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으로 나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맞게 온 건가?” 

▶ 맞습니다.

“다리 위야 아래야………..”

▶ 위로 건너오세요.

“지나친 것 같은데…….몇 층이지?”

▶ 녹취록은 4층이지만, 1층에 ‘소설옥’ 고깃집이 있습니다.

녹사평역에 내려 지도 앱을 보며 굽이굽이 어찌 저찌 마주하는 입간판을 뒤로하고 4층으로 올라오면 천장에서 녹색 잎들이 가득 맞이하는 녹취록에 도착할 수 있다. 문을 열면 초록 빛깔에 취하는 세계로 입성하게 되니 일단 회사 일은 문 밖에 두고 오는 것으로.

녹사평역 입구가 보이는 창가 자리는 바로 녹색 나무가 가득한 용산공원 뷰. 메뉴판까지 녹색인 이곳은 녹綠의 기운이 가득하다. 4층이 손님과 사장님 모두에게 방문하기 좋은 자리는 아닐 수 있지만, 이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자마자 홀린 듯 계약해버리셨다고. 

'녹'사평에서 '취'기가 올라 즐거웠던 기억을 기'록'하다 라는 뜻을 가진 이곳 녹취록에서는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새로운 기억들이 생겨난다. 소개팅부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이미 1차에서 즐기고 온 사람들, 지나가다 들른 외국인들까지. 그리고 가게 안에는 작은 전통주 양조장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뿐만 아니라 효모와 술 님들의 기억까지도 피어나는 곳이다. 아쉽게도 정식 투어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진행하실 수도 있다고 하니 녹취록 인스타그램(🔗)을 잘 살펴보도록 하자.

자리는 20좌석 남짓의 테이블과 함께 5개의 소박한 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혼술부터 단체 대관까지 모두 가능하니 필요에 맞게 이용하시기를!

녹취록은 양조장이자 주점으로, 가게 안의 작은 양조장을 통해 녹취록만의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녹취록 양조장 막걸리를 포함하여 전통주점답게 막걸리, 약주, 청주 모두 준비되어 있으며, 모두 부드럽게 마실 수 있으면서 맛의 유지력이 좋은 제품들로 사장님이 직접 엄선했다.

재밌는 점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맥주 종류와 미드*, 사이더** 류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술은 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녹취록 양조장 막걸리 맛과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다. 음식 류로는 전통주에 잘 어울리는 한식 베이스의 안주 겸 식사하기 좋은 음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유명 셰프님께 비법을 직접 전달받았다고 한다.

*미드 :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 허니문의 유래에 기인했다고도 한다.

**사이더 : 사과 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 대표적으로 써머스비, 댄싱사이더 등이 있다.

마실 술과 음식을 골랐다면, 이번에는 잔을 고를 차례. 녹취록 가게 안을 닮은 잎사귀 디자인의 잔부터, 딱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잔까지, 각양각색의 잔을 고르며 마시기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그 날의 기분이나 마실 술에 가장 어울릴 법한 잔으로 본인 취향껏 골라 보시라!

“없는데요, 있어요. 샤인 머스캣이요.“

샤인 머스캣을 넣은 적이 없지만 샤인 머스캣 맛이 나는 오양주 막걸리 자아도취. 오직 물과, 쌀, 누룩만으로 만들어낸 맛이다. 이 정도면 양조사님 손에 샤인 머스캣을 발라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5번을 우려내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그만큼 눅진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술의 라벨이 인상적이다. 녹’취’록의 취를 딴 자아도’취’인 만큼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푸름과 풀이 넘치는 녹취록 가게 안과, 가게 안에서 보이는 용산공원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녹음 안에서 놀며 취한 듯한 사람은 바로 당신일지도.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시게 되는 술이라서 해와 달을 동시에 그려넣었는데, 그만큼 누구나 쉬이 마시기 좋은 술이니 살짝 ‘취’하고 싶다면 자아도취를 드셔보시기를. 추천하는 음식 조합은 소고기 수육.

시트러스 / 맥주st / 산뜻함

“벨지안 윗비어Belgian wheat beer를 닮은 막걸리”

분명 처음 보는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묘하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상하네, 뭐지. 생각이 들면 술을 꽤나 마셔본 사람일 것이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시트러스와 오렌지의 향기. 호가든, 블루문과 같이 오렌지필과 코리엔더 씨드의 맛이 산뜻하게 다가온다. 레몬제스트와 패션프루트를 더해 상큼함을 더한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마치고 나만의 공간에서 향긋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할 때의 상쾌함. Citra de Orange는 ‘막걸리가 이런 상쾌함을 줄 수 없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실제로 양조사 분께서 집에서 호가든, 블루문과 같은 벨지안 윗비어를 마시다 영감을 얻으셨다고 한다. 진한 막걸리도 좋지만 왜인지 소중하고 기분 좋은 하루의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면, 혹은 그러한 기분으로 오늘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Citra de Orange를 추천한다. 더운 여름에는 온더락 잔에 얼음을 가득 넣고 콸콸 따라 부어 벌컥벌컥 마셔보는 것도 좋은 방법. 추천하는 페어링 음식은 유자토마토.

“하이볼의 미덕은 만들어진 맛이 아니라 먹고 싶은 맛을 만드는 거니까.

진토닉을 닮은 막걸리”

세상에 맛있는 칵테일은 많지만, 맛있는 전통주 칵테일을 맛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막걸리 맛을 살리려고 하면 막걸리 맛이 너무 튀고, 막걸리 맛을 죽이려고 하니 막걸리를 쓰는 이유가 없어지고. 그렇게 “전통주로 칵테일을 만드는 건 굉장히 까다롭다”는 바텐더의 말을 듣고 만든 ‘칵테일을 위한 막걸리’가 진진바라이다.

수많은 칵테일 중에서 세상에 나온 맛은 바로 ‘진토닉’같은 막걸리. (양조사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다.) 진의 재료인 주니퍼베리는 물론 레몬제스트로 상큼함을 더하고 로즈마리, 당귀, 생강, 페퍼론치노 등을 통해 허브 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가니시가 없이도 진토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원주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 진토닉의 느낌을 느끼고 싶다면 꼭 토닉워터나 탄산수와 함께 섞어마셔 보시라. 진진바라를 주문을 하면 토닉과 탄산수 중 하나를 제공한다. 추천하는 비율은 5(진진바라) : 4(토닉워터) 

🍶 베리머치

🍶 도수 : 8%

🍶 가격 : 19,000원(750ml)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로 상큼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작 사람들은 색이 너무 예쁘다며 반해버린 베리머치. 영화 바비를 떠올리게 하는 뽀얀 베이비핑크 빛이 일.단.주.문을 부르게 한다. 하지만 반전이라면 맛은 보이는 것보다는 달지 않다는 것. 체리주빌레의 달콤함을 생각했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 그 대신 술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핑크페퍼의 알싸한 향이 마치 바비인형에 홀렸다가 켄의 연기력에 빠지고 온 듯한 즐거움을 준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핑크빛을 만드는 건 라즈베리와 블루베리가 아니라 흑미라는 것이다. 색 담당 흑미, 맛 담당 베리 친구들, 향 담당 펜넬이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며 취향을 저격한다. 앞의 3개의 막걸리와는 다르게 샴페인처럼 탄산이 아주 강하니, 막걸리 샤워를 하고 싶지 않다면 뚜껑을 살살 돌려 진핑크에서 연핑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충분히 지켜보도록. 추천하는 페어링 음식은 하트명란감자전

처음 방문한 날은 회사 일이 꽤나 바쁜 때였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머리가 복잡할 때였다. 처음 방문한 날은 회사 일이 바빠 쉬는 듯 도망쳐온 곳이었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은 딱 반발 앞선 인사이트가 필요해 찾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말을 걸면 답을 해주고, 말을 걸지 않으면 가만히 나를 놔두신다. 녹취록은 그런 곳이다. 이런저런 멋진 말들을 위에 잔뜩 써놨지만,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가를 적어두었지만 결국 발걸음을 하게 되는 곳은 마음이 편한 곳. 멋진 공간과 맛있는 술, 맛있는 음식, 그걸 뒷받침해주는 수많은 고민과 기록들. 그걸 담아낸 결과물이 바로 녹취록. 그걸 알기라도 하듯, 녹취록은 정말 예쁜 노을 뷰로 나를 감싸줬다. 나처럼 당신도 일상에 엣지 한 모금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매력을 조금은 알았으니  망설이지 말고 방문해 보시기를. 

FYI. 녹취’록’이라는 이름에 맞게 즐거운 기억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필름카메라 사진 촬영과 함께 잊을만 하면 필름 현상 스캔본을 보내주시니, 너무 붐비지 않을 때 사장님께 살짝 말씀드려보자

녹취록

ᑯ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31 4층
ᑯ 영업시간
   수,목   18:30 - 23:30 (L.O 22:30)

   금~일 17:30 - 23:30 (L.O.22:30)

   (매주 월,화 정기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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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

: <녹취록>에서 걸어서 4분

고즈넉한 분위기의 2층짜리 Bar. 시그니처 칵테일도 좋지만, 그날 기분과 빠지고 싶은 분위기를 설명드리면 이른바 ‘알잘딱깔센’ 맛의 칵테일이 제공된다. 오픈 키친에서 갓 구워낸 피자에 시원상큼한 술을 쭉 들이켜보자.

ⓒ 콜리

크리스피포크타운

: <녹취록>에서 걸어서 2분

미슐랭 3스타 출신 셰프가 만든 타코. 타코 팬들이 애정하는 숨은 맛집이라고 한다. 삼겹살을 얇게 튀겨내어 고소하고 바삭한 크리스피 포크 타코가 준비되어 있다. 타코가 물릴 때쯤, 데킬라와 맥주를 섞은 ‘데맥’으로 마무리.

ⓒ 크리스피포크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