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U, ASIC 딥한 반도체 세계와 가능성

2022_Season 1 | #3 | 리벨리온 | 23 Jan
[業의 스타트업] 리벨리온 박성현, AI 맞춤 반도체로 인텔·엔비디아를 제치겠다는 포부
쫌아는기자들 2호 임경업 

 창업가, 그리고 창업멤버의 꿈과 비전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정말 꿈과 목표만 있다면 투자자들은 그 꿈에 얼마의 값을 매겨줄까요.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2020년 9월 창업 이후 11월 기업 밸류 285억원을 인정받고 55억원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 당시 시제품, 그러니까 소위 MVP 테스트를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5명의 코파운더, 그리고 무얼 만들어 어떤 시장을 노리겠다는 목표뿐이었습니다. 창업 멤버들의 쟁쟁한 이력 때문일까요?

 박성현 CEO - 인텔(Intel Labs),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MIT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오진욱 CTO - 뉴욕 IBM TJ왓슨연구소 리드 아키텍트/ 카이스트 전기공학 박사
 김효은 CPO - 의료AI스타트업 루닛(Lunit) CPO, 삼성전자/ 카이스트 전기공학 박사

 물론 이들의 이력이 주는 무게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요. 창업가 박성현 대표가 내세우는 꿈은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초격차 주인공, 그게 바로 리벨리온”입니다.
 
 반도체는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이 따로 있습니다. GPU(그래픽카드)를 만드는 엔비디아, 모바일 반도체를 만드는 퀄컴이 대표적인 팹리스입니다. 이들은 반도체 설계도만 그리고, 설계도를 가져가면 그대로 반도체를 찍어주는 전문적인 공장이 따로 있습니다. 이걸 파운드리라 부르고 세계 1등이 대만의 TSMC죠. 삼성전자는 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회사지만, 주력은 메모리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입니다. 물론 파운드리도 하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은 그래서 어떻게 저런 거대 기업들과 싸워 어떤 시장을 어떻게 뺏어 올 수 있다는 것일까요. 바로 AI(인공지능) 흐름을 타고 AI에 최적화된 칩(반도체)을 누구보다 빨리, 잘 설계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 시장에는 주인이 없다고요.

“고(故) 이건희 회장이 1970년대, 80년대 반도체에 투자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다들 미쳤다고 했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삼성전자입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제 고향 울산 앞바다에 조선소 짓겠다고 했을 때도 아마 똑같은 소리 들었을 겁니다. 저 양반, 제정신 아니라고요. 우리가 지금 컬러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 배를 어떻게 만드느냐고요.
 스페이스X에서 근무했을 때, 사내 와이파이 패스워드가 ‘Life on Mars(화성 위의 삶)’ 였습니다. 일론(머스크)을 비롯한 팀원들은 화성에 인류를 보내고, 내가 화성에 살겠다는 믿음으로 일합니다. 그게 사업적인 뻥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꿈과 비전에 도취해서 일합니다. 다들 미쳤다고 해도 그게 된다고 생각해야 스타트업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의 엔비디아, 퀄컴 같은 회사를 제치는 반란(rebellion)을 꿈꿉니다.”

 엔비디아의 이력을 찾아봤습니다. ‘1993년 4월, AMD 엔지니어 출신인 젠슨 황과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 3명이 설립.’ 그들이 넘어서겠다는 엔비디아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2022년 시즌1 딥테크 스타트업의 세번째 주인공은 스스로를 ‘딥테크의 하드코어 메탈 같은 기업’이라 소개하는 리벨리온의 박성현 창업가입니다.

리벨리온 창업가 박성현 대표. 오른쪽은 발달장애 청년작가인 정민우님이 그린 커리커쳐.
CPU, GPU 다음 반도체 전쟁터는 NPU
인공지능을 위한 반도체, NPU가 뭔가요. 
 여기서부터 어려워서 독자분들이 스크롤 내리는 것을 멈추면 안 되는데요. 최대한 쉽게 설명할게요. 그래서 약간의 왜곡도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세서, 그러니까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크게 CPU, GPU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숫자를 셀 때 1 다음에 2를 세고, 그다음 3을 세지 않습니까? 이렇게 작업의 순서를 매겨서 순차적으로 해내는 구조에 최적화된 반도체가 CPU입니다. 그 다음 그래픽, GPU는 벡터 개념이 들어갑니다. 왜 3D 게임을 하면 상하좌우로 캐릭터가 움직이고, 위치에 따라 표현되는 그림자도 다 다르지 않나요? 3차원의 공간에다 그래픽을 표현하려면 동시에 많은 좌표에 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로 여러 연산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GPU입니다.
 NPU는 그걸 넘어 인공지능이 수행할 무수히 많고 복잡한 연산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전문 칩입니다. 인공지능은 텐서 연산에 기초하죠. (텐서 연산은 벡터, 스칼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니 따로 검색을 추천합니다. 상대성이론 등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연산이랍니다. 물론 2호도 이해 못 했습니다) 문제는 텐서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가 과거에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글의 초기 알파고도 CPU와 GPU를 썼어요. 나중에 구글은 자신들이 직접 NPU(구글은 이걸 TPU, Tensor Processing Unit라 부름)를 만들어 알파고에 장착했고요. 다만, NPU는 다른 알고리즘 계산은 잘 못합니다. 인공지능이 원하는 계산만 잘하는 녀석이죠. 이제 걸음마 단계고요.

결국 수많은 알파고가 튀어나오고, NPU도 엄청 쓰게 된다?
 자율주행은 AI가 운전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도 주식 주문을 AI가 합니다. 사람이 그 룰을 짤 뿐이고요. 결국 AI는 경제적 임팩트가 큰 모든 산업에 다 들어옵니다. 그러면 정말 빠른 연산이 필요합니다. 테슬라 자율주행을 켜고 도로를 달리다 앞에 차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연산이 0.2초 발라서 브레이크를 0.2초 빨리 밟았다 쳐요. 그 찰나에 자율주행이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상이 올 거예요.
 그런데 GPU가 너무 비쌉니다. 인공지능 연산을 GPU가 전부 대신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죠. 지금 전 세계적인 GPU 품귀 현상 때문에 PC 사려면 가격 100만원이 넘어요. 비트코인 채굴 전용 반도체가 나왔는데도 그렇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사업을 해도 지금 비용 구조로는 수익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일 거예요. 
 이게 다 시대의 수요에 반도체 공급이 못 따라가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GPU는 가격도 비싸고, 두 기업(엔비디아와 AMD)이 독점한 시장이고, 전기도 엄청 먹습니다. 결국 NPU가 뜹니다.

근데 그 NPU. 구글 같은 대단한 회사들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바둑을 위한 인공지능이 알파고였듯이, 인공지능도 목적에 따라 다양합니다. 리벨리온은 금융 AI에 최적화 NPU, ‘아이온’을 만들었습니다. HFT(High-frequency trading), 한국어로 하면 초단타매매를 위한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고요. 사람 대신 정해진 연산을 처리해서 나스닥 같은 시장 오더북에 주문을 넣어주는 칩입니다. 
 TSMC 7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합니다. 밝힐 수 있는 고객사는 JP모건이고, 월스트리트와 한국에도 저희 칩을 사가서 쓰기로 한 회사들이 더 있습니다. HFT는 엔비디아의 GPU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리벨리온이 설계한 NPU 아이온은 GPU보다 속도가 10배 빠르고, 전력은 절반 수준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시장을 타깃으로 한 다른 NPU가 없나요? 
 아까 NPU는 특정 알고리즘에 최적화된다고 했죠? 그래서 GPU, CPU처럼 범용 반도체로는 쓰기 어렵다고요. 그래서 아직 블루오션입니다. 원래 ‘하바나 랩스’라는 회사가 금융 NPU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인텔에 인수됐고요. 그런데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 근무 시절에 유명 헷지펀드에서 ‘자신들 알고리즘에 맞춰 칩을 변경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에 인텔에 넣었는데 단호하게 ‘No’ 했습니다.
 인텔이 왜 금융 NPU에 목숨을 걸지 않았느냐면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번째, 시장이 작다. 두번째, GPU가 아직도 세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 비해서 금융용 반도체는 아마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전체 수요를 다 합치면 4 조원쯤 됩니다. 크다고요? 아니죠. 인텔이나 엔비디아 같은 회사들에게 정말 작은 시장입니다. 클라우드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수백조원 시장인걸요.
 둘째, 대부분 금융기관은 아직도 AI 연산에 GPU를 씁니다. NPU가 나오기 전에 GPU가 더 오래전부터 나와있었고, 퀀트 등 여러 투자 소프트웨어 연산에 GPU를 써왔던 것이죠. 엔비디아가 만든 GPU 기반 금융업계 소프트웨어에 다들 익숙해진 것입니다. 
 예컨대 저희는 운전석 오른쪽에 기어박스를 두고 탑니다. 그런데 영국이나 일본에 가면 기어박스를 왼쪽에 두고 운전해야 합니다. 만약 비슷한 성능 수준의 차라면 한국 사람은 오른쪽에 기어가 있는 차를 탑니다. 익숙해서 편하니까요. 그런데 성능이 압도적으로 더 좋은, 그러니까 페라리 기어를 왼손으로 조작하면서 타야한다고 해봐요. 그러면 불편해도 운전자가 스스로 적응해서 페라리를 탈 겁니다. 페라리가 아이온이고 운전자가 세계 금융기관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입니다.

작은 시장이라면서요? 미래 삼성전자를 노린다면서 4조원 시장으로 될까요
 리벨리온의 핵심은 NPU 뿐 아니라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방식으로 칩을 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입니다. 이용자의 주문에 맞춰 맞춤 설계 반도체를 만든다는 뜻이죠. 아이온은 그 첫번째, 금융 시장의 수요에 맞춘 ASIC인 것이고요. 다음 단계는 계속 새로운 사용자와 시장에 맞춰 설계해서 더 나은 성능의 NPU를 설계해서 파는 것입니다.
 NPU의 핵심은 커스터마이제이션, 맞춤형 설계입니다. 아이온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연산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정해진 연산의 속도는 10배 빠르도록 설계했습니다. 당연히 정해진 연산은 고객사의 요청에 맞춘 것이고요. 현재 1등인 인텔 NPU보다 약 20~30% 속도가 더 빠릅니다. 이런 설계는 하드웨어의 조합부터 소프트웨어 코딩 양쪽에서 기존 칩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NPU는 마켓마다 위너가 나올 것입니다. GPU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 엔비디아처럼 ‘위너 테이크스 올(Winner takes all)이 되지 않을 겁니다. 각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된 반도체가 다 따로 있을 것이고요. 자율주행 같은 분야는 테슬라나 우버 같은 회사들이 직접 만들 것입니다. 마켓별로 조금씩 다른 칩이 나오겠죠. 여러 마켓의 입맛에 맞는 칩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새로 설계해 꾸준히 내놓으면 시장 파이를 계속 가져올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를 겨냥한 칩을 가장 먼저 내놓은 이유는 그곳이 섹시한 업종이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는 최고의 금융공학이 한 데로 모이는 곳이니까요. 니치마켓이지만 여기서부터 체급과 명성을 쌓아갈 계획이죠. 테슬라가 처음에 로드스터와 모델S 같은 고가의 럭셔리 제품을 먼저 내놓고, 대중적인 모델3를 한참 뒤에 내놓았습니다. 테슬라 같은 전략이죠.
 리벨리온도 내년 내놓을 새 칩을 이미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아톰’. 데이터센터용 NPU고, 5나노 공정으로 준비 중입니다. 
 
아이온의 기원이 발명왕 에디슨에 있다고요?
 한국은 단일거래소지만 미국은 거래소가 정말 여럿입니다. 시카고에도 있고, 뉴욕에도 있고요. 증권, 옵션 거래소마다 거래되는 물건도 다릅니다. 그래서 과거 서부에서 금값이 떨어지면 동부 뉴욕에서 먼저 금을 팔아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에디슨이 같은 전보에 더 많은 데이터를 넣을 수 있도록 전보 기술을 혁신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12번 눌러서 전달하는 전보를 7~8번만 눌러서도 전달 가능하도록 한 거죠. 동부까지 빨리 전보가 닿으라고요.
 이렇게 거래소가 많고 달러인덱스, 유가, 선물 등 고려할 것들도  많다 보니 거래소마다 아비트리지(Arbitrage, 차익거래)가 생깁니다. 같은 물건인데 시장마다 가격이 다르니까요. 이 차익을 빠르게 캐치해서 거래하는 시스템이 바로 HFT, 초단타매매입니다.

 (2호 : 쉽게 가상화폐로 예를 들면 업비트의 이더리움이 300만원, 빗썸의 이더리움이 290만원이라면 누군가 빗썸에서
 이더리움을 290만원에 산 다음, 빠르게 업비트로 보내서 팔면 10만원 이득이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과거 가상화폐 초기 이런 방식으로 국내와 해외 거래소를 옮겨가며 차익거래를 했던 팀들이 있었다)

 HFT의 핵심은 결국 속도입니다. 내가 먼저 차익을 찾아내서, 빨리 팔아야죠. 10의 6승 분의 1초 단위에 주문에 수백만 달러가 오갑니다. 그래서 예전엔 뉴욕증권거래소 근처 아파트에 투자은행들이나 펀드들이 전세 내거나 집을 사서 그곳에서 트레이딩했습니다. 실제 거기서 하면 잘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거래소 근처 부동산을 거래소가 돈을 받고 임대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속도에 민감한 시장이니 반도체가 중요한 곳이죠. 결국 에디슨 같은 혁신에 도전하는 것이고요.

아이온 실물은 이렇게 생겼다. 패키징을 해서 실제 판매하는 제품 /리벨리온
이 정신 나간 생활을 견디는 방법, "제2의 삼성전자가 꿈"
MIT,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모두 화려한 이력입니다. 미국에서 창업해도 될 것 같은데요. 왜 한국으로 오셨나요.
 반도체에서 미국은 지는 해입니다. 한국은 뜨는 해고요. MIT 대학원에 가면 전자전산학을 같이 뽑습니다. 그 인원이 130명쯤 되는데, 한국으로 치면 2학년때쯤. 전공을 정합니다. 이때 10명이 전자과, 저처럼 반도체 설계랑 제조하러 갔고 나머지 120명이 전부 컴퓨터사이언스. 코딩하러 갔습니다. 다 구글, 페이스북 가겠다는 것이죠. 더 이상 미국 반도체 산업에는 젊은 피, 영블러드가 흐르지 않아요.
 반도체가 그들에겐 더 이상 힙(hip)하지 않은 산업, 농대처럼 되버렸어요. 그런데 또 반도체는 마치 21세기 식량안보 같은 산업이 됐습니다. 국가안보와 직결되거든요. 그래서 바이든이 반도체를 손에 들고 흔드는 것이죠.
 반도체는 1등 대만, 2등 한국 순으로 생태계가 제일 좋습니다. 대만은 설계부터 파운드리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뤄지는 곳이고요. 한국이 그 다음으로 좋습니다. 일단 삼성전자라는 거대하고 훌륭한 공장이 있고, 인재들도 반도체를 하겠다고 몰립니다.
 
 냉정하게 리벨리온 수준은 미국 NPU 강자 업체들과 비교하면 1.5티어쯤 됩니다. 2티어 스타트업보다는 더 낫고, 1티어 강자들에게는 조금 쳐지고요. 누군가는 ‘너희 그러다 삼성전자가 M&A하겠지’ 합니다. 아뇨. 저희는 투자 받아서 글로벌 2티어 회사들을 M&A 할 겁니다. NPU와 ASIC은 다양한 분야의 니즈와 수요를 맞춰야 하니까요. 팹리스에서 튀어나온 제2의 삼성전자, 그게 리벨리온의 꿈입니다. 이 정도 꿈은 꿔줘야 이 정신 나간 생활을 할 수 있죠.

정신 나간 생활요?
 새벽 4시쯤 자서 8시에 일어나고요. 아침 먹고 11시 넘어서 회사 와서 점심 먹고 다시 일 시작하고, 이런 생활이 매일이죠. 아직도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이유는…아마도 아이들 아침밥을 해먹이는 일과 학교 보내는 일을 제가 도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아마 이것도 안 했으면 쫓겨났을지도요. 하하. 이런 생활이니 스타트업은 정신나간 일이죠.

과고 출신 입니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꿈꿨는데 카이스트에서 좌절했다가 사업으로 전환.
다른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같은 유형인가요.
 고향은 울산입니다. 울산에서 태어나서 사실 기업가를 동경했어요. 울산은 도로를 정부가 아니라 현대가 깝니다. 그때 기업의 영향력을 실감했어요. 그때 다짐이 ‘나중에 빨래집게를 팔더라도 내가 만들어 판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남과학고 나와서 카이스트 전자과 02학번 들어갔고요. MIT에 박사하러 갔고요. 졸업하고 인텔 연수고 들어갔고, 처음에 서버 CPU 설계하다가 모바일 CPU로 분야를 바꿨고요. 
 고등학교 때 세계수학경시대회 국가대표 5명을 뽑는데 거기 못 들었어요. 카이스트 가보니 수학, 물리는 더한 천재들 많습니다.  저도 그 식상한 이유로 접은 사람 중 하나죠. 덕분에 그때 알았습니다. 테크의 매력을요. 테크는 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것입니다. 수학과 물리, 화학은 육상이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50, 100, 1000명이 원 팀으로 팀플레이를 해야하는 스포츠고, 순수학문은 나홀로 기록경기를 합니다.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요. 저는 팀플레이가 적성에 맞고 재밌어요.

리벨리온 팀원들 /리벨리온
일론 머스크의 회의 습관, '썸띵 엘스?'
그다음 스페이스X에서는 무슨 일을?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라는 프로젝트요.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을 무수히 많이 쏜 다음 인공위성과 통신으로 5G 같은 기존 통신망을 대체하겠다는 사업이죠. 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했습니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실리콘밸리 문화를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죠. 그 문화의 상징이자 정점이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였고요. 그래서 들어갔죠.
 미팅을 7~8시간씩 합니다. 회의실 안에서 아들과 딸 전화도 그냥 받더군요. 창의적인 무엇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회의가 안 끝납니다. 일론 머스크 습관이 ‘썸띵 엘스(Something else, 다른 건)?’를 계속 말한다는 겁니다. 계속 뭐 더 내놓으라는 것이죠. 팀원 대부분 이혼 등 가정에 문제가 있고, 토요일 밤에 미팅 끝나면 내일 오전 9시까지 마쳐 달라는 주문을 합니다. 정말 인간을 화성으로 보내겠다는 미션에 도취된 사람들만 일하는 곳이고, 그 에너지와 일종의 광기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죠.
 스타링크에서 도쿄의 마켓데이터를 위성을 통해 미국으로 쏘는 일도 했는데, 그때 월스트리트 제안 받았습니다. 돈 많이 주겠다고요. 거기선 스페이스X와 정반대였습니다. 입사 첫날 회의 때 예전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가 욕 잔뜩 먹었습니다. 요지는 ‘지금 장이 열려있는데, 한가하게 앉아서 회의를 하냐’고요. 월스트리트는 무조건 스탠딩 미팅입니다. 커피 마시면서 느긋하게 말하지 않고 요점만 말하고 끝납니다. 임원 회의도 10분 안에 끝나요. 일할 때는 물도 모니터보면서 마시고, 화장실을 갈 때도 백업 요원을 앉혀둡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것이죠. 진정한 몰입. 회의가 없거나 적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더군요.

스페이스X 근무 시절 로켓 앞에서 사진을 찍은 박성현 대표. /박성현 제공
사무실 내부를 지켜보니 대표님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한 방에서 회의 중이더군요. 스페이스X식 회의입니까
 아, 그건 회의가 아니라 면접이었습니다. 저희는 핵심 팀원 선발은 모든 팀원들이 들어와서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뽑아야 하니까요.
 어떤 회의는 10시간도 하고, 어떤 회의는 5분 안에도 끝납니다. 오른손에는 실리콘밸리, 왼손에는 월스트리트의 무기를 두고 쓰는 셈이죠. 양쪽을 경험했으니 필요에 따라 그 경험을 쓰는 것이고요. 리벨리온은 코로나에도 절대 재택근무 안 합니다. 욕을 하더라도 얼굴을 보고 일해야 하고, 회의는 10분을 하더라도 얼굴을 보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영원칙입니다.

대표님 이력으로는 창업 안 해도 돈도 많이 벌고, 한 자리도 하지 않았을까요.

 창업 너무 재밌습니다. 이건 다른 수준의 즐거움입니다. 우선 너무 쿨합니다. 저는 개발을 했어도 제 위에 최소 3명의 상사를 모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창업팀은 끈적한 문화가 있습니다. 리벨리온은 아직 퇴사자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도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가능성이 있다면 누군가 돈을 태울 것이고, 그 연료로 계속 나갈 수 있고요. 꿈도 크게 꾸니까 즐겁습니다. 저는 울산 출신이니 ‘정주영 회장님을 보며 꿈을 키웠고, 지금은이건희 회장님을 꿈꾼다’고 합니다!

겁나는 일은 없나요?

가끔 겁나고 두려운 순간이 있긴 합니다. 내가 이렇게 거침없이 일을 하는데 법은 잘 지키고 있을까. 노사, 회계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니까요.

망하는 두려움이 아니라요?
 경쟁에서 지면 망하겠지만, 누군가 저희 실패를 거름 삼아 NPU로 성공하는 날이 오겠죠. 반도체는 앞으로도 더더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고, NPU로 넘어가는 흐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스타트업이든 삼성전자를 이을 훌륭한 반도체 스타트업이 나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높은 확률로 리벨리온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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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에 쓰인 캐릭터는 오스트리아 Florian satzinger의 작품으로, 작가의 동의를 얻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2021 쫌아는기자들 All Rights Reserved   startu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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