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레터 여행 에세이 03. In Paris


057. 2022/5/22 일요일 


안녕하세요, 00님!

거긴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어요?


 🇫🇷 저는 열흘동안 파리를 여행했습니다.

지난 번 <파리에서 보낸 편지>에 이은

파리 여행 두번째 이야기인데요.


정말 파리는...너무너무 할 것이 많고

볼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아서

이야기도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ㅋㅋ

한편으로 절대 끝낼 수가 없었는데,

2개로 나눈 레터도 분량이 좀 많죠. 😅

오랜만의 여행이라 들뜨기도 했고,

날씨도 좋았고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어요.

무척 행복했답니다 :)


지금은 프랑스를 떠나 다른 나라에 와 있습니다.

훨씬 여유롭게, 쉬어가며 여행하고 있어요.

저는 다시, 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하고

또 이어 '여행지에서 보내는 편지'를 쓰려고요. 


언제나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히 여행하며 소식 전할게요!


봉현

03. Paris에서 보낸 시간 -2


Bonjour!


지난 번에 들려준 파리 여행 이야기는 어땠어? 00도 파리에 오고 싶었을까, 조금이나마 여행의 기분을 느꼈을까. 파리에서 우리가 만났다면 좋았을텐데 말야.


11년 전에도 왔었지만, 파리는 정말 정말 할 것도 볼 것도 많아. 보고 싶었던 미술관은 반도 보지 못했고 가고 싶은 지역, 구경하고 싶었던 가게, 먹어보고 싶은 레스토랑과 카페.. 반에 반에 반도 하지 못했지.


하지만 말야, 여행이라는 게 그렇잖아.

나는 오랜 기간 많은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언제나 여행은 예상할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냥 받아들이면, 그 또한 여행이고 모든 게 괜찮다는 것.


사실 파리는 6박 7일을 계획하고 왔었어. 그래서 여섯번째 날은 파리의 마지막 날이었지. 루브르를 보고 나온 게 오후 다섯시였으니까, 사실 뭐든 하면 할 수 있었고 빡세게 마지막 날을 보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 그때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걷기 시작했어. 그렇게 친구와 통화를 하며, 목적없이 그냥 파리의 길을 걸었어. 루브르에 입장하는 큰 문을 나와 Pyramides 역에서부터 팔레 후와얄 가든을 지나, BNF 국립도서관, Notre-Dame de Lorette 역에서 파리 9구로 들어서서 Rur des Martyrs 까지 계속 말야. 걸으면서 느껴지는 파리는 매순간 아름답고, 곁눈질로 본 사람들은 활기차고,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찬란했어.


Pigalle 역 방향으로 가는 중에 마흑띠흐가에서 메종 키츠네 아울렛을 발견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의 첫 메종키츠네를 구입했어. 사실 이게 내 인생 첫 텍스프리 소비였는데… 열심히 일해서 번 내 돈으로, 멋진 디자인과 좋은 촉감의 가디건을 여행지에서 직접 골라 구입하는 기분은 무척 짜릿했어. 최소 10년 동안 두고 두고 예쁘게 잘 입을거야, 파리를 기억하면서.


도트 무늬의 유니크한 가디건을 바로 걸쳐 입고, 바로 근처 카페 테라스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주문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중이었어. 친구에게 급한 메세지가 온거야. 나는 당황하지 않고 연락을 받자마자 빠르게 머리를 굴렸어. 차분하게 원래 내일 예정이던 런던 행 비행기 표와 호스텔 숙소를 모두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어. 30분만에 벌어진 일이었지.


사실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긴 한데, 계획이 무너진다고 상심하거나 스트레스 받지는 않아. 상황에 맞춰 내키는대로 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편이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결국 어떻게든 다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거든. 그리고 세상 일이 뭐, 다 계획대로 되겠어? 절대 아무런 문제 없이 굴러가지 않잖아. 그럴 때마다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을 찾고, 다시 또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해. 삶의 태도에서 꽤 든든한 나의 이런 성격은 아마 그간의 여행에서 배운 것들일거야. (나도 옛날엔 안 그랬어..ㅋㅋㅋ 엄청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그랬어.)


그렇게 나는 파리를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던 전날 저녁에, 갑자기 3일간 더 파리에 있게 된거야. 런던 여행이 모두 취소된 건 물론 아쉬웠지만, 그래도 파리를 더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어! 숙소가 연장이 안되서 이곳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고 며칠 신세를 지기로 했어. 서둘러 몽마르트의 숙소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재정비하고 잠이 들었어.



오래된 나무 계단, 노을 빛으로 가득 차던 테라스, 아침 먹고 글 쓰고 그림도 그렸던 거실 테이블, 매일 외출할 때마다 오늘의 착장을 셀카로 찍었던 거울, 달을 보면서 냄비에 차를 끓이던 부엌, 아늑하고 조용한 내 방. 일주일동안 머문 집을 떠나려니 아쉬웠어.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둔 뒤, 지인들을 만나기로 한 역 앞으로 나갔어.


그런데 Abesses 역에 엄청나게 사람이 많은거야! 평소에는 그냥 보통의 메트로 역이었는데, 알고보니 토요일이라 빈티지 마켓이 열린거지. 화려하고 낡은 그릇, 오래되고 독특한 조명과 가구,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지갑과 상자, 빛이 바랜 악세사리와 묘한 분위기의 장식품들. 정말 배 하나 태워서 다 사가고 싶었지만, 나는 소박하게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사진 커버인 작은 엘피판 하나와 작동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작은 필름 카메라를 샀어. 15유로를 주고 말야.



지인들과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어. 이 동네에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동네 산책 엄청 했는데.. 그 유명한 언덕에는 마지막 날 오전에서야 가봤지 뭐야. 가파른 계단을 오르느라 목이 탔는데, 스타벅스가 있길래 시원한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어. (프랑스는 대부분 아이스 커피를 안 팔아..)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커피를 손에 들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들뜬 표정의 관광객들과 함께 올라간 사크레 성당.


페이스북을 뒤져 11년전의 내 사진을 찾아냈어. 똑같은 자리,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었어. 2011년 겨울의 몽마르뜨에 있던 나와 달리, 2022년 여름의 몽마르뜨에 선 나는 머리가 많이 길었고, 혼자가 아니었으며,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아주 예쁘게 웃고 있었어. 행복하더라.


다시 커다랗고 무거운 내 배낭을 어깨에 지고, 물랑주르와 아멜리에 카페를 지나 근처 레스토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어. 그간 혼자 적당히 끼니를 떼우다 보니 이렇다할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었거든. 셋이서 메뉴 4개를 잔뜩 시켰어. 꼭 먹어보고 싶었던 프랑스식 홍합요리는 특별히 특대사이즈로 주문했지! 너무 맛있게 배불리 식사를 하고 짐을 맡긴 뒤, 나는 가볍게 백팩을 챙겨 혼자 나왔어. 글을 쓰러 가려고 말야.


사실 이번 여행을 떠올렸을 때 서울에서처럼 카페에 앉아 차분히 글 쓰는 시간을 무척 기대했었는데.. 파리는 사실 도난 위험이 언제나 있어서, 비싼 아이패드를 놓고 작업을 할 수가 없었거든. 잠시 화장실을 간다던가 하면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말야. 그러다가 며칠 전에 간 퐁피두 센터 칸딘스키 도서관이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 일부러 찾아간 곳은 정말 현지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오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이었어.


펼친 책 4권으로 둘러쌓인 듯한 모양의 큰 건물 4개, 가운데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고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어. 바로 옆에는 MK2 영화관이 있고, 도서관은 누구나 입장이 가능했어. 아주 많은 양의 역사적 아카이브와 수많은 책, 그리고 멋진 열람실이 여러개 있는 곳이었지. 도서관 카드를 찍고 열람실로 들어가니 정말 사람들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어.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는 공부하다가 지쳤는지 엎드려서 쪽잠을 자더라. 앞에도 뒤에도 각자의 할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집중해서 원고 교정지를 봤어. 그리고 도서관이 닫는 시간까지 글을 쓰다 일어났지. 파리 사람들과 함께 오늘의 할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기분, 꽤 좋더라. 여행자가 아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된 거 같아서.


그래서 다음 날엔 특별한 계획을 세웠어. 지인들 집에서 푹 자고 일어났는데, 그동안 엄청 걷기도 했고 긴장이 풀렸는지 너무너무 피곤하고 다리가 퉁퉁 부어 있더라구. (사실 전날 저녁에 오뎅을 넣은 너구리 라면을 먹기도 했고... 여행와서 처음 먹은 한국의 맛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어) 그래서 피로도 풀고 기분 전환을 위해, 수영장에 가기로 했어. 여행지에서의 운동, 낯선 도시에서의 수영!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거든.


프랑스 수영장은 어떤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지, 주의사항은 없는지 한참 찾아봤는데.. 파리에 4년을 산 분들도 가본 적이 없대서 꼼꼼히 찾아봐야 했어. 서울에서 챙겨온 수영복과 수경,수모, 세면도구를 챙겨서 40분 정도 떨어진 수영장으로 찾아갔어. 오픈 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더니 스포츠 가방을 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라.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고, 입장료는 3.5유로 였는데, 나는 학생인 줄 알았는지(…) 2유로에 입장했어.


유럽에서 수영장, 상상이 안되지 않아? 일단 탈의실과 샤워장이 정말 정말 신기했어.ㅋㅋㅋ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왼쪽에 옷 가게에 있을 법한 간이 탈의실이 있는데, 거기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어.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락커에 동전을 하나 넣고 짐을 보관해. 간단한 세면도구만 챙겨서 샤워실에 들어가면, 검은 벽에서는 따뜻한 물이, 흰색 벽에서는 찬 물이 나와. 수영복을 입고 정말 간단히 몸만 헹구는 거야. 그리고 이 모든 게, 남녀노소 같은 공간에서 함께였어! (수영을 하고 나와서도 마찬가지였어. 수영복을 입은 채로 대충 씻고 나가서 옷을 갈아입는거지.. 하하 나는 너무 새롭고 재밌었어!)



수영장은 정말 정말 아름다웠어. 원래는 이곳이 지하수를 끌어 올리던 역사적 건축물이었는데 공립 수영장으로 만들었다고 해. 크고 높은 유리창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 길고 깊은 5개의 파란 레일, 가족부터 혼자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은 건강하고 즐거워보였어. 한국 아레나 수영복을 입은 낯선 동양인인 나는 조신하게 물로 들어가 보았지… 온도는 적당했고, 깨끗했어. 몸을 풀고 나서 수경을 끼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는 순간. 정말 그 기분을 너무너무 좋아해. 심지어 여기는 바로 파리의 수영장이잖아!


살짝 무서웠던 건, 수영장이 시작하는 깊이는 0.9m인데 점점점 깊어져서 2.8m가 되더라구… 162cm인 나는 오리발도 없었고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헤엄치다가 꼬로록 할까 봐 걱정되서ㅋㅋ 딱 한번, 용기내서 끝까지 가봤어. 정말 바닥이 저- 아래 있더라. 어찌나 깊고 길던지. 바들바들 떨면서 레일을 잡고 다시 얕은 곳으로 돌아와 근처를 빙글빙글 돌면서 편안하게 수영을 했어. 하하.


(실외 수영장 사진은 구글맵에서!)


나는 이런 순간들이 참 좋아. 물을 무서워하던 나는 29살이 되어서야 수영을 배웠었거든. 무언가를 배워두면 분명 세상은 달라지고 세계는 넓어져. 물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바다에도 많이 갔고, 이제는 낯선 도시에서도 나만의 운동 루틴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어. 낯선 문화 속에서 익숙한 것들을 해보는,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짜릿해.


몸에서 나는 염소 냄새마저 좋다고 킁킁거리며 찾아간 곳은 영화관이었어. 문화의 도시 파리 답게, 영화관의 40프로가 국가 지원으로 운영되는 독립 영화관이라고 해. 블록버스터나 최근작이 아니어도 언제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거지. 내가 찾아간 곳은 [Espace 1789] 라는 곳이었는데, ‘벨빌의 세 쌍둥이’라는 작품을 보러 일부러 찾아간거야.



[Les Triplettes de Belleville]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야. 대학교 1학년때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보여주셨는데, 너무너무 충격을 먹고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웹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어. 그러던 중에 파리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거지! 2003년도 작품인데 말야!


그리고 사실 11년 전 파리 여행에서도 같은 감독, 실멩 쇼메의 다른 작품인 ‘일루셔니스트’를 봤었거든. 룩셈부륵 공원 근처의 작은 영화관에서 우연히 말야. 두 애니메이션은 거의 대사가 없어. 그래서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나도 뭐,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 티켓을 사서 입장했지. 아이와 엄마, 나. 셋이서 ‘벨빌의 세 쌍둥이’를 봤어.


애니메이션은 정말… 다시 봐도 정말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엄청난 아트웍과 퀄리티의 대단한 작품이었어. 캐릭터 디자인, 배경, 액팅, 음악 모든 것이 말야. 스토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음… 자전거를 타는 손자가 마피아에게 납치되서, 주인공 할머니가 손자를 구하러 벨빌에 가는데, 거기서 과거에 유명한 가수였던 세 쌍둥이 할머니들을 만나. 그렇게 개 한마리, 할머니 넷이서 마피아 조직을 그야말로 박살내는 ㅋㅋㅋ 이상하고 묘한 이야기야.


이건 짧게 요약한 스토리일 뿐이지, 디테일한 부분이 정말 놀라워. 강박 수준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보이는 손자, 묘하게 귀엽고 바보같은 마피아와 두목,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졌지만 항상 해맑은 세 쌍둥이, 그리고 거의 초능력 수준의 능력과 말도 안되는 체력을 무덤덤하게 행하는 주인공 할머니와 이상해보이지만 결국 매번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개. 캐릭터들이 모두 정말 재밌어!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엿볼 수 있는 배경들도 정말 독특하구.


나는 결국 파리의 중고 서점을 뒤져 DVD를 구입했어. 돌아가서 친구들에게도 빌려주고 나도 가끔 다시 보려고 해. (화질이 구리지만, 유튜브에 클립이 있어. 00도 한번 봐봐! 정말 추천해.)


도서관과 수영장과 영화관이라니. 사실 여행자로써는 별로 하지 않을 일들이지. 나는 이런 여행도 참 좋아해. 언젠가 ‘에어비앤비’ 에서 타이틀 카피 문구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했었잖아. 한달살이 그런 건 아니지만,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쇼핑을 하고 그런 것도 물론 좋지만. 평소 일상에서 하던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어디서든 나만의 방식으로 루틴을 가져보는 일. 지루하고 지겨웠던 일도 여행지에서는 또 완전한 새로움으로 다가와. 슬리퍼를 신고 공원 나무 그늘에 앉아 햇빛을 쬐고, 운동을 목적으로 수영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영화관에서 오래전 영화를 보는. 나는 이 날 하루가 파리에서 보낸 날 중- 가장 특별한 날이었어.


정말, 정말 파리의 마지막 날이야. 파리 하면 역시 에펠탑이겠지? 처음 와서는 트로카데로 가든에서 ‘낮의 에펠’을 봤으니까, 마지막은 역시 ‘밤의 에펠’ 아니겠어.


La tour Maubourg 역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소고기 계란 덮밥을 든든히 먹고, Rue Cler 끌레흐 가를 따라 걸었어. 건물 너머로 커다란 에펠탑이 조금씩 보이자, 가슴이 두근거렸어. 마르스 광장에 도착하자 에펠탑의 거대한 모습이 드러났고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잔디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어. 에펠탑 미니어처와 열쇠고리를 파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비어!와인!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나도 잔디 어딘가에 앉았지.


노란 빛으로 빛나는 에펠탑은 정말 아름다웠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매시간 정각마다 반짝이는 3분의 시간동안 조금 울었어.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풍경과 순간들이 너무 특별해서. 그리고 무척 행복해서. 그동안 간절하게 그리웠던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파리에서 보낸 열흘. 내가 말하지 않은 여러 자잘한 사건도 있었고, 런던행 비행기도 날리고 일정은 꼬이고, 온몸이 아파서 매일 아침마다 끙끙대며 일어나고 새벽까지 일하느라 잠도 거의 못잤지만. 그래도 모든 게 좋았어. 무엇 하나 아쉬움 없이, 외로움 없이, 두려움 없이. 이번 파리 여행은 완벽했어.


이번 첫 여행지로 파리를 택한 건 왜였을까.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책을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나에겐 정말 고되고 외로웠던,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기댈 것이 없었던 장소였기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 또 가본 곳에 다시 가는 것 보다는, 여전히 이 드넓은 지구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여행지가 많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2년 반동안 여행의 자유를 잃었었고, 작가로 일을 하게 된지 어느덧 10년이 다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돌아보면 이곳이 나의 첫 시작이었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런 확신도 없었지만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세상을 배우고 나를 알아가던 20대.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 수 있게 됐고,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훨씬 넉넉하고, 능숙하고, 여유롭게 말야.


이번 파리 여행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플만큼 짠했던 과거의 나에게 고생했다고, 잘 했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야.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어떤 한 시절이 있을거야. 00에게 그런 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겨울의 파리에서 힘겹고 외롭던 11년 전이었어.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그 때는 정말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찬란한 순간이었더라.

언젠가 다시 또 파리에 올거야. 프리랜서 20년차쯤 오면 어떨까, 그때는 또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 나는 또 배낭을 매고 다시 여행을 떠나. 내 파리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


나는 또 다른 나라에서, 00에게 편지를 쓸게.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를.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그림을 그리려고 파리에 왔다. 그림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것. 그러기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항상 고민하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상태의 흰 종이는 늘 두렵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늘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길가의 건물이나 나무를 그리곤 했다.


이곳 파리는 그리고 싶은 것투성이다. 길가의 가로등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동네 카페와 이름 없는 건물까지. 저녁 늦도록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려고 찾아온 파리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가득하고, 어느 곳에서도 에펠탑이 보이는 그림 같은 곳이다."


/봉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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