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위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일까요? 솔직히 저는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심술을 부리는 것은 아니구요, 단지 정말 순수하게(?)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제게 한국 영화는 당연하다는 듯 항상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언가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편의점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늘 한국 과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늘 거기에 있는 홈런볼과 초코송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듯, 저는 한국 영화에 과연 위기라는 게 있을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흔히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재벌집 걱정이라고들 하던데요. 제게 한국 영화는 그런 연예인, 재벌집 같은 존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국 영화의 위기와 관련한 몇 가지 소식들을 접하고 보니, 그동안 분명 보긴 봤는데도 못 본 척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증상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재 한국 영화는 분명 아픈 상태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심지어 꽤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편의점 비유를 했으니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최근 ‘영화 편의점’은 ‘국산 과자’보다 ‘외국 과자’가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단순히 말해서 국산 과자의 가격 경쟁력 때문이겠죠. 그러니 편의점 점주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과자보단 외국 과자의 발주량을 늘릴 것이 당연합니다. 아무리 애국자라고 한들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과정으로 발주량이 줄어들면 그 끝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과자 제조사들은 하나둘씩 국산 과자의 생산을 중단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대엔 외국 과자만 남게 되게 될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구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탓을 하고, 누군가는 티켓값을 탓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넷플릭스를 숨은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가 시작한 OTT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너무나 저렴하게 영화를 소비하다 보니, 영화관 관람의 가격 경쟁력이 국적을 불문하고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장도 망하지 않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티켓값을 올렸던 것이고, 티켓값이 오르니 관객들은 또 다시 극장을 안 찾는, 그런 악순환을 시작한 것이 넷플릭스라는 것인데, 계속해서 이런 가설을 세우다 보니 대체 이런 것들이 지금에서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딱히 새로운 얘기인 것도 아니고요.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지금 몰라서 더 심각한 건 해결책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실현 불가능한 단 한 가지의 방법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바로 ‘금 모으기 운동’입니다. 막대한 이득을 챙긴 사람들이 망쳐놓은 무언가를, 국민들 개개인의 희생으로 수습해야 했던 그 운동밖에 떠오르지 않다는 것이 답답한 상황입니다.. 정말 ‘운동’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제는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그 운동 말고는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그런데 또 ‘운동’이라고 하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식으로라도 운동을 하긴 해야하는 상황이 맞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하기 싫은 금 모으기 운동 식의 '한국 영화 보기’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운동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짜고짜 한국 영화 보는 운동 말고, ‘좋은’ 한국 영화 보기 운동. 쉽게 말해 좋은 영화만큼은 확실히 힘을 모아주자는 것입니다. 함께 ‘요즘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안 본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좋은 영화만큼은 꼭 본다’로 바꿔보는 겁니다. 그와 관련한 명확한 지표들이 쌓이다 보면, 제작자들이 정말 약간의 성의라도 더 들일 확률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말하고 보니 너무나 사소하고 불확실한 움직임인 것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는 개인이 더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싶은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좀 그러니, 미약한 운동이라도 한 번 시작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미약하지만, 이 운동과 관련한 영화 평론가 김철홍의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만을 확실히 좋다고 말하겠습니다. 원래도 그러긴 했지만 더욱 더 제가 본 것을 최대한 정확히 말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조금만 더 믿어주세요. 제가 열심히 뛰어서 미리미리 볼 만한지 안 볼 만한지 최대한 말씀드려 볼 테니까, 정말 볼 만하다고 한 영화들만큼은 영화관에서 봐주시는 것을 고려해 주시길 부탁드려 봅니다. 좋으면 영화 좋다, 또는 김철홍 눈 좋다😅고 소문도 내주시구요.

  


조금 더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계기는 최근 안태진 감독의 <올빼미>를 본 것 때문이었습니다. <올빼미>는 조선 인조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눈이 보이지 않는 어의 경수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천민 출신 경수는 뛰어난 침술 실력 덕분에 궁에 취직을 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입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왕실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영화의 마지막에 경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자신이 본 것을 말하느냐, 아니면 못 본 척하느냐. 그냥 넘어가면 아무 일 없이 공무원의 삶을 살 수 있지만, 사실을 말하게 된다면 아픈 동생을 남겨둔 채 싸늘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과연 경수는 무슨 선택을 내렸을까요?


아니 과연 철홍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까요? 사실 한국 영화보다 훨씬 더 위기인 것은 어느덧 50호를 넘어간 원데이원무비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일수록, 영화 <올빼미>처럼 더욱 본질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올빼미>는 9월 개봉한 <공조2> 이후 지금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은 유일한 한국 영화라고 합니다. 한국 영화가 아무리 위기여도 영화 자체가 좋으면 관객들을 극장에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좋은 예시를 보여준 <올빼미>를, 김철홍이 추천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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