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을 거 같아서
가만히 넘어가요”
☕️ 친구와 누나, 페미니즘 대화가 달라지는 이유
한 페미니즘에 대해 거리감을 느꼈거나 혹은 어려웠던 순간 중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이현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금 어렵기는 해요.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깔린 시선이 있고, 저는 특히 거의 남자밖에 없는 공대를 다녀서요. 그냥 남초 커뮤니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거기서는 페미니즘 얘기가 나오는 건 보통 조롱할 때밖에 없어요.
한 그럴 때는 어떠셨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제 주변에 있는 또래 남성 친구들도 되게 조롱하는 분위기거든요. 그때 개입을 할까 싶다가 또 진지한 것도 아닌데 개입해 봤자, 하며 양가적인 마음이 있어요.
이현 그렇죠. 저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얘기를 해봤자 바뀌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 가만히 넘어가는 편인 것 같아요.
한 그럼 친구들은 어떤 이야기로 페미니즘 얘기해요?
이현 페미니즘 얘기 자체를 많이 하지 않고요. 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극단적인 부분과 페미니즘을 똑같은 거라고 뭉뚱그려서 생각하죠.
한 페미니즘의 이미지와 컨셉 같은 걸로 비난하거나 놀리니까 더 반박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냥 놀이 문화니까. 저도 그게 참 고민되더라고요. 그럼 누나랑은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현 누나가 갑자기 주제를 들고 올 때도 있고요. 아니면 제가 궁금한 게 생겨서 누나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누나와는 친하고 서로 반박해도 뭔가 트러블이 생기는 것보다 친밀도가 더 높으니까 오히려 잘 들을 수 있더라고요.
한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페미니즘 전도사여도 친구들은 ‘네가 뭔데 날 가르쳐’ 이렇게 되고, 지식이나 논리로 압살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친구로서 ‘네가 이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언어라고 여겨요. 그런 안전한 공간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는 거 같아요. 혹시 페미니즘에 대해 나랑 수준이 비슷하거나 대화가 되는 사람이 없어서 아쉬운 적은 없었나요?
이현 아쉬울 정도는 아닌 데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제 룸메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정치, 사회 관련해 대화하고 페미니즘도 살짝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런 선배가 있으면 좀 더 공유가 되겠죠.
한 오늘 만남을 주변 친구나 애인, 누나와도 이야기해 볼 만한가요? 대화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현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고 정도만 말하지 않을까요. 애인이랑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잘 안 해요.
한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는지 모르나요?
이현 아마 관심이 없을 거예요. 제가 정치에 대해서도 계속 물어봤는데 아예 생각이 없더라고요.
한 이건 저의 편견인데요. 이공계 사람들을 만날 때 그런 경우를 많이 봐요. 과학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이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기본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으로 되어서요. 남자들이 많은 과학고나 남자들이 주로 있는 커뮤니티에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자체가 거의 없어요. 사람들이 그런 게 있잖아요. 자기랑 다르면 관심 밖으로 밀어버리든지 그냥 반대하잖아요. 그런 현상이지 않을까요.
한 그런 점에서 다양성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주변을 봤을 때 정치나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은 편인가요?
이현 그렇죠. 약간 장난스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죠. 딥하게 들어가는 순간 피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니까. 그냥 너 일찍이지? 이찍이지?, 빨간색 파란색 이런 정도. 제가 체감하기론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방향이 아니야’라고 먼저 말해야 반감이 덜하지 않을까요? 그게 고민이에요.
한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교육을 하거든요. 인식 개선하면 떠오르는 건 교육이잖아요. 성교육·성평등 교육하는데 1년에 그래봤자 1-2시간이고, 온라인으로 교육받는 걸로 바뀌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자주 이야기하는 게 그런 남자들이 고민하는 주제를 다뤄보는 것이에요. 페미니즘이라는 게 결국 성평등에 관한 목소리이고,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는 당연히 남성들에게도 힘들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남자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죠. 군대만 해도 그래요. 군대에도 암묵적인 등급이 있잖아요. 해병대 나왔다고 하면 ‘이 새끼 좀 남자네!’, 특전사 나왔으면 ‘더 대단한 남자네’. 이것 역시 성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영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현님이 생각하기에 내 또래나 스스로에게 어떤 성평등 이슈가 중요하게 다가올지 궁금해요.
이현 저는 군대가 되게 컸어요. 미국이나 해외로 유학하서 박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려면 일단 군대를 다녀와야 하니까요. 시간 차가 벌어지는 것도 그렇죠. 여성 편차는 딱히 체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다들 연구직으로 가든지 기업에 들어가니까 체감이 덜 되는 것 같아요.
한 체감하기에는 여성 할당제가 별로 없죠. 우리나라에서는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가 그나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제도로 운영되는데, 그게 제대로 작동되는 곳은 공공기관, 공무원 같은 곳이에요. 그런데 그곳은 여성들이 많은 세계라서 거기선 남성들이 더 많이 뽑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체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인 것에서 체감을 많이 했어요. 남성들의 외로움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본인이 갖는 고민은 없나요? 여성 친구나 애인이 있다면 그런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이현 그런 건 딱히 없었던 거 같아요. 공대라 여자 친구들 비율이 낮아요. 그 친구들도 거의 남자 친구들처럼 남성화가 되었기도 하고요. 여자 친구가 있는데 데이트 비용도 보통 반반으로 내요. 이건 성 고정관념이랑 좀 다른 느낌인데, 저는 돈을 좀 벌고 있거든요. 더치페이하되 제가 밥을 한 번 산다든지 그런 식으로 서로 맞춰가면서 해요.
한 그게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는 관계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누가 시킨 적은 없거든요. 저한테 ‘네가 내야지’라고 말했던 애인은 없었어요. 근데 저는 애인을 찾는 여정 중에 소개팅을 되게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암묵적으로 그냥 제가 내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게 왜 그럴까,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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