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49회 (2022.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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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와 소설을 쓰는 임솔아라고 합니다. 오늘은 강아지와 함께 걸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강아지 때문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강아지는 네 발로 단단히 땅을 짚고 골목 구석에 코를 박고 있었어요. 중요한 것을 발견한 듯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쑥이 자라 있더라고요. 저희 집 강아지는 아직 봄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 여름에 태어났거든요. 많이 힘든 시기이지만, 하루하루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저에게 봄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시시때때 봄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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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소설가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유리체 (장수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커다란 코트를 입은 사람이 걷는다
날개처럼 보여
도로인데
그가 위험하지 않길 바라
머지않은 곳인데 계속 멀어질 예정이고
잠 속에서 부딪쳐도 모르겠지
다음 장소는 하늘일까
깃털처럼
본 적 없어도
한 번쯤 날았다고 믿는 호의로 해둔다
함부로 뒹굴어도 아프지 않게
나도 걷는다
없어지기 위해
다른 누구의 시야로부터
여기엔 남아서 기쁜 것이 몇 개 없어
수은등 빛이 모여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꽃다발 같아 보인다
안을 수 있는 것으로 환원하고
눈과 물처럼 맑아야 하는 관계를 믿어
실제로는 무엇이든 흐리게 만들 뿐이지만
우리의 낯섦은 죄가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 것보다 상냥하다
기도가 앉아서 기도를 듣고 사람이 멀리서 가까이 보는 서울에서 불빛으로 밑줄을 그은 하늘에서
모두가 처음처럼 운다
당혹스럽다는 듯이
그래야 한다는 듯이
한 번쯤 다시 태어난 걸
믿게 하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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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수양 시인의 시가 떠올랐어요.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 것보다 상냥하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보지 않는다는 말에 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듯,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보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깃털’이 아니어서 “함부로 뒹굴”면 많이 아프겠지만, “남아서 기쁜 것”들은 없어져가고, “실제로는 무엇이든 흐리게 만들 뿐이지만”, “그가 위험하지 않길 바”라면서 “눈과 물처럼 맑아야 하는 관계를 믿”는다는 시를 읽고 있자면, 타인에 대한 상냥함이 세계를 “안을 수 있는 것으로 환원하”려는 시인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불빛으로 밑줄을 그은” 것 같은 밤 풍경을 떠올리다가, 김복희 시인의 시가 떠올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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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작가 대상 수상✨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
봄에는 사랑도, 벚꽃도 말고.... 젊작이죠! 여러분이 많이 기다리셨을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오늘 출간되었습니다.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은 오늘의 시믈리에 임솔아 작가님이 수상하셨어요👏 대상작 「초파리 돌보기」를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렸습니다. 온전한 일상을 꿈꾸는 일곱 편의 싱그러운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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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소설가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불 (김복희, 『희망은 사랑을 한다』)
불을 오래 견뎠더니 불을 냈다는 소문이 났다
죽은 사람은 손쉬운 재료다
칼을 녹이지 않는 정도의 불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
딱 그만큼의 불을 지키는 데 드는 연료가 있다
특별히 좋은 연료가 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는 사람은 불이 잘 붙는다
불은 지르는 것보다
지키기가 더 고단하다
태양을 오래 본 후에 눈물이 흐르도록 본 후에
번쩍이는 것들을 계속 가두어두면
곧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지만
어둠
나를 볼 수 있다
밝은 가운데 어두운 것을 보게 하는 연한 나를 따라간다
반딧불의 먹이는 작은 달팽이들이다
달팽이는 녹일 수 있다면 뭐든 먹는다
축축하고 서늘한 숲을 다 먹고
먹어서 흐리고
나지막하게
자신이 타오르고 있다고
설득시킬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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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창밖에는 몇 개의 불빛이 켜져 있을까요. 매일 밤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불을 지르고, 누군가는 불을 지키고, 누군가는 저처럼 창밖의 불빛을 바라볼 것입니다. 불은 위험하고, 불은 중요하다 여겨지고, 무엇보다 불은 잘 보이니까요. 불빛 속에 있는 나를 볼 수 없도록 커튼을 닫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 때, 그 “어둠” 속에서 “나를 볼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저도 시를 따라 방의 불을 꺼보았습니다. 낮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는데, 지금은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번져버린 물감처럼 창밖이 흐려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창문들을 보려 하고 있습니다. 불 꺼진 창문 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동자가 있을까요. 꿈을 꾸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까요. 반딧불처럼 쉼없이 깜빡이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눈동자와 지금 눈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축축하고 서늘한 숲”을 먹고 자란 것, “먹어서 흐”려버린 것, 잘 보이지 않는 나뭇잎의 뒷면에 붙어 있는 달팽이 같은 것들이 반딧불을 살게 한다는 시인의 말을 곱씹습니다. 비 온 다음 날에는 달팽이들이 아스팔트까지 나오기도 하죠. 내일은 발밑을 살피며 걷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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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김주현 삼성전자 엔지니어입니다.
삼성전자에서 핸드폰 외관을 설계하는 김주현 엔지니어가 고른 시 두 편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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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만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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