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이현의 대화

☕️ 어색한 사이

어쩌면 조금 다른 사람들의
색깔있는 대화



<어색한 사이>는 모어데즈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협업해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페미니즘이 낯선 사람을 추천받아 페미니즘 활동가가 직접 만나러 갔어요. 어색한 사이, 차를 마시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어색한 사이>는 어느 금요일 깜짝 레터로 찾아옵니다.


이번 레터에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 한 활동가와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돌아본 이현님(가명)과의 대화를 전합니다.


“누나와 페미니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



한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현   05년생이고 카이스트 다니고 있어요. 누나의 권유를 받아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 조금 떨리네요. 


한   떨리시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근데 누나가 권유했다고 해도 저라면 귀찮다고 안 할 것 같거든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예요?


이현   누나가 일찍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도 누나와 여성학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해요. 이번 기회에 누나가 아닌 사람과도 페미니즘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 프로젝트도 저랑 맞지 않을까 싶어 하게 되었습니다.

한   용기 있네요. 그럼 누나한테 페미니즘에 대해 들은 것이 처음인가요?


이현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긴 했지만, 이야기는 누나와 처음 했어요.

한   누나랑 이야기할 때는 어땠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잘 됐었나요? 아니면 ‘아무리 누나지만 이건 좀…’ 하는 건 없었나요?


이현   제가 이 분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지 못하다 보니까 보통은 누나가 말하는 것에 수긍하기는 했어요. 근데 그 안에서 뭔가 ‘어?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부분도 있어요.

한   그걸 이야기해 볼까요? 저는 이 만남이 그런 이야기들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비슷했거든요. 페미니즘을 처음 접한 게 여성 애인 덕분이었어요. 전 모르는 이야기니까 잘 들었어요. 그래도 동의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이 생기잖아요. 근데 질문할 자신은 없고 괜히 말했다가 싸우면 피곤하잖아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누적된 기억이 있어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바뀌지 않을 거 같아서

가만히 넘어가요”

☕️ 친구와 누나, 페미니즘 대화가 달라지는 이유



한   페미니즘에 대해 거리감을 느꼈거나 혹은 어려웠던 순간 중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이현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금 어렵기는 해요.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깔린 시선이 있고, 저는 특히 거의 남자밖에 없는 공대를 다녀서요. 그냥 남초 커뮤니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거기서는 페미니즘 얘기가 나오는 건 보통 조롱할 때밖에 없어요.


한   그럴 때는 어떠셨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제 주변에 있는 또래 남성 친구들도 되게 조롱하는 분위기거든요. 그때 개입을 할까 싶다가 또 진지한 것도 아닌데 개입해 봤자, 하며 양가적인 마음이 있어요.

이현   그렇죠. 저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얘기를 해봤자 바뀌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 가만히 넘어가는 편인 것 같아요. 


한   그럼 친구들은 어떤 이야기로 페미니즘 얘기해요?


이현   페미니즘 얘기 자체를 많이 하지 않고요. 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극단적인 부분과 페미니즘을 똑같은 거라고 뭉뚱그려서 생각하죠. 


한   페미니즘의 이미지와 컨셉 같은 걸로 비난하거나 놀리니까 더 반박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냥 놀이 문화니까. 저도 그게 참 고민되더라고요. 그럼 누나랑은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현   누나가 갑자기 주제를 들고 올 때도 있고요. 아니면 제가 궁금한 게 생겨서 누나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누나와는 친하고 서로 반박해도 뭔가 트러블이 생기는 것보다 친밀도가 더 높으니까 오히려 잘 들을 수 있더라고요.

한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페미니즘 전도사여도 친구들은 ‘네가 뭔데 날 가르쳐’ 이렇게 되고, 지식이나 논리로 압살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친구로서 ‘네가 이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언어라고 여겨요. 그런 안전한 공간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는 거 같아요. 혹시 페미니즘에 대해 나랑 수준이 비슷하거나 대화가 되는 사람이 없어서 아쉬운 적은 없었나요?

이현    아쉬울 정도는 아닌 데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제 룸메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정치, 사회 관련해 대화하고 페미니즘도 살짝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런 선배가 있으면 좀 더 공유가 되겠죠.

한   오늘 만남을 주변 친구나 애인, 누나와도 이야기해 볼 만한가요? 대화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현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고 정도만 말하지 않을까요. 애인이랑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잘 안 해요.


한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는지 모르나요?


이현   아마 관심이 없을 거예요. 제가 정치에 대해서도 계속 물어봤는데 아예 생각이 없더라고요.

한   이건 저의 편견인데요. 이공계 사람들을 만날 때 그런 경우를 많이 봐요. 과학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이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기본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으로 되어서요. 남자들이 많은 과학고나 남자들이 주로 있는 커뮤니티에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자체가 거의 없어요. 사람들이 그런 게 있잖아요. 자기랑 다르면 관심 밖으로 밀어버리든지 그냥 반대하잖아요. 그런 현상이지 않을까요.

한   그런 점에서 다양성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주변을 봤을 때 정치나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은 편인가요?

이현   그렇죠. 약간 장난스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죠. 딥하게 들어가는 순간 피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니까. 그냥 너 일찍이지? 이찍이지?, 빨간색 파란색 이런 정도. 제가 체감하기론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방향이 아니야’라고 먼저 말해야 반감이 덜하지 않을까요? 그게 고민이에요.

한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교육을 하거든요. 인식 개선하면 떠오르는 건 교육이잖아요. 성교육·성평등 교육하는데 1년에 그래봤자 1-2시간이고, 온라인으로 교육받는 걸로 바뀌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자주 이야기하는 게 그런 남자들이 고민하는 주제를 다뤄보는 것이에요. 페미니즘이라는 게 결국 성평등에 관한 목소리이고,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는 당연히 남성들에게도 힘들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남자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죠. 군대만 해도 그래요. 군대에도 암묵적인 등급이 있잖아요. 해병대 나왔다고 하면 ‘이 새끼 좀 남자네!’, 특전사 나왔으면 ‘더 대단한 남자네’. 이것 역시 성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영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현님이 생각하기에 내 또래나 스스로에게 어떤 성평등 이슈가 중요하게 다가올지 궁금해요.

이현   저는 군대가 되게 컸어요. 미국이나 해외로 유학하서 박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려면 일단 군대를 다녀와야 하니까요. 시간 차가 벌어지는 것도 그렇죠. 여성 편차는 딱히 체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다들 연구직으로 가든지 기업에 들어가니까 체감이 덜 되는 것 같아요. 


한    체감하기에는 여성 할당제가 별로 없죠. 우리나라에서는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가 그나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제도로 운영되는데, 그게 제대로 작동되는 곳은 공공기관, 공무원 같은 곳이에요. 그런데 그곳은 여성들이 많은 세계라서 거기선 남성들이 더 많이 뽑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체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인 것에서 체감을 많이 했어요. 남성들의 외로움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본인이 갖는 고민은 없나요? 여성 친구나 애인이 있다면 그런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이현   그런 건 딱히 없었던 거 같아요. 공대라 여자 친구들 비율이 낮아요. 그 친구들도 거의 남자 친구들처럼 남성화가 되었기도 하고요. 여자 친구가 있는데 데이트 비용도 보통 반반으로 내요. 이건 성 고정관념이랑 좀 다른 느낌인데, 저는 돈을 좀 벌고 있거든요. 더치페이하되 제가 밥을 한 번 산다든지 그런 식으로 서로 맞춰가면서 해요.


한   그게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는 관계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누가 시킨 적은 없거든요. 저한테 ‘네가 내야지’라고 말했던 애인은 없었어요. 근데 저는 애인을 찾는 여정 중에 소개팅을 되게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암묵적으로 그냥 제가 내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게 왜 그럴까,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었어요. 



“페미니즘과 퀴어를

왜 같이 이야기하나요?”

☕️ 궁금하고 헷갈렸던 페미니즘 이야기



한   혹시 페미니즘에 대해 ‘이건 뭐야’ 싶었던 건 없으세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분야니까 아는 선에서 대답을 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이현    페미니즘과 LGBTQ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같이 가는 건지, 따로 갈 수는 없는지. 

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따로 가는 걸 주장하는 분도 언제나 있어요. 모든 운동이 그렇잖아요. 사실 모든 운동이 다 같은 목소리를 내면 그건 소름 돋고, 폭력적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모든 운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데 제가 지지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교차성 페미니즘 계열로 같이 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갈 수밖에 없냐면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인데요. 성차별주의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가부장제의 지배구조를 잘 살펴보면 성별 이분법이 있어요. 남성과 여성이 있고, 남성이 더 힘이 있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여성은 감성적이고 좀 더 센티멘탈하다고 이분화해서 인간을 평가하는 거죠. 생각해 보면 인간이 다 한쪽만 있지 않잖아요. 그 지점에서 성별 이분법을 해체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면 당연히 성별 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가 아닌 다양성을 선택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에서 젠더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퀴어의 목소리를 같이 듣는 것이죠.

이현   저는 과학도니까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과학적으로 퀴어는 뭔가 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종족 번식이 되려면 남과 여가 한 쌍이 있어야 번식이 될 거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본능처럼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남자라 여자가 한 쌍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어요.

한   사실 우리가 종족 번식만을 위해 사랑하지 않죠. 종족 번식 이야기하면 이미 탈락한 인간들이 너무 많은데 가부장제로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진짜 제일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일부일처제라. 많은 생명 중에 일부일처를 하는 생명보다 그렇지 않은 생명체가 압도적으로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이현   그렇죠. 근데 이것도 진화하고 사회를 만들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효율적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한   그렇죠. 인간 삶의 양태는 자연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한편 문화적인 것이 있어서 자연적으로 봤을 때 자연적이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결국 제가 하는 운동은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는지 제안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저는 페미니즘이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이라고 봐요.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통해서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나뉘는 것에 집중해서 손가락질하는 걸 좋아하는 경우도 많은 거 같아요. 근데 사실 그 방향보다는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와 대박 남자가 남자를 좋아해. 나는 안 해봤는데 부럽다’ 이렇게요. 그런 것들이 좀 더 인류 문명에 있어서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남성들이 정말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 인권이나 남성들의 행복을 별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저는 이건 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고민은 ‘이게 설득력이 있을까?’예요. 어느 순간에 나눠 가져야 할까,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고민은 좀 있어요. 이렇게 말했을 때 좋아하는 남성이 많을까. 페미니즘이 진짜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언어니까 말을 잘하고 싶어요. 



“남성 친구들과 길게

대화한 적이 딱히 없어요”

☕️ 또래 남성 친구들과의 관계 방식에 대해



한   감정 표현은 잘하는 편이에요?


이현   요즘은 에겐남, 테토남이라고 나누기도 하죠. 특성상 MBTI 중 T가 굉장히 많아요. 저는 F예요. 반반 정도이지만 F에 조금 더 가까워요. 그래서 상처를 더 받기도 하고 감정 표현을 잘하고 그러니까요. 뭐랄까. 잘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한   다층적인 압박감이 있겠네요. 남자다움도 있고, 이공계열이라는 것도. 근데 이걸 구분할 수 없잖아요. ‘이게 남자다움이야’, ‘이공계열이야’, ‘T라서 그런 거야’ 등등 헷갈리기도 하겠네요. 저는 청소년기에 또래 남성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감정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배웠던 것 같거든요. 그 과정에서 표현을 안 해 버릇하니까 더 못하고, 고장 나고 했던 시기들이 있어요. 바꿔 나가는 과정이 지금도 꽤나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남성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실제로 남성 자살률이 높아요. 1년에 거의 1만 5천 명이 자살했을 때 그중 1만 명이 남성이거든요. 사실 되게 이상하잖아요. 근데 병원에 가서 상담받거나 진료받는 남성은 여성의 절반뿐이에요. 갑자기 죽는 건 아닐 거고, 병원에 안 가는 거죠. 아픈 것을 견디는 게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남성들에게 해주면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고요. 실제로 조금 더 많은 남성이 관심을 보였던 것 같아요. 요즘 계속 고민하고 말하는 주제가 ‘돌보는 남성들이 필요해’라는 것이에요. 집안일은 끝이 없고 돈 버는 것도 아니니까 상대적으로 효능감이 떨어져요. 근데 이게 없으면 안 굴러가거든요? 남성들에게도 돌봄이 중요하고, 그러니 잘하며 살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이들이 우울해지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고독사하지 않으니까요. 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나요?


이현  가사노동 자체가 그렇게 재미없잖아요. 매력적이진 않죠. 성취감을 주는 일이 있으니까 이건 좀 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한   그래도 친구끼리 돌보는 건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책 <남자들은 왜 친구가 없을까>가 재밌었던 이유가 제가 외롭기 때문이에요. 20대 후반까지는 안 외롭고 친구도 많았거든요. 근데 30대가 넘어가면서 주변에서 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에 바빠지니까 점점 외로워지는 거예요. 근데 재밌는 건, 제 애인이 저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근데 애인은 별로 안 그렇더라고요. 남자인 친구끼리는 굉장히 경제적인 통화를 하잖아요. 저도 친구와 5분 이상 전화를 안 하거든요. 근데 애인은 통화를 많이 하는 거예요. 저걸 해볼까, 싶더라고요. 친구들과 나와서 놀고 게임을 하는데 왜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것에 이렇게 미숙한지 고민이 들더라고요. 이런 건 좀 더 재밌고 즐거워하지 않을까요? 어떠세요?


이현   그게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체로 여자들은 게임하지 않잖아요. 그냥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해소하죠. 반면 남자들은 게임하든지 노래방에 가든지 약간 활동적인 걸 한단 말이죠. 그게 방식의 차이이지. 뭐가 좋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한   맞아요. 저도 게임하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매일 밤 친구들과 게임하면서 많은 위로를 얻어요. 이것도 좋은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살가운 대화나 감정 표현은 왜 안될까, 고민 상담도 하고 싶은데 그건 왜 못하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으면 베스트잖아요. 친구들에게 만나서 차 마시자고 하면 이상하게 여겨요. 제 또래 친구들은 좀 그런 거 같아요. 


이현   그렇죠. 보통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많이 하니까요. 


한   네. 저는 그게 아쉽거든요.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잖아요. 제정신인 상태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죠.


이현   고민 상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요. 중고등학교 때 생각하면 친구끼리 고민을 상담 해달라고 많이 했어요. 근데 그 경우 말고는 길게 대화를 한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한   그걸 상시적인 나의 관계성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게 요즘 고민이에요. 인간관계가 다 동질적이지 않잖아요. 되게 친한 친구가 있고 조금 먼 친구도 있고 그렇잖아요. 책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에서 맵을 그리는 활동이 있어요. 그려보니까 가장 가까운 5명은 있는데 그다음 친밀함을 나눌 관계가 부족하더라고요. 이게 안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좋은 활동이었어요. 우리가 맺는 관계를 조금 더 진전시키는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저희 거의 1시간 정도 이야기했는데요.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소감이 있을까요?

이현   재밌었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돌아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한   저는 페미니즘이 결국 어떤 것을 바라보는 안경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사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색안경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게 안경만 끼는 게 아니라 거기에 렌즈가 추가되는 형태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해요. 알차게 이야기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한의 코멘트

앞서 대화에서도 나왔지만, 이공계열 친구들을 만날 때면 ‘이런 문과문과한 이야기는 안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과학고등학교에 강의하러 다니다 보면, 질문도 정말 많이 하고 호기심도 크거든요.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호기심에 다다르는 과정이 달랐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이렇게 물음에 답하는 방법이 다른데 어떤 것이 상대에게 와닿는 과정인지를 잘 살피고 찾는 게 교육과 대화의 묘미인 것 같아요. 당연히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시간과 방법을 찾으면 분명 코드가 통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거든요! 그러니까 이 대화를 본 분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말을 걸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무수의 코멘트

누나와 친밀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나누는 이현님이 이야기를 들으며 제 남동생들을 떠올렸어요. 저도 한때 동생들과 페미니즘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대화라기보다 제가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말하는 상황이랄까요. 그때 저는 분노가 가득했고, 알려줘야 한다는 마음도 커서 좋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게 무척 시급하고 아픈 일이 누군가에겐 다른 세상의 일처럼 여겨지는 게 속상하기도 했네요. 그때 동생이 제게 ‘누나는 정답이 있는 거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아니. 나는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어. 근데 너는 틀렸어.’라고 말했어요. 그때의 저에겐 다른 속도와 위치성을 고려할 품이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이라면 다를 텐데, 이제는 서로가 더 멀어졌고 또 과거의 경험으로 두려워지는 것도 있어요. 그렇기에 이현님과 누나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화가 이어졌다는 것이 놀랍고 궁금해져요. 이후엔 <어색한 사이>에 추천해 준 분들을 제가 만나러 가볼 계획인데요. 특히 누나 분과의 대화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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