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는 것인데,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폴라리스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어떻게 정치적인 메시지가 되었는지, 정말 정부의 주장대로 여성가족부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인지 짚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성차별을 두고 여성가족부를 없애는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 아닐까요. 이것이 진정한 공정과 평등인지, 여성혐오에 기생하는 나쁜 정치인지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대선을 앞둔 올 1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페이스북에 내걸었던 단문 공약입니다. 아무런 설명도, 구체적 이행 계획도 없이 단 7글자에 그쳐 ‘성별 갈라치기’라는 비판과 수많은 논란을 낳았던 공약인데요. 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해당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신호탄을 끊었습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격하한다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것입니다.

정부는 여가부 폐지에 따라 성평등 정책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폐지는 하지만 기능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존에 여가부가 담당하던 기능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 분산시키면 보다 큰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따라 여성, 청소년, 가족, 양성평등 등의 정책은 복지부 아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여성고용정책은 고용노동부 산하의 통합고용정책으로 옮겨지는데요. 개편안을 발표한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조직 축소가 절대 아니며 오히려 타 부처와의 협업 및 융합으로 효율성이 커질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야당과 여성 단체의 반발이 거세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반대 입장을 듣고 타협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야당이 우려를 전달한 지 하루만에 개편안을 확정 발표하고, 부처 폐지에 반대해왔던 단체들은 관련 간담회에 초대하지 않는 등 졸속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일보> 기사는 이번 개편안으로 인해 달라지는 점과, 각계 반응,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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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무지🌈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같은 주장을 했고, 2017년 바른정당 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유승민 전 의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지금처럼 여성가족부 폐지가 속도감 있게 추진되는 것의 이면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문화적 불만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아래 기사는 정치권이 청년 남성 유권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반페미니즘을 정치적 전략으로 택해 온 과정을 정리합니다.

기사는 MBC <PD수첩>에서 일반인 20대 남성을 상대로 한 길거리 인터뷰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인터뷰에서 한 남성은 여성가족부가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펼친다며 비판했지만, “그 말도 안 된다는 정책에 무엇이 있냐”는 피디의 물음에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여가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정책을 펼치는 지에 대한 이해 없이 여가부가 ‘나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젠더’는 지난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지만, 주로 청년 세대 내 분열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각시키는 구도로 다뤄졌습니다. 정치권은 문재인 정권이 구조적 차별들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실행했던 온건한 정책, 메시지들에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2014년부터 있어 온 ‘메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남혐’ 사례들에 피로감을 느낀 청년 남성들은 일찍이 남혐과 페미니즘을 동일시하고 있었고, 그 결과 진보적 의제와 가치들을 페미니즘의 그것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처로서 존재의 이유와 역량을 보여주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됐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편향적 동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정치 세력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사회의 다양한 갈등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편취하고 부풀린다는 이야기인데요. 국민의 힘 하태경 의원은 ‘젠더 갈등’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갈등으로 보고, 갈등의 원인으로 ‘여성가족부’를 지목한 바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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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헤일🐋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던 정책의 폐지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시사인>의 김영화기자는 다음의 기사를 통해 여성가족부의 현행업무가 ‘여성가족부’라는 단일한 정부중앙부처의 형태로만 가능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먼저,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던 소수자들을 타 부처가 온전히 지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정책대상은 학교 밖 청소년, 다문화 가정, 온라인폭력 피해자 등 다른 부처가 포괄하지 못했던 소수자와 약자들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같은 거대부처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을 중점으로 다루기에 여가부가 포괄하던 사회 취약망을 선제적으로 발견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법무부 역시 여성가족부보다 ‘피해자’기준을 엄격하고 협소하게 정의하기에,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가정폭력.젠더폭력 피해자들이 소외받게 됩니다.

‘여성가족부’라는 단일 부처로 함께 시행했을 때 더욱 시너지가 커지는 정책들도 많습니다. 저출생, 결혼이주여성,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대부분 성차별과 연관되기에 성평등 정책과 함께 진행될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의 가족 및 보육정책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했다 2년만에 다시 여성가족부로 이관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무엇보다, 국회부터 지역자치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의 성평등 추진 체계에 참여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정부 중앙부처로서의 여성가족부가 유일합니다. 결국 ‘여성가족’’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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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일리브🌠

독립된 부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현실 인식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성차별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죠.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성차별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개별적인 영역도 아닙니다.

<주간경향>의 정희완 기자는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니 대응이 겉돈다고 지적합니다. 성폭력을 엄중 처벌하지만 성차별적 인식을 바꾸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여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선 정책적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지금 여성가족부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전부 해체해 타 부서로 이관하면 제대로 된 업무 지휘가 어려워집니다.

대안은 하나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고 그를 해결하려 하는 것. 극심한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 남성 대상 강력범죄의 8배에 달하는 여성 대상 강력범죄 등, 이 모든 것들은 개별 영역의 차별이 아니라 구조적인 성차별입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고용노동부로, 이렇게 여러 부처로 업무를 찢어놓는다고 해서, 성차별의 문제도 인구, 범죄, 고용 등의 문제로 단순화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차별 자체고, 해결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성가족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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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선❄

독자님들은 ‘죠리퐁 루머’를 아시나요? ‘여성가족부가 죠리퐁이 여성의 성기 모양이라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인데요. 여가부가 어떤 기관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 저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더랍니다. 지금 생각하면 흑역사지만, 꽤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친구 몇에게 우스갯소리인 양 전하기도 했죠. 여가부의 실제 정책을 알기도 전부터 ‘여가부가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사업을 벌이는 집단’이라는 반감이 먼저 생긴 겁니다.

여가부를 둘러싼 악의적인 루머는 지금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곰돌이 푸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아 여가부가 상영금지를 요청했다', '소타나3 헤드라이트가 남성 성기를 생각나게 해 생산 중지를 요청했다', '테트리스가 성행위를 연상시켜 금지했다', '군가산점제를 폐지하고 K2소총과 방탄복 구매 예산을 삭감하려 했다.’ 지어낸 사람의 창의성을 높이 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참 가지각색의 루머가 존재합니다. 모두 사실이 아니죠. 이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루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가짜뉴스’의 파급력은 대단합니다. 결국엔 예산과 정책에 대한 오해로 이어져 ‘여가부가 필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하죠.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한 부처이며 성인지 관련 예산이 35조에 달한다’는 오해가 대표적입니다. 몇몇 언론사들이 반복되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팩트체크에 나서보기도 했지만, 루머가 가진 힘이 워낙 컸던 만큼 아직 사실을 바로잡기엔 역부족인 듯합니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여가부는 남성의 권리를 위협할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권에 따라 존폐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예산 규모는 축소되고 정책 또한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실현되어왔죠. 2022년 편성된 여가부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합니다. 액수로는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적고, 이 중 성별 불평등 문제에 직결되는 ‘여성 성평등’ 예산 비중은 고작 7.2%입니다. 남성 수혜자가 더 많은 사업도 있고요. 그러나 여가부에 대한 오해에 가려 이러한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여가부를 둘러싼 오해가 퍼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부정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더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말하지만,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수십년간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구조가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과거에 비해 한국의 여성 인권 수준이 높아졌고, 전통적인 형태의 성차별은 찾아보기 어려워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노골적인 차별은 아니더라도 은밀하고 미묘한 형태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 치우지 않으면 쌓인다”는 의미에서 ‘먼지 차별’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여가부에 대한 끊임 없는 오해와 논란은 이러한 ‘먼지 차별’을 없는 것으로 지우거나, 혹은 이를 합리화해 ‘역차별’ 딱지를 붙입니다.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주로 언급되는 근거는 “여가부가 소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가부가 정말 소명을 다했는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간 여가부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는지’, ‘여가부의 존재감이 부족했던 건 여가부 자체의 한계가 맞는지’, ‘왜 유독 여가부에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폐지를 말하는 건 이걸 다 묻고 나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여가부 폐지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여가부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성평등한 세상에서 여가부의 소명이 다할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