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6

직업성 질환의 단계적 이행과 독성발현경로


조용민

직업성 질환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직업성질환은 작업환경에 존재하는 유해인자에 노출되여 발생하는 질환을 주로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노출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질환은 심각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출이 질환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것, 노출과 질환은 각각 원인결과에 해당한다는 것, 그리고 노출과 질환 각각을 모두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직업성질환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요소는 노출질환이 될 것이고, 이 둘은 하나의 화살표로 이을 수 있겠습니다.

업무상질병의 판정 중 유해인자의 노출과 직업성질환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결국 아래 그림의 노출질환사이에 화살표를 그리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노출과 질환인지에 따라 화살표가 굵어질 수도, 희미할 수도 있습니다. 화살표의 굵기를 우리는 ‘과학적 근거수준’이라고 부릅니다.

직업성질환의 아주 단순한 모식도. 직업성질환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요소는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과 의학적 진단을 통하여 밝혀진 질환입니다. 노출과 질환은 관찰가능해야 합니다. , 증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출’에서 ‘질환’까지의 경로


노출과 질환이 관찰가능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노출에서 질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관찰가능한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노출과 질환 사이의 화살표 위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출발역이 서울이고 종착역이 부산인 노선에 대전, 대구 등의 경유역을 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출에서 질환으로 이어지는 과정 중에서도 관찰가능한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의 경유역, AOP


이렇듯, 유해인자의 노출이라는 원인에서 질환의 발생이라는 결과를 경로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독성발현경로(AOP, Adverse outcome pathway)입니다.


AOP는 다음 3가지를 제공합니다.

1) 유해인자 노출에 따른 건강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생물학적 상호작용과 독성 메커니즘 정보

2) 표적 독성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세포 또는 생화학적 테스트 방법

3) 독성 메커니즘의 세부 단계를 식별할 수 있는 근거


AOP에 대한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NTP)의 설명



AOP의 기본적인 요소


위의 그림에서, 화살표가 시작하는 출발점은 분자적 시작점(MIE, molecular initiating event), 종착점은 독성영향(AO, adverse outcome), 중간단계는 핵심현상(KE, key event)이라고 하며, 이들은 핵심현상관계(KER, key event relationship)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AOP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노출가능한 유해인자(PS, prototypical stressors)별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AOP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


그런데 세상에는 유해인자의 종류도 많고, 그로 인하여 생겨날 수 있는 질환의 수도 많으니 유해인자와 질환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의 개수, AOP의 수도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화학물질 규제 근거로서 AOP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미국 환경보호청(US 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EU JRC, Joint Research Centre) 등과 협력하여 AOP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인 AOP 지식 베이스(AOP KB, Knowledge Base)를 개발, 운영하고 있습니다.

AOP KB

AOP 정보 공유의 일환으로 개발된 플랫폼 중 하나인 AOP WikiAOP 정보를 보다 쉽게 검색, 수집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AOP 정보는 KE, KER별로 검색할 수 있고, 노출가능한 유해인자(PS, prototypical stressors)별로도 관련 AOP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AOP Wiki



‘노출’과 ‘질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노출에서 질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KE는 분자/유전자 → 세포/조직 → 기관/계 → 개체/집단의 단계로 이루어집니다AOP Wiki에 등록된 AOP no. 443전이성 유방암으로 이어지는 DNA 손상과 변이(DNA damage and mutations leading to metastatic breast cancer)’인데요. 각각의 MIE, KE, AO, PS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MIE: DNA 손상과 변이

KE: DNA 회복 실패, 변이 증가, 마이크로 RNA 발현 증가, SIRT1 발현 감소, NFκB 활성화

AO: 전이성 유방암

PS: 에틸 알코올


이를 종합하면, 에틸 알코올의 노출에서 시작한 경로는 DNA 손상과 변이, 전사체나 단백체 특이 발현, 에스트로젠 수용체 길항, 육종세포의 상피 중간엽 전이 등을 거쳐 유방암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AOP no. 443 DNA damage and mutations leading to metastatic breast cancerAOP 모식도


산업보건에서 AOP의 활용


이와 같이, AOP는 노출 → 개체 반응 → 질병 이행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이벤트라고 부릅니다. , AOP는 어떤 유해인자의 노출로 인하여 생겨날 수 있는 독성영향을 보여줌으로써 유해인자 관리 대책을 세우는 기본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AOP 정보는 새로운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예측하고(산업안전보건법 제108), 이를 통하여 유해성위험성을 평가하며(산업안전보건법 제105), 유해인자를 분류하고(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141), 관리(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143)하는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업보건 분야에서 AOP를 개발하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침이 이미 KOSHA Guide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KOSHA Guide T-33-2023 화학물질 독성발현경로(AOP)의 개발 및 이해에 관한 지침


또한 어떤 공정에서 작업자들에게 노출가능한 화학물질 목록을 만들 수 있다면, 대상 공정 작업자들에게 생겨날 수 있는 AOP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에 맞는 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이미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반도체산업 화학물질 독성발현경로 수준별 DB 구축 연구


 

바이오마커를 통한 질병의 이행 단계 확인, 그리고 질병의 규명과 예방


AOP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PS, MIE, KE, AO)관찰 가능한것들이어야 합니다. 관찰 가능하다는 말은 현재의 기술로 정성 및 정량 측정가능해야 하며, 이벤트를 설명할 수 있는 특이성이 입증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생체 안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은 대부분 생체시료를 통하여 알게 되며, 이를 알려주는 것이 바이오마커입니다. 바이오마커는 혈중 납과 같은 노출의 지표일수도, 부가체,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등과 같이 오믹스학에 기반한 영향의 지표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AOP는 노출에서 질병까지의 바이오마커들을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직업성질환을 판정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AOP는 직업성질환 판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후향적으로 바라볼 때, 작업자 개인 또는 집단에게서 영향 지표 바이오마커들이 관찰되고, 노출 지표 바이오마커들이 관찰된다면 원인(노출)’결과(질환)’의 화살표를 굵게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바이오마커를 분석해야 하는지는 AOPKE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전향적으로는 ‘‘예방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직업성질환의 예방은 노출에서 질환까지 이르는 단계적 과정을 차단하는 것입니다(물론, 노출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노출 이후의 이벤트들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벤트들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환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작업자들의 초기 건강영향(적어도 internal response)을 관찰할 수 있다면 이는 보다 적극적인 직업성질환 예방 활동이 될 것입니다.


노출과 질병의 이행과정과 바이오마커. ExternalInternal exposure는 각각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통하여 알아볼 수 있습니다. Toxicant target interaction은 오믹스 분석 등을 통하여, Internal responseClinical response는 임상의학 진단 검사가 필요합니다. Internal exposure부터의 과정은 대부분 생체시료 중 바이오마커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림 출처: International journal of hygiene and environmental health. 2019; 222(5): 727-37)

  


산업보건 분야에서 바이오마커의 활용 사례


이러한 생각들은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연 산업보건 분야에서 AOP나 질병 초기단계 바이오마커들이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요? 작업자들의 생체시료 중 질병의 초기 바이오마커를 검사하여 이를 직업성질환 규명이나 예방에 활용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들린다면, 다음의 논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Yuan (2020)은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하는 작업자들이 OSHA(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PEL(permissible exposure limit)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의 카드뮴에 노출되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들에게서 miRNA 122-5pmiRNA 326-3p의 발현이 유의하게 증가함을 발견하였습니다. miRNA 122-5pmiRNA 326-3p는 카드뮴 노출이 유도하는 신장독성의 초기 바이오마커로 제안됩니다(Gene. 2020; 724: 144156.)    


노출과 질환 사이의 화살표를 잇는 일, 화살표 위의 다양한 이벤트들을 알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는 일, 이러한 AOP와 바이오마커들을 이용하여 화살표의 굵기를 보다 두껍게 만드는 일이 이미 국내외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AOP 정보는 공유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산업보건 분야에서도 다양한 AOP를 개발, 등록하며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초기 건강영향의 다양한 바이오마커들을 참고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글쓴이: 조용민

서경대학교 나노화학생명공학과 교수

사단법인 한국산업보건학회 총무이사

사단법인 한국환경보건학회 총무이사

 

2024221()부터 23()까지 한국산업보건학회 동계학술대회가 자율안전보건관리를 위한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여수 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 드립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conf.kih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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