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 아이돌 | 페미돌로지
아이돌 생일카페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다
“OO아, 생일 축하해!”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그런데 사실 여기는 ‘OO이 없는 OO이 생일 파티’ 현장이에요.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이곳은 ‘아이돌 생일 카페’거든요. ‘내 아이돌’의 생일을 맞아 그의 사진이 곳곳에 전시된 카페에 모여 팬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거예요. 음료를 주문하면 엽서와 스티커, 포토카드도 받을 수 있고요.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덕질’에 심취한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인 ‘나’와 아이돌 팬인 ‘나’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질 때 말이에요. 위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연 팬덤 문화와 페미니즘은 공생할 수 있을까요?

 지니  저는 K-pop 가수, 그중에서도 남성 아이돌을 좋아해요. 그런데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페미니즘의 핵심 키워드는 ‘진보’나 ‘저항’인 것 같은데, 남성 아이돌 덕질은 그런 키워드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요. ‘이게 맞나?’ 싶었죠. 제가 너무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파란  저도 좋아하는 남성 아이돌이 있는데요. 가끔 페미니스트인데 남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어렵지 않냐는 소리를 들어요.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 것 같긴 해요. 여성혐오적 가사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아이돌이 많았잖아요.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가수도 그런 적 있고요. 


 지니  그렇지만 사실 아이돌의 여성혐오적 행보에 맞서 가장 열심히 목소리를 내는 건 팬들이거든요.  체감상 아이돌 팬덤은 여초인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팬들이 함께 페미니즘에 관해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고요. 맹목적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파란  SNS가 발달하면서 아이돌과 팬 사이 허물없는 소통이 중요해지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문화가 형성된 거예요.


 지니  남성 아이돌 씬에서 여성혐오 이슈가 제기되면 바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피드백을 요구하는 해시태그가 등장하잖아요. 아, 저 파란과 여성 아이돌에 관한 얘기도 하고 싶어요.

 파란  좋아요! 지니, 혹시 최근 방영한 Mnet 프로그램 <퀸덤2> 보셨나요? 약 2년 전에 방영한 <퀸덤>의 뒤를 이은 경연 프로그램인데요. 여성 아이돌이 여러 미션에 따라 경연하는 프로로 화제가 됐었어요. 방송사는 여성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싸워 이기는 구조를 연출하려 했지만, 오히려 다른 팀끼리도 협동하는 모습, 스스로 발전에 집중하는 모습이 방영되어 많은 여성의 응원을 얻었죠. 


프로그램 종영 직후, 출연 아이돌은 정장을 입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당당한 자세가 돋보이는 화보를 찍었어요. 주체적 메시지를 담은 컨셉으로 컴백하기도 했고요. 성적 대상화가 판치던 여성 아이돌 판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죠. 많은 아이돌 팬이 이런 변화에 환호했어요. 


 지니  변화가 계속 이어지는가 싶었는데요.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 신인으로 주목받은 르세라핌의 데뷔 티저 이미지가 K-pop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일이 있었어요. 과한 ‘섹시 컨셉’ 때문이었는데요. 짧은 운동복에 하이힐을 신고, 바닥에 엎드려 몸을 흔드는 안무가 들어가 있었거든요. 팬들은 하이브가 시대를 역행한다며 굉장히 실망했잖아요 “걸 크러시라는 가면을 쓰고 노출과 몸짓으로 성애의 대상이 되는 르세라핌”이라는 평까지 나왔고요. 


 파란  지니가 그 이야기를 하니 다른 논란도 갑자기 떠올라요. SM엔터테인먼트의 ‘GOT the beat’는 다른 의미에서 실망스러웠어요. 보아와 소녀시대 태연부터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aespa까지 모두 뭉친다길래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정작 노래 가사는 ‘내 남자를 넘볼 생각 하지 마라, 너와는 다른 레벨이다’ 이런 내용이었죠. 있지도 않은 사랑싸움 속 ‘여적여’ 구도를 만든 거예요.


 지니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8년 전쯤, 방탄소년단의 ‘Miss Right’ 노래 가사 중 여성혐오적 내용이 담긴 것이 있다며 팬들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어요.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모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사과문을 작성했죠. 앞으로 창작활동을 할 때 계속 고민하겠다는 말과 함께요. 직후의 콘서트에서는 문제의 가사를 모두 수정했어요. 르세라핌의 안무 역시 문제가 되자 바로 바뀌었고요.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함께 배우고, 잘못된 건 고쳐나가자는 거죠. 팬덤과 페미니즘도 그렇게 공존할 수 있을 거고요.


 파란  맞아요. 또 저는 K-pop 팬들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싶어요. ‘생일 카페’도 아이돌이나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걸 넘어서서, 팬끼리 모여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을 적극적으로 축하하고 즐기는 문화를 만든 거잖아요.


 지니  페미니즘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는 거대한 장이잖아요? 파란과 이야기하다 보니 페미니즘이 어떤 식으로 팬덤에 자리 잡으면 좋을지 더 고민해보고 싶어요. 


 파란  아이돌 팬덤은 수많은 문화가 겹치고 충돌하는 곳이에요. 그 안에 페미니즘의 자리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페미니즘과 팬덤 문화 사이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전쟁이 기억하는 여성은

-오늘의 콘텐츠 |  조선시대 전쟁소설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기억과 침묵
K-pop 팬덤은 수많은 편견을 마주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가 눈에 띄는데요. ‘페미니스트라면, 아이돌 팬은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아이돌 팬은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파도를 만들고 있다고. 오늘날 K-pop 팬덤은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실천하며, 편견을 깨부숩니다. 오늘의 책, ‘페미돌로지’와 함께 K-pop 팬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파도 위에 몸을 맡겨보지 않으실래요?
페미돌로지

이제 아이돌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 되어 있다. 우리의 감정, 섹슈얼리티, 그리고 욕망은 이미 아이돌을 매개로 생산되고 조정된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차별과 자본에 맞서 ‘아이돌과 함께 변화를 꿈꾸는 팬’은 가능할까? ‘페미돌로지(Femi-dology)’는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아이돌로지(Idology)라는 뜻이다. 이 책을 쓴 13명의 페미니스트에게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자. ©빨간소금

영감의 실마리


하나, ‘어린 여자애들의 수준 낮은 취향’이라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늘 따라 붙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빠순이'.  여기에는 아이돌의 음악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인식과 나이 어린 여성의 취향을 공공연히 멸시하는 태도가 담겨있습니다. 아이돌은 ‘어린 여자애들의 수준 낮은 취향’ 정도라는 거지요.  


하지만 팬덤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책에서는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의 사례를 드는데요. 아미는 ‘아미 인구조사(BTS ARMY CENSUS)'로 팬들의 연령, 국가, 성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팬덤 내에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젠더를 가진 팬들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어요. 이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문학, 심리학 등 학술적으로 접근해 진지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팬덤은 이제 팬덤을 향한 오래된 비난에 맞서기 시작했어요.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여자애들'만의 취향도, 당신이 멸시할만한 ‘수준 낮은 취향'도 아니라고요.


둘, 돌판을 뒤집는 페미니스트 연대


페미니스트 팬들은 ‘돌판'이라고 불리는 아이돌 산업을 뒤흔들었습니다. 보이그룹의 여성혐오적 가사와 발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걸그룹의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팬덤 간 연대가 돋보이는데요. 책은 아이돌 팬덤이 불법 촬영 사건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언급합니다. 2019년 한 시상식에서 한 걸그룹 멤버의 불법 촬영 피해가 확인되자, 트위터를 사용하는 아이돌 팬들이 관련 사진을 올리는 계정을 신고하거나 관련 검색어를 밀어내는 ‘정화'를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거예요. 내가 덕질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여성을 위해 힘을 모은 것. 페미니즘은 이렇게 이미 K-pop 팬덤 안에 페미니즘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돌판에서 여성혐오를 마주했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죠. 돌판을 뒤집으면 될 일이니까요!


셋, 100개의 페미니즘이 교차하는 공론장


K-pop 팬덤 안팎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즘 논의가 치열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팬덤 문화에 대한 비판도 있어요. 이 책 역시 팬덤 내의 페미니즘이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해요. 


하지만 결국 이 같은 비판은 팬덤을 분열시키기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100명의 페미니스트 팬이 모여있는 곳에는 100개의 다른 페미니즘이 있지요. K-pop 팬덤은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페미니즘이 교차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에디터의 생각 조각

이 시점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아이들(I-dle)’의 신곡 ‘톰보이' 의 컨셉은 꽤나 유의미해보입니다.

©(G)I-DLE (여자)아이들 (Official YouTube Channel)

Do you want a blond barbie doll?

It’s not here, I’m not a doll

 

아이들은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길 거부합니다: ”나는 바비인형이 아니라, 톰보이야.” 그룹명에서도 ‘(여자)아이들:(G)I-dle’의 ‘여자(G)’를 떼어버렸죠. 아이들의 ‘톰보이'는 각종 음원차트와 음악방송에서 연이어 1위를 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는데요. 걸그룹 경연 프로그램 ‘퀸덤'에서 수트를 입고 무대를 선보인 여러 그룹이 함께 떠오릅니다. 걸그룹은 자신을 대상화하고 전형적 ‘여성성'을 재현해야만 성공한다고요? 이제 이들은 이 공식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위드, 이건 페미니스트 팬들이 소환한 ‘새로운 시대의 아이돌’의 모습이 아닐까요?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아이돌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위드,
듣기만 해도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아이돌 노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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