시였다. 수천 명의 지원자는 그 사이에 완벽하게 각자 선택한 분과로 나뉘어서 명단에 서명하고 복무를 시작하기 위해 줄을 섰다.

“집중해.” 미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홱 앞으로 돌렸다. “가혹한 소리 같겠지만 저 안에서 우정 같은 건 찾지 마, 바이올렛. 동맹을 구축해.” 이제 우리 앞에는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 명은 꽉 채운 배낭을 진 여자였는데, 높이 솟은 광대뼈와 계란형 얼굴 때문에 신들의 여왕인 아마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은 여러 줄로 짧게 땋아서 똑같이 짙은 갈색의 목덜미까지만 오게 붙였다. 두 번째 지원자는 조금 전 어떤 여자가 붙잡고 울던 근육질의 금발 남자였다. 그 남자는 앞줄 여자보다 더 큰 배낭을 지고 있었다.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는 두 사람을 보다 깜짝 놀라 속삭였다. “저 사람…?”

미라가 흘긋 보더니 작게 욕을 했다. “분리주의자의 자식 아니냐고? 맞아.
저 녀석 손목 위 반짝거리는 저 표식 보여? 저게 반역의 인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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