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자 작가이고,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도 갖고 있으며, 동양인 같기도 하고 서양인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매력을 지닌 미셸 자우너가 다음달 9~11일 열리는 25회 세계지식포럼에 옵니다.
자우너는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아버지는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가정 주부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9개월 만에 미국으로 이사를 가면서 미국에서 성장했습니다. 다만 매 여름방학 마다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았고 이게 자우너에겐 한국에 대한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자우너는 아시아인이라곤 거의 찾을 수 없었던 오레곤주 유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친구들은 자우너를 중국인 또는 일본인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자우너는 15살 때 엄마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고 어렵사리 갖게 된 기타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됩니다. 지역 음악축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자우너는 음악활동을 계속하지만, 엄마는 딸이 음악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 때문에 고교시절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매우 우울한 나날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우너와 엄마는 애증의 관계였습니다. 한 살짜리 아기를 데리고 한국인이라곤 찾을 수 없던 미국 오리건주 유진으로 온 엄마는 딸을 엄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자식들에게 스스로 결정권을 주는 다른 미국 엄마들과 달리 자우너의 엄마는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사사건건 간섭했고, 자우너가 다쳤을 땐 보듬어주기 보단 불같이 화를 내며 흉터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말 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편이었습니다.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끓여주고, 테라스에서 뜨거운 철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을 굽고 삼겹살 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자우너가 간장게장을 쪽쪽 빨아먹거나 산낙지를 초고추장에 푹 찍어 입에 넣을 때면 엄마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넌 진짜 한국 사람이야.”
자우너는 서부 집을 떠나 동부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여자대학교인 브린모어대(Bryn Mawr College)에 진학하게 됩니다. 가족을 떠난 채 시작된 대학시절은 자우너에게 작가로서 자질을 길러주었습니다. 이 때 자우너는 필립 로스, 리차드 포드, 존 업다이크 같은 미국 작가들의 소설을 탐독했습니다. 사실 자우너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쓰기에 주력했는데, 결국 논픽션 에세이로 작가로 데뷔하게 됐으니 다소 아이러니하죠.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우너는 뮤지션으로서의 길도 계속 걸어갑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인디팝 밴드 포스트 포스트(Post Post)를 결성하고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몇장의 디지털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자우너가 현재 소속 밴드인 재패니즈 브랙퍼스트를 결성한 것은 2013년입니다. 자우너의 글을 좋아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자우너는 한국계인데 왜 재패니즈 브랙퍼스트라는 이름을 밴드에 붙였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자우너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본 아침식사라는 밴드명이 미국인들에게 이국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고, 그래서 밴드의 음악에 관심을 갖길 바랬다고 합니다. 밴드 결성 3년 뒤인 2016년 영국 무대에 올라 첫 해외 공연을 했고, 같은해 유명 여성잡지 글래머의 에세이 공모전에 ‘Real Life: Love, Loss, and Kimchi’라는 글을 응모해 우승을 하며 음악과 글쓰기에서 모두 성취를 맛보게 되죠.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의 죽음과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인데 이 글이 2년뒤 발간되는 ’H마트에서 울다’의 초고가 됩니다.
자우너는 이번 세계지식포럼에서 한국 음식을 매개로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 가족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예정입니다. 마침 한국음식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터라 자우너가 자신의 세션에서 미국의 다양한 인종, 민족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우너의 세션은 9월 11일 오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