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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골프 약속을 잡으면 늘 비가 와요. 파티를 열려고 하면 윗집에서 불평부터 하죠. 아마도 내 인생은 감기에 걸리거나 기차를 놓치는 불행의 연속일 것 같아요. 어떤 것도 날 비껴가지 않죠.’
'Everything happens to me’의 가사처럼 심상히 넘기기도 어려운 불운들. 서글픔에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그래서일까. 의식적으로 몸을 사릴 수 밖에. 올해는 독감에 걸리려나? 맹장이 터지지 않을까? 차곡차곡 쌓여온 데이터가 올해 닥칠 불운을 스포일링하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일찌감치 예방 주사를 맞고,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타이어 공기압도 점검한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자잘한 징크스로 가득한 것 같다. 소설을 발표하기 전 누군가에게 작품을 보여주면 결과가 좋지 않거나, 황색 신호에 교차로를 지나면 그날은 운수가 사납고 중요한 날에는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한다. 어쩌면 한 해를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더 잘 살고 싶다는 열망, 미래를 향한 불안이 자진해서 징크스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마마스 건의 ‘This is the day’ 역시 징크스에 관한 노래다. 1절에서는 자신의 불행을 나열하다 2절부터 불운을 낙관으로 돌파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기분. 어제는 완결된 이야기고, 인생의 막이 올랐어요. 저주가 풀린 것 같아요’ 라면서. 다시 돌이켜본다.
등산하다 다리를 접질렸던 날,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 등에 업혔다. 그해에 나는 막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계속 소설을 쓰고 있었지만,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의 우울과 비관을 숨기려 했으나 가까운 이들은 이미 짐작했나 보다. 한참을 내려가던 중 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너 저게 뭔지 아냐?” 아버지가 가리킨 나무의 우듬지에 새 둥지 비슷한 식물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저것도 나무야?” “교목에 붙어 사는 나무지. 겨울에도 열매 맺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고 해서 겨우살이.” 식물도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시기가 다른 것처럼 사람도 그렇다고, 오래 기다린 끝에야 뿌리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 괜찮다며 아버지는 나를 업고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기차여행이 무산된 해도 돌이켜본다. 그해는 집에서 혼자 불꽃놀이를 봤다. 코로나19로 몇 해간 제야 행사를 볼 수 없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누리는 기쁨이었다. 멈춰 있던 것들이 다시 생기를 띠고, 칠흑처럼 어두웠던 마음에 선명한 색이 칠해지는 기분. 색색으로 물드는 밤하늘을 보며 새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일 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 곡식이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익어가는 시간. 아픔과 고통, 슬픔을 넘어서며 계속 살아내는 시간. 그렇게 가늠해 보면 살아간다는 게 참 대견하고 아름답다. 올해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징크스라 부르며 회피했던 내 부족한 면면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제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세밑을 기다린다. 완결된 어제는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반갑게 맞아들일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