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서 인턴기자가 플랫팀에 지난주부터 합류했다고 말씀드렸죠? 류현서 인턴기자가 전해드리는 첫 '플랫한 문화생활' 입니다.
📚마녀의 본능이 있다면, 그건 사랑 <델마>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입주자 여러분, 이번 레터로 처음 인사드리게 되는 류현서 인턴기자입니다. 지난주 첫 출근 이후 저는 요즘 무수히 많은 ‘처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실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쁨보다는 모종의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면 매번 낯설다는 느낌이나 두려움이 따라오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처음’은 결국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감정을 알아가고, 이전에는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일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쩌면 기이하기까지 한 어느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최근 재개봉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SF, 멜로·로맨스·퀴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델마(2017)>입니다.
마녀도 사랑은 처음이라
분홍색 벚꽃잎 대신 바싹 마른 나뭇잎 사이를 헤매며 강의실로 향하는 오슬로의 소녀 델마.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대학 신입생 델마는 우연히 만난 아냐에게 처음 겪는 끌림을 느낍니다. 하지만 델마의 ‘첫사랑’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합니다. 델마에게 사랑은 발작이고 경련입니다. 아냐와 처음 눈을 맞춘 순간 유리창에 까마귀가 날아드는가 하면, 두 사람이 호흡이 가까워질 땐 온 천장이 무너질 듯 진동합니다. 델마는 매번 정신을 잃고 마는데요. 병원은 정신적인 문제로 발현되는 발작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아냐를 만나 시작된 델마의 발작은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처럼 보이기도, 종교적 죄의식의 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요. 하지만 곧 델마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마는 ‘초능력자’ 내지 ‘마녀’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를 두려워한 델마의 아버지가 신의 목소리라는 명목 아래 델마의 욕망을 통제해 왔다는 것도요.
가부장제, 종교적 억압, 그리고 자기검열
무균지대처럼 보여왔던 델마의 삶엔 가부장적 질서와 종교적 억압이 존재합니다. 델마의 아버지는 델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습니다. 아냐를 만나 혼란스러워하는 델마에겐 “외로워서 그런 거야”라고 그의 감정을 부정하고, 주기도문을 외도록 권유합니다. 그의 손을 불꽃에 가져다 대며 더 큰 고통을 가하기도 하죠. 가정 내의 통제는 델마 스스로에 대한 검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부장제, 종교적 억압에서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낯설지 않습니다. ‘정해진 역할을 벗어난 여성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곤 했던 중세 마녀사냥의 역사부터, 여성의 권리와 욕망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을 함구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어요. 최근 자신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유능하지 않다고 지속적으로 믿는 ‘임포스터 증후군’ 을 경험했다는 한 여성 정치인의 토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녀의 서사를 전복하는 델마의 성장은 홀가분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묵인되어 온 할머니의 역사를 마주한 델마는 결심합니다. 비록 타인을 해칠 수 있는 힘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본성과 그에 따른 선택을 결코 타인(아버지)에게 종속시키지 않겠다고요.
그렇게 각성한 델마는 신을 닮은 모습으로 강림합니다. 고통을 학습시킨 가부장을 응징하고 어머니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랑하는 아냐와 입맞춘 후에 ‘광장’의 군중 사이로 유유히 모습을 감춥니다. 여느 여성과 같은 모습으로요.
결국 델마의 본성을 깨운 것은 아냐와의 만남, 즉 ‘사랑’이었습니다. 연인과의 사랑, 꿈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 스스로를 향한 사랑 등 사랑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그 마음의 크기만큼 괴로움을 동반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아냐를 만난 후 처음 겪는 감정과 변화에 두려움에 떨었던 델마처럼요.
하지만 그 지난한 사랑의 과정이 나의 욕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페미니스트 사상가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누구의 승인에 자신의 가치를 맡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은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두려움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금의 내 욕망을 살피고, 나를 규정할 권한을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합니다.
마녀라고 불려 온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해온 ‘신’이라는 이름표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나를 구하러 올 ‘나의 구원자’ 는 나의 욕망을 바라보고 믿어줄 내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