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금융사에서 근무하는 오호츠크 통신원, 왜노자A 씨가 이번에 북부 이탈리아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페라구스토(Ferragusto)는 '8월의 축제' 혹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축제'라는 뜻입니다. 영어 August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에세이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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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노자 ダイアリー (4)
나의 Ferragusto
올해 여름휴가는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유럽에서 딱히 이탈리아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 코비드19 시대 이래로 엔화 가치가 계속 내려가며 나의 휴가지도 점점 남하하고 있다.
언제 가는 게 좋을까? 일본에서 최근 이탈리아로 귀국한 이탈리아인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그는 8월 중순까지는 이탈리아인들이 휴가를 떠나는 페라구스토 시즌이니 그 시기를 피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도 업무사이클상 휴가 기간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에 8월 중후반을 출발일로 정했다.
실제로 밀라노에 도착해보니 8월말이나 9월초까지 쉬는 곳들이 많았다. 31 agosto, 5 settembre가 가장 먼저 눈에 익은 이탈리어가 됐다. (이탈리아어에서는 요일이나 월을 쓸 때 대문자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번 휴가의 여정은 밀라노, 베로나, 베네치아. 이탈리아 북부를 가로지르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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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시내에 도착하자마다 내게 익숙한 유럽계 금융사들의 간판을 찾아가며 낯섬을 좀 덜어냈다. 그리고 전 직장동료인 이탈리아인 친구 및 그의 지인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난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이곳에서 회사원으로 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는 버릇이 있다. 그건 대학교 학부 시절 떠났던 일본 여행이 나를 지금의 왜노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 특별히 매료되었다거나 해외에서 큰 성공을 노리겠다는 환상이나 야망이 있는 건 아니다. “가보니 살만해 보이드나” 수준의 마인드 게임이다.
내가 가진 스킬셋이 이 나라 이 도시의 어떤 회사와 포지션에 적합하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포지션에 접근할 수 있는가? 그 포지션의 기대보수는 얼마인가? 그 기대보수선에서 꾸릴 수 있는 이곳에서의 일상생활은 어떤 수준일까? 이런 수준에서 새로운 도시를 관찰한다.
(물론 10년 전 도일했던 때와는 내 상황이 달라졌다. 그 때의 나는 나이만 많이 먹은 신입 구직자라서 조건을 따질만한 입장에 있지 않았기에 나에게 일자리를 준 일본을 나의 새 거주지로 쉽게 받아들였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좀 재고 따지는게 많아졌다.)
밀라노는 현재 유럽에서 '울트라 리치'의 수가 유일하게 순증하는 도시라고 한다. 전통적인 부자 도시인 런던, 파리와 독일의 도시들에서는 초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으나 밀라노는 이런 때에 금융업 기반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외국인 expat들에게 유리한 세제혜택(flat tax)를 제공해 유인하고 있다고 한다.(블룸버그 유튜브)
그러나 한 주 간 밀라노에서의 삶을 관찰한 결과, 이탈리아 취업시장이 녹록치는 않아보였다. 슈퍼리치들은 연봉 따위에 신경쓰지 않겠지만 여기 있는 금융회사들의 전반적인 보수수준이 특별히 높지도 않아보였다. 또 도심의 부동산 임대료는 도쿄와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고 느껴졌다. 임대료뿐 아니라 유틸리티 비용도 더 높다고 한다.
적절한 일자리를 찾는데 성공한다면 높은 생활수준과 아름다운 문화생활을 누릴 가능성이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겠지만, 일반적인 삶의 질에서는 세계 탑 10위에 들곤하는 도쿄보다 밀라노가 약간 하위그룹에 위치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비엔나나 밴쿠버처럼 너무 심심해보이는 도시들보다는 밀라노가 거주지로서 훨씬 더 매력있어 보였다.
다만,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어를 모르고 살 수 있을까? 이탈리아인들은 관광객에게 친절하고 호감가는 인상이지만, 로망스어군의 유럽언어를 전혀 모르는 나에게는 이탈리아 숫자를 세는 것부터 곤란했다. 현지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천천히 말하거나 크게 제스처를 하면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한 일이며 꼭 "세계공용어" 인 영어를 써야하는게 아니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현지어를 못하거나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활동영역이 한정되는 게 당연하고, 밀라노도 예외는 아니라고 느꼈을 뿐이다. 동아시아인들이 expat으로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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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밀라노의 밥은 맛있다. 세련된 대도시 답게 멋진 맛집이 많았다. 위 사진은 두 번 사먹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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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는 밀라노보다 소박하고, 음식과 쇼핑을 즐기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러닝하고, 로컬마켓에서 장을 보고, 맛있는 식당에서 밥먹고, 밤엔 오페라를 보았다.
원래 베로나는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 쉬어가는 곳으로 끼워넣은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로 출발하기 직전에 베로나에서 여름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그 오페라 축제의 공연장인 베로나 아레나가 2000여년 전 로마시대에 지어진 극장이며, 그 극장에서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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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아레나 구경이라도 할 겸, 당일에 남은 티켓을 구매했다. 달빛 아래에 음향장비 없이 진행되는 쌩라이브 오페라는 엄청난 감동이자 아름다움이었다.
이번에는 꼭대기에 있는 '로마 서민석'에서 봤다. 극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다음엔 '로마 중산층석'으로 내려가서 좀 더 가까이서 음악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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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유명한 관광지이고 마침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사람 많던 베네치아에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사자 그림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보험사인 제네랄리(Generali)의 로고가 책 위에 발을 하나 얹고 있는 날개가 달린 사자인데 베네치아에서 같은 그림이 종종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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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랄리는 현재는 이탈리아이지만 당시엔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했던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1831년에 설립됐다. 그 이름은 무역보험, 화재보험, 생명보험 등 다양한 보험 전반을 다룬다는 뜻이다.
최초의 로고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쌍두 독수리를 가져와 썼지만 1848년 이탈리아에서 반 오스트리아 혁명이 일어나며 로고를 베니스의 상징인 '성 마르코의 사자'로 바꾸었다. 제네랄리의 베네치아 오피스는 현재도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 있다.
생각난 김에 제네랄리에 나에 맞는 오픈 포지션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어를 못하면 지원이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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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네치아에서는 캐주얼 다이닝을 포기해야했다. 구글평점이 4점 이상인 곳들로 찾아다녔는데, 유독 베니치아 식당들의 구글 평점이 과도하게 높다고 느꼈다. 원인은 간단했다. 이곳의 식당들은 평범한 음식을 내주고 식후에 공짜 리몬첼로를 주면서 그 자리에서 구글맵 평점을 입력해주길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맘씨가 넉넉한 서구권 여행자들은 특별한 불만이 없었다면 별 다섯 개를 준다. 그러나 엔화 약세에 고통받는데다가 작은 위장을 가져 매 한 끼가 소중한, 가여운 동아시아 관광객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관행이다.
캐주얼 식당들을 포기하면 남는 선택지는 버거킹 혹은 고급 레스토랑이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선택했다. 가장 괜찮았던 식당은 해산물 요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호박을 올린 참치 슬라이스 카르파치오와 오렌지 소스와 민트를 얹은 새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본에서도 흔한 재료인데 이렇게 다른 접근을 할 수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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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개 평가에 대한 관점 차이는 서구권과 일본에서 오해를 부르기 쉽다. 기본적으로 두 지역은 만족에 대한 정서나 역치가 다르다.
일본식 정서에 익숙한 나에게 있어서는 공짜 리몬첼로를 제공하는 곳들이 불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별 4개 이상을 받을만큼 특별함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비단 음식점 평가에서 있어서만이 아니다. 일본 내에 있는 외국계 금융사 지사에 재직하던 시절에도 이 5단계 스케일은 자주 문제가 됐다. 사내 만족도 조사나 인사평가 같은 경우에 서구에 있는 본사에서는 별 다섯 개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는 별 네 개나 다섯개라는 건 일상을 뛰어넘는 특이한 경우라는 걸 설명해줘야만 했다.
반대로 일본인 직원들에게는 특별히 위에 보고해야 하는 문제나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면 75점 정도는 주라고 안내를 해야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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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에스프레소 커피만 마신다. 그러다보니 스타벅스가 고전하는 나라다. 어느 카페에 가도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있기는 있다.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을 따로 주는 형태다.
나는 아아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스타벅스에 세 번 도전했는데 모두 다 끔찍했다.
내가 그들에게 원한 건 아메리카노였으나 핫이나 아이스나 모두 커피맛과 농도가 애매했고, 얼음양이 미묘하게 이상했다. 톨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샷이 몇 개 들어가냐, 샷을 추가해봐라, 얼음을 더 채워넣으라고 일해라절해라 요구해봤으나 별로 소용이 없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의 스타벅스에서는 기대하는 범위 안의 맛이 났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안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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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 중 하나라는 곳에서 마셨다.
사실 내가 아는 이탈리아 사람 중에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아아를 좋아한다. 아직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아직 아아 맛을 못 봐서 안 먹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지금까지 충분히 안 더워봐서 그럴 듯… 그들도 이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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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휴가를 마치며
북부 이탈리아는 세련된 취향과 역사가 어우러진 지역이었다. 사람들은 올리브색으로 잘 태닝된 피부를 갖고 있었고 복장과 행동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친절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더욱 호기심이 드는 나라였다.
이탈리아에서 긴 페라구스토가 끝나고 시작하는 9월은 마치 신년과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그 말대로 귀국을 위해 밀라노에 돌아오자 여러 럭셔리 브랜드의 이벤트와 스포츠 행사가 열렸고 밀라노 패션위크까지 이어졌다. 다음 방문엔 바쁘게 돌아가는 밀라노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밖의 메모>
캐쉬리스 결제 : 터치결제, 애플페이로 거의 다 커버 가능. 심지어 밀라노 중앙역 화장실도 카드결제가 된다. 현금을 쓴 건 베니스의 작은 빵집에서 크로와상 하나 살 때랑 두오모 근처 작은 가판대에서 악세서리를 샀을 때.
밀라노 대중교통: 신용카드로 탑승 가능하고 여러 번 탑승하면 자동으로 1일권, 2일권 등의 정액교통권 요금이 적용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치안: 밀라네즈 친구들의 말대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열차 정차 시 여객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왜 여기서 얼쩡대는지 의문스러운 사람들도 있었고, 구걸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열차 지연: 체재하는 동안 한 번의 캔슬과 자잘한 지연이 몇 회 있었다. 유럽치고는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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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Wonder - As
아아를 시켜먹은 스타벅스 밀라노 가리발디 점에서 흘러나오던 미국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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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츠크 퍼블리싱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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