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을 쓰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일로 들리겠지만 내게는 오랜 익숙함과의 별거를 뜻한다. MS DOS로 처음 컴퓨터에 입문해서 윈도우 95, 98, XP까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가정에서 태어나 첫돌에 마우스를 잡고 평생 어긋남 없이 자라온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 소문난 효자가 사과 모양의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고 탈선해버린 사건이다.

 물론 예견된 가출이었다. 이미 아이팟과 아이폰, 애플워치와 에어팟까지 차근차근 애플의 생활권으로 발을 들여왔다. 카페에 갈 때면 반짝이는 은빛 사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마침표라 할 수 있는 맥북으로의 전환은 유독 망설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삐 돌아간다는 이유였다. 사실은 관성 때문이었다. 수십 년의 익숙함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주저함은 심지어 맥북을 집에 들이고도 계속됐다. 언박싱은 커녕 손도 대지 않은 채 두어 달을 익숙한 윈도우 세상에 머물렀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사과 상자를 열어제꼈다. 애플 제품을 처음 개봉할 때 밀려드는 특유의 설렘과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불안이 동시에 나를 덮쳤다.

 브랜드 경험이 충격적으로 만족스러울 때, 요즘 나는 그 회사의 주식을 산다. 한 시간 정도 맥북을 만져보고 바로 애플 주식을 매수했다. 이건 단순히 편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앞으로 절대 윈도우의 세계로 못 돌아갈 거란 확신이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맥북 선배님들께서 팔짱 낀 채 웃고 있는 상상을 한다. 선배님들 제가 이렇게나 무지하고 건방졌습니다. 이렇게 고매한 세계가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요즘은 하루 종일 맥북과 함께 논다. 늦은 나이에 얻은 막둥이 보듯 "아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를 연발하며 우리 새끼가 천재는 아닐까 행복회로를 돌린다. (하늘에 있는 잡스 선생님이 이 새끼는 뭐지 싶을지도) 쓰윽과 쓰윽-쓰윽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UX에 감탄하고, 마우스라는 게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존재인지 이제는 알고 있다. 하는 일은 똑같아도 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일도 뭔가 더 잘 되는 기분이다. 물론 그건 기분이지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맥북은 내가 알던 컴퓨터의 모든 경험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시감 드는 면이 있으니, 바로 키보드 자판이다. 예전부터 키보드를 의아하게 생각해왔다. 왜 엔터키가 여깄는지, 글자 배열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특히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어째서 스페이스 바인지. 물론 나무위키는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려주지만 결국 처음 고안했을 때의 원형이 지금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애플마저 그걸 고집했다는 게 조금은 의아했다. 미루어 짐작건데 당연히 키보드의 혁신도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다만 기존의 익숙함을 뛰어넘을 만큼 더 나은 대안이 없었을 테지. 쓰고 보니 무슨 애플 측 국선 변호사 같네.

 아무튼 애플조차 어찌하지 못한 키보드를 바라보며 관습이란 참 무섭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당연하지만 지금의 자판 배열이 우리에게 최선은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또 문자마다 메커니즘이 다른 법인데 전세계 공통의 최선이 있을 리가. 그럼에도 더 나은 방향의 개선을 누군가 시도한다면 무지막지한 욕과 마주할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자판 배열 속을 헤매며 평소보다 수십 배 느린 속도로 악성 댓글과 불만의 리뷰를 올릴 것이다. 충전기도 빼 버리는 애플마저 타협할 만큼 익숙함이란 이토록 편안하고, 편안해서 무섭다.

 일상에서도 당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들과 숱하게 마주친다. 우리는 그것들이 옳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해서 옳다고 여기는 착각 또한 삶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다. 꼰대가 된다는 건 옳고 그름을 차갑게 바라보길 거부하고 익숙함에 기대 태연하고 당연한 얼굴로만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맥북으로의 입문은 세상에 당연한 건 없음을, 그리고 당연하단 이유로 내가 미처 못 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광활할지를 가늠해 준 계기가 됐다. 맥북을 쓸 때만큼은 당연하단 말이 그 옛날 SBS 예능의 구호처럼 공허한 주문으로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