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산다는 건, 아주 화려하고 커다란 집에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인생이다. 살면서 아주 부자로 한 번쯤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됐고, 그냥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약간 살아보는 날들이면 충분하지 싶다. 평생 살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여름이면 습도도 높고 벌레도 많이 나오니 어쩌니 하는 불편은 그다지 신경 쓸 일도 아니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매일 새벽 6시에 사무실로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다와는 대략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베란다 문을 약 5센티미터만 열어 놓아도 집 안이 온통 파도 소리로 가득 찬다. 파도 소리가 이렇게 멀리까지 오는 줄은 몰랐다. 작업을 할 때는 주로 왈츠를 틀어놓는데, 이게 또 묘해서 파도와 왈츠가 어울려 배에 탄 듯한 느낌을 들게 해 준다. 나는 지금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사실 다른 곳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없다. 이만큼 살아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리도 나는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이 사실을 더욱더 잘 알게 됐다. 세상 구석구석마다 고단과 피곤, 슬픔과 비탄, 무료와 권태가 숨어 있다는 것을. 런던과 오슬로, 오사카, 류블랴나, 루앙프라방, 케이프타운,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루, 몰디브, 괌, 시애틀……. 세상 곳곳에는 그것들이 도사리고 우리를 덮칠 틈을 노리고 있다. 그것들에게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 당하고 안고, 견디는 수밖에는.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것과 거기에 사는 것의 차이는 다만 바다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다. 지하철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다. 덥거나 춥거나, 인터넷이 빠르거나 느리거나. 그 차이일 뿐이다.
내가 여기에 온 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며칠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삶에 대한 기대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여행은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결하지 못하는 건 그대로 두면 된다. 애써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는 채로 남겨두면 된다. 그냥 모래로 슬쩍 덮어두고 해변을 따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그건 행운이다. 운이 좋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거다.
나는 지금 연곡에 있고 약간 긴 여행을 떠나왔다. 여행이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행을 왔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 여기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일거리를 잔뜩 짊어 지고 왔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고 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들리니까 괜찮다. 사랑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을까. 사랑은 언제나 고통과 슬픔을 주지만 우리는 또 다시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늘 실패하지만 또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다. 외롭고 고단하고 슬프지만 나는 지금 해변을 걷고 있다. 수평선 너머에서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고 있다. 본질은 같지만 기분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