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실마리
하나, ‘어린 여자애들의 수준 낮은 취향’이라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늘 따라 붙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빠순이'. 여기에는 아이돌의 음악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인식과 나이 어린 여성의 취향을 공공연히 멸시하는 태도가 담겨있습니다. 아이돌은 ‘어린 여자애들의 수준 낮은 취향’ 정도라는 거지요.
하지만 팬덤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책에서는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의 사례를 드는데요. 아미는 ‘아미 인구조사(BTS ARMY CENSUS)'로 팬들의 연령, 국가, 성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팬덤 내에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젠더를 가진 팬들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어요. 이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문학, 심리학 등 학술적으로 접근해 진지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팬덤은 이제 팬덤을 향한 오래된 비난에 맞서기 시작했어요.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여자애들'만의 취향도, 당신이 멸시할만한 ‘수준 낮은 취향'도 아니라고요.
둘, 돌판을 뒤집는 페미니스트 연대
페미니스트 팬들은 ‘돌판'이라고 불리는 아이돌 산업을 뒤흔들었습니다. 보이그룹의 여성혐오적 가사와 발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걸그룹의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팬덤 간 연대가 돋보이는데요. 책은 아이돌 팬덤이 불법 촬영 사건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언급합니다. 2019년 한 시상식에서 한 걸그룹 멤버의 불법 촬영 피해가 확인되자, 트위터를 사용하는 아이돌 팬들이 관련 사진을 올리는 계정을 신고하거나 관련 검색어를 밀어내는 ‘정화'를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거예요. 내가 덕질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여성을 위해 힘을 모은 것. 페미니즘은 이렇게 이미 K-pop 팬덤 안에 페미니즘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돌판에서 여성혐오를 마주했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죠. 돌판을 뒤집으면 될 일이니까요!
셋, 100개의 페미니즘이 교차하는 공론장
K-pop 팬덤 안팎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즘 논의가 치열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팬덤 문화에 대한 비판도 있어요. 이 책 역시 팬덤 내의 페미니즘이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해요.
하지만 결국 이 같은 비판은 팬덤을 분열시키기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100명의 페미니스트 팬이 모여있는 곳에는 100개의 다른 페미니즘이 있지요. K-pop 팬덤은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페미니즘이 교차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