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30 25호
 근황
 지난번의 다짐이 무색하게 또 맥주에 치킨을 먹었고요... 역시나 최고의 맛! 추천합니다^^! 요전에 도서전에 다녀왔어요. 가장 큰 목적은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구매 사은품으로 주는 에코백이었고요 역시나 예쁘네요>_< 현대지성하면 생각나는 그 초록색이에요. 그리고 결심과 다르게 또 잔뜩 샀고요, 또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어서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거 같아요. 근데 요즘 사실 날씨 탓인가 계획보다 작업 속도가 느려서 좀 스트레스가 쌓인 탓인지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인 책을 사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았어요. 대신 인터넷으로 구입한 책이 도착했고요. 제목은 <지옥>이에요. 표지부터 끔찍해요. 하하하>_<
 강아지는 잘 지내고 있긴 한데 더워서 그런가 인형 던져달라고 물고 오긴 하는데 한 두 번.. 하나? 그러면 금방 헥헥거리면서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꽃분이 유튜브 보니까 쿨링패드 잘 쓰길래 저도 하나 깔아줬는데 그 바스락거리는 느낌에 놀란 뒤로 그쪽 방향은 아예 가지도 않아서 치웠어요. 그리고 새로 산 간식은 약간 뻥튀기 같은 느낌으로 혀에 닿으면 사르르 녹는 그 과자인데 이것도 혀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다고 울고불고 아주 쌩난리를 쳐서 그냥 버렸네요. 하... 이렇게 싫은 게 많을 수가.
 아사히나 아키 <식물소녀>
  朝比奈秋 <植物少女> 朝日新聞出版
 아이를 출산하는 상황에 뇌출혈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어머니를 둔 여성, 미오의 시점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내용은 크게 어린시절 미오가 본 엄마부터 어른이 되어 본 엄마, 그리고 결국 사망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요.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지만 뇌의 일부 기능은 살아 있어서 입에 무언가 들어오면 씹고, 손을 꼬집으면 쳐내지만 이것은 본인의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척수반사처럼 벌어지는 거예요.
 어린시절 미오는 그런 엄마를 매일같이 찾아가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빠와 할머니는 물론 다른 어른들은 엄마의 예전 모습을 아니까 괴롭고 슬프기도 하지만, 미오 입장에서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완전히 몸을 맡기고 기댈 수 있고, 아빠와 할머니에게 하기 힘든 말도 엄마에게는 다 털어놓을 수 있어요. 그럼 엄마는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마치 미오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애틋함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남에게 하지 못하는 폭언을 엄마에게 퍼붓기도 하고, 엄마의 사진을 SNS에 올려서 날조하기도 하고, 예쁘게 치장하는가 하면 고문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반응이 없는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사람임과 동시에 그런 역할을 주어 사는 것에 의미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 한 인간이 사는 의미는 본인이 아니라 남이 주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이 질문은 마지막에 엄마의 장례식으로 이어집니다. 미오는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요. 20대 중반에 식물인간이 되어 20년이 넘도록 침대에만 누워 있다 죽은 사람의 그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미오는 성인이 되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이제 엄마에게만 의지하던 것도 하지 못하게 되고, 엄마처럼 되는 것이 두렵다고 느끼게 돼요. 식물인간이 된 순간 이미 죽은 사람인 것처럼 여기던 친척들이 모여 엄마에 대해 말하며 그 죽음을 새삼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미오는 그제야 엄마란 사람에게도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시간부터 존재해온 것을 떠올리고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고 떠나보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미오가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앞에 묘사된 엄마의 특징과 연결되어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고요ㅠ0ㅠ
 이 작품은 환자를 돌보는 입장인 아빠나 할머니의 시점이 아니라 딸인 미오의 시점에서 서술되어서 살아서 움직이는 게 당연한 다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엄마가 완전히 분리되어 묘사되었을 때 느껴지는 그 괴리감이 잘 느껴지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 옆자리에 입원한 미오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애가 나오는데 미오의 성장과 함께 남자애도 성장하지만 여전히 식물인간 상태거든요. 엄마와 남자애의 대비되는 묘사도 그렇지만, 작품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이어질 그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도, 그의 삶이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은 독자인 저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질리언 매캘리스터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질리언 매캘리스터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이경 옮김 시옷북스
 할로윈 준비를 하던 이혼전문 변호사 젠은 그날 밤 아들 토드가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작됩니다. 젠은 토드를 구하려고 하지만, 이상하게 아들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슬픔과 절망에 휩싸인 채 잠이 든 젠은 눈을 뜨니 자신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로 돌아간 것을 발견합니다.
 루프물... 좋아하시나요? 전 좋아해요. <엣지 오브 투모로우>나 <나비 효과> 같은 영화의 묘미는 잘생긴 남자가 구르는 것...도 있겠지만() 그 무슨 짓을 해도 절망적인 현실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이잖아요. 근데 이 책은 특이하게 점점 과거로 시간을 이동하기는 하지만, 루프는 아니에요. 회귀물이냐고 하면 그것도 좀 애매한 느낌? 이건 완전히 회귀해서 아들을 낳기 전으로 점프하는 것도 아니고, 잠이 들면 다음날로 가는 게 아니라 그 전날로 이동하거든요.
 초반에 젠은 자신의 일이 바쁘기도 하고, 아들이 자라면서 관심사도 많이 달라지고,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해서 예전같지 않은 사이가 된 터라 자신이 관심을 소홀히 한 사이에 아들이 나쁜 길로 빠졌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해요. 그런데 매일 하루씩 전날로 가다 보니 기껏 사건을 정리한 노트는 도로 백지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과거로 간다고 해서 원래 하던 일을 완전히 내버리고 아들만 감시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주어진 24시간 안에서 실제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거든요. 그런 어려움 속에 젠은 조금씩 사건의 본질로 다가가게 되고 자신이 왜 자꾸 과거로 가는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암튼 그냥 거두절미하고 재미있어요>_< 최근에 읽은 것중에 엔터테인먼트적으로는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자꾸 과거로 가니까 지금 한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아들을 구했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는 와중에 자꾸 새로운 발견이 빵빵 터지니까 진짜 조금만 읽고 덮어야지 이게 안 되더라고요. 요 작품의 포인트는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던 일이 막상 그날을 다시 살게 되니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잘 살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말까지 벅차오름. 영상화될 예정이라는데 그것도 기대되네요. 남편 역할을 맡을 배우가 제발 잘생겼기를>_<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우에다 사유리의 <화룡의 궁華竜の宮>입니다. 25세기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대부분의 육지를 잃은 지구에서 육지와 바다로 나뉘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SF소설이에요. 상권을 다 읽어서 요번에 하권 읽고 정리해볼까 해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개인 메일로 발행하는 것이라 스팸으로 분류될 수 있으니 메일이 보이지 않으면 스팸함을 확인해주세요.  
 책에 대한 감상이나 추천 책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메일로 보내주세요. booksowner@sozan.net
소장기관
일어 번역가 이진아
booksowner@sozan.net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