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후행동의 보림, 현정 활동가와의 대화

모두가 큰 문제인 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현상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릅니다. 저희는 이 시대의 ‘방 안의 코끼리’인 기후위기와 관련해,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식탁 앞으로 모시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나날의 희로애락을 함께 밥을 나눠먹는 것으로 얼마간 달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식탁 위의 코끼리’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엄살원’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습니다.


2화: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 ➀

<오늘의 메뉴>

비건 카레와 비건 오코노미야키,

그리고 감자 고로케


오늘의 손님: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은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온 기후운동단체다. 2018년 기후위기를 인식한 청소년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하여 국내 최초로 기후파업(결석시위)을 이끌고, 2020년 아시아 최초로 기후헌법소원을 제기해 마침내 올해 9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정부의 현 기후 대응에 대한 부분적 위헌 판결을 받아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헌법소원 최종 판결을 맞아 우리는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 윤현정 활동가를 만났다. 청소년의 목소리로 시작해 모든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운동의 방식을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당신을 초대한다.


호스트 소개


이레: @irae_lee
요리 담당이자 어린이 녹색소년단 소속이었던 환경운동가 꿈나무. 참고 기다리다가 이제는 용기내어 말하고 질문해요.

야독:
콘텐츠 제작 및 소시민 담당. 나 같은 사람도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인 분들을 대변해드려요. 

영이: @seoyoungchl
섭외 및 홍보 담당이자 기후 채무자. 기후 위기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느낌이다. 코끼리처럼 귀를 크게 열고 듣고 싶어요. 
프롤로그

영이, 야독, 이레는 지금 낯선 곳에 있다.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창문 너머로 늦여름의 우거진 녹음이 당신을 맞아주는 곳. 한쪽 벽을 뒤덮은 캠페인 전략이, 화이트 보드에 적힌 빽빽한 일정표가, 책장을 가득 채운 책이 누군가의 치열한 하루를 짐작케 하는 곳. 그럼에도 구석 구석  화분에 담긴 초록의 생명력이 그 고단함을 위로해주는 곳. 책상 앞에 앉아 서로를 뻘쭘히 바라보던 세 사람은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자 잔뜩 신이 난다. 

그렇다! 오늘 세 사람은 호스트가 아닌 손님이다. 지난 8월, 영이, 야독, 이레는 아시아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기후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기후행동에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청소년기후행동의 보림, 현정 활동가는 인터뷰에 응하며 셋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었다. 사상 초유의 ‘역 코끼리’의 날. 세 사람은 식전빵을 먹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린다. 


잠시 후 보림 활동가와 현정 활동가가 세 사람을 부른다. 부엌으로 쪼르르 가보니, 냄비 가득 비건 카레와 감자 고로케, 비건 오코노미야끼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다. 영이, 야독, 이레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식탁에 둘러 앉는다. 


일동: 잘 먹겠습니다~! 

 

야독: 오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너무 맛있어 보여요.

 

영이: (오물거리며) 특히 왜 고로케를 메인으로 선택하셨는지 알겠어요. 너무 맛있네요. 

 

이레: 맞아요. 원래 저희 프로젝트는 저희가 활동가분들에게 음식을 해드리는 컨셉인데, 오늘은 저희가 받는 입장이 되어서 낯설기도 하고 죄송하면서도 너무 감사해요. 

 

현정: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팀명이 ‘식탁 위의 코끼리’잖아요. 왜 코끼리예요?

이레: ‘방 안의 코끼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기후 위기는 너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충분히 얘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현정: 저는 아까 밥을 몇 컵 할 지 고민하다가, 팀명이 ‘코끼리’니까 많이 드시겠지…생각했어요. 

 

야독: 그렇다면...기대에 부응해보겠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 기후 운동


야독: 그럼 먼저 ‘청소년 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현정: 기후위기에 관심 가진 청소년들의 모임으로 시작해서 2018년 여름에 생겨났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조직화 되었어요.

영이: 2018년 여름이 정말 더웠죠. 그때 처음으로 진짜 큰일 났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것 같아요.

야독: 혹시 그래서 그때 처음 시작된 건가요?

보림: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그 무렵 IPCC에서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기후변화가 더 많이 체감되기도 했지만, 과학적으로도 이게 위기라는 게 계속 밝혀지는 해였던 거죠. 그래서 이전보다 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그러다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거죠.


*IPCC 보고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규명을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협의체 IPCC에서 주기별로 발표하는 보고서로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영향 및 적응, 완화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2023년에 발표한 제6차 보고서에서는 지구온난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것이며,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온난화가 심화되어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1.5℃에 도달할 것임을 밝혔다.


저희가 청소년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보니까 처음엔 간단한 만남조차 쉽지 않았거든요. 교통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학생에게는 큰 돈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줌(Zoom)으로 모였어요. 정말 전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경남 어느 시에서 한 명, 어느 지역에서 한 명 이런 식으로 모였어요. 그러다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도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초반에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느슨한 네트워크였는데, 그렇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어려워서 지금은 본부에서 상근하는 상임운동가 체제로 시스템을 바꿨어요. 상임운동가는 2.5명이고, 저랑 현정님은 상근, 다른 한 분은 유동적으로 출근하세요. 


영이: 헉 그러면 이번 기후헌법소원도 그렇게 적은 인원끼리 진행하신 거예요?


보림: 네. 사실상 2.5명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죠. 법적 자문이나, 홍보나, 디자인 같은 일들은 다른 협력 파트너를 찾았구요.


이레: 엄청 애 많이 쓰셨겠어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야독: 정말로요…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청소년기후행동에 들어오게 되신 거예요?

현정: 2019년 여름에 유튜브에서 기후위기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게 되었어요. 근데 제가 그동안 알던 내용이랑 많이 다른 거예요. 저는 사실 그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지구 온난화, 북극곰이 죽는대, 빙하가 녹는대, 근데 100년 뒤에 심각해진다니까 나는 괜찮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 이런 마음이었어요. 근데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대응할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나의 일이라는 게 그때 갑자기 확 와닿았어요. 그 10년도 안 남았다는 말이 아직까지 기억 나요.

그래서 다음날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 한 명이랑 둘이서 쓰레기 분리수거장 가서 박스를 주워왔어요. 그 박스에다가 크레용이나 물감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그냥 냅다 거리로 나갔어요. 매일 아침마다 등교 시간에 학교 앞에 서 있고 주말에는 공원이나 시청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역사회에서 소문이 난 거예요. 당시에 저는 울산에 살고 있었는데, 울산의 교육감이랑 부시장,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지역구 의원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근데 그 사람들은 저보고 ‘청소년들이 대단하다, 근데 이제 고등학생인데 시위 그만하고 공부해야 되지 않겠냐’, 이런 얘기만 하고, 심지어 어떤 분은 저랑 페이스북에 올릴 사진 찍으러 오시는 거예요. 그게 반복되고 실제로 기후위기에 대한 얘기들을 하면 하나도 안 듣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로 안 된다,  뭐가 더 필요하지?' 생각했어요. 우리 둘로는 안 되고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전략이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청소년 기후행동과 함께하게 됐어요.

보림: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아서 시위도 열심히 나가고, ‘유난떨어보림’이라는 챌린지를 스스로 만들어서 하기도 했지만 (웃음), 이게 정말 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 위기라는 게 확 체감이 된 건 2018년이었어요. 2018년 여름에 진짜 엄청 더웠잖아요. 저는 평생 한 집에서 살았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지어진 30년도 넘게 된 빌라에서 에어컨 없이 지냈었거든요. 그때도 열대야가 엄청 심했었는데 집에서 더위가 안 빠져나가니까 집이 너무 더운 거예요.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몸에 열기가 너무 안 빠지니까 샤워를 한 다섯 번을 했나? 근데도 너무 더웠어요. 그래서 그 상태로 거의 한 새벽 4시까지 일어났다 깼다 일어났다 깼다 씻었다가 잤다 또 깼다를 반복했어요.


불편하고 불쾌한 방에서 계속 더운 여름을 지내고 있었는데, 며칠 뒤에 뉴스를 보니까 우리 집이랑 너무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계셨던 분이, 그것도 저희 엄마랑 너무 비슷한 연령대셨는데 집에서 잠을 자다가 뇌가 익어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 거예요. 그걸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 집은 실제로 에어컨을 살 형편이 안 되고, 내가 지금 사회 나가서 열심히 돈을 번다고 해도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할 만큼의 뭔가를 할 수도 없는데, 이런 문제는 나 혼자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잖아요. 그럼 우리 집 같은 곳에서 사람이 죽는데 나는 이걸 계속 견딜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겪었던 문제에 대해서 되게 내가 잘못 알고 있었고, 잘못 보고 있었고,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는 걸 그때 많이 알게 됐죠.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해서 다시 파보기 시작했어요.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왜 지금도 문제가 그대로인 것 같지?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는데, 왜 20년이 넘도록 해결이 안 되는 거지? 그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을 계속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기후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까 처음엔 ‘진로를 그쪽으로 삼으시면 되겠네요’라는 말을 되게 많이 들었죠. 2050년까지 전문가가 돼서, 그러니까 지금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한 50~60대가 돼서 의사결정자가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오히려 '그럼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건 공부야? 대체 뭘 해야 되는 거야?'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 그러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게 청기행이었어요. 


야독: 그러면 보림님은 18년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기후행동을 쭉 같이 하고 계신 거예요?


보림: 저는 19년도 2월부터 같이 했어요. 18년도에 모임이 시작되긴 했는데, 초반에는 10대만 있었고,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시위를 하거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가 않잖아요. 그게 잘 허용되는 분위기가 아니니까요. 근데 저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19년도에 청기행과 만나게 됐어요. 마침 그때 전 세계 청소년들이 동시다발적인 기후 파업 결석시위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럼 우리도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고 시위를 만들어보자 해서 100명, 200명이 오는 큰 결석시위를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 또 한 두 달 간격으로 그런 결석시위를 만들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그냥 피켓 들고 거리에 나가서 서 있어도 보고. 그러다 좀 더 명확하게 전략을 짜고 누구를 움직여야 될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계속 할 수 있는 걸 찾았고, 찾을수록 할 수 있는 게 실제로 생겼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왔어요.

야독: 되게 의미 있는 시기였네요. 18~19년이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시기였나봐요.

보림: 그때는 지금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한다’였는데. 사실 운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기후 운동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어요. 대개 청소년은 미래 세대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기 좋은 사람들로 여겨졌고, 많이 배제되고 대상화됐어요. 목소리가 왜곡된 거죠.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주체로서 여겨지지 않고, 소위 ‘그림 만들기 좋은 도구’처럼 여겨졌어요. 이런 방식 대신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나와서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게 될 때 진짜로 변화가 생길 거라는 생각 위에서 조직 체계화가 시작됐던 것 같아요.

영이: 그런 시선이 있잖아요. 청소년들이 뭔가를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일단 ‘기특하네’라는 반응에서 시작해서,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 계속 행동을 하면 ‘왜 저러는 거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나중에는 결국 ‘애들이 뭘 알아!’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시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보림: 사실 저는 청소년으로 함께하지 않았거든요. 청기행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20대였고, 청소년 인권이나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나도 뭔가를 같이 하고 있긴 한데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청소년 주체를 대상화하거나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게 될 거라고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하지만 20대인 저조차도 청소년으로 범주화돼서 숨 쉬듯이 가스라이팅이 들어오고, 자기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어디 싸가지 없이’, ‘되바라졌다’, 아니면 ‘너네가 우리 도움 없이 운동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아느냐’, 이런 말들을 되게 많이 반복해서 듣게 되었어요.


저는 청소년들의 동료였는데, 그분들은 저를 청소년과 그분들 사이의 연결고리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애들 케어 잘 시켜라’, ‘어디 가서 울면 안 된다’, ‘어른들한테 예의 발라야 된다’, 이런 말들을 저한테 쏟아내셨고 그 경험이 생각보다 되게 치명적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되게 안 좋은 경험들이었어요.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운동이 되게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영이: 비단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운동사회 안에서도 그런 시선이 있었나요?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야독: 운동 사회 내부에서 그런 가스라이팅이 숨쉬듯이 들어왔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많이 놀랐어요.

보림: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여성 단체나 청소년 인권단체처럼 당사자성과 소수자성, 위계질서와 배제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단체들과 협업이 잘 돼요. 심지어 일반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할 때도 있구요. 하지만 다른 환경 단체와의 협업에서는 자주 어려움을 느껴요. 저희 단체를 도구화하고 소모적으로 소비하는 느낌을 자주 받아서요. 


사실 청기행의 활동이 자주 주목받고 성과가 잘 나오는 편이거든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세지를 조직하고, 저희가 하는 말들이 누구한테 어떻게 가닿을지 매일 고민하기 때문에 다른 단체들에 비해 성과가 좋아요. 근데 협업하자는 제안을 받아서 일을 시작하면, 자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쫓아오고, ‘어른들한테 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그렇게 훈수를 두려고 해요. 다른 환경단체에 있는,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 활동가에게는 하지 않는 말들을, 저에게는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이라는 이유로 하세요. 그래서 사실 어딜 가든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대체 누구와 연대해야 하지?”

야독: 같은 목표를 향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서로를 차별하고 배척하고 폐쇄적으로 행동하는 걸까요?


현정: 저도 되게 의외였던 게, 사실 저는 운동 사회라고 하는 걸 잘 몰랐고, 이런 일을 제가 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들어오게 된 거였는데 그 과정에서 좀 놀랐어요. 왜냐하면 정의와 평등이라는 단어가 항상 발언문에 쓰이고, 맨날 입으로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 발언대 밑에서 내려와서 우리랑 같이 교류하는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저 사람 진짜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동들을 보여주는 걸 보면서, 저희도 그분들을 되게 이해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은 왜 이 운동을 하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운동에 임하고 있을까, 이런 것도 되게 궁금했던 것 같아요.

보림: 사실 환경 운동가 중에는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어려워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주로 가치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세요.


이레: 당위적인 얘기들 말씀인가요?


보림: 맞아요.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정의롭지 않은지의 당위의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걸 자주 봤어요. 빈민촌에 사는 누군가, 쪽방촌에 사는 누군가에게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뭐뭐 해야 한다는 식이지, 그게 내 일이기 때문에 뭐뭐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분들이 종종 있었어요. 

 

야독: 저희가 제일 궁금했던 게 '청소년 기후행동이 다른 환경단체랑 제일 다른 게 뭘까?'였어요. 왜냐하면 청소년분들만 계시는 게 아니라 성인 분들도 섞여 있으니까 청소년 기후행동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했었거든요.

현정: 저는 그거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청소년은 사회 운동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저희 활동 처음 시작할 때는 대부분 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대였고,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근데 기존의 환경단체에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을 다니는 직장인들이 활동가로 일하는 그런 체계잖아요. 연간 계획과 목표가 있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항상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다 보니까 되게 열려 있어야 했어요. 어떤 행사나 캠페인을 기획할 때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조건을 두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되게 큰 방향성이었어요. 그래서 접근성을 고려하는 게 (차별화된 특징으로) 크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저희는 캠페인 진행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접근성을 확보하는 거거든요. 근데 사실 운동 사회 내부에서는 그게 그렇게 잘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김밥을 주시는데 계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비건 분들 생각 못했다고 하시면서 “계란 빼고 드세요”, 이런 식으로 퉁친다거나, 혹은 휠체어나 수어 통역을 준비해 놓지 않는다거나하는 일들이 되게 많이 일어났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단체가 기존의 운동 방식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를 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야독: 그러면 특정한 조직에 소속된 직장인이란 개념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자율성이 있었고, 누구나 그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으로 정체성이 확립된 건가요?

현정: 그것도 있고, 사실 청소년이라는 존재가 사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은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그런 배제나 소외 같은 것들을 많이 겪다 보니까 ‘이래선 안 되지’하는 생각이 생기면서 ‘그럼 우리 말고도 다른 존재들도 같이 해야 한다’라는 데까지 확장됐던 것 같아요.

보림: 정말 그래요. 항상 낮은 사람으로 존재한다라는 걸 저는 진짜 많이 확인하거든요. 

 

이레: ‘낮은 사람’이요?

 

보림: 우리가 무얼 하든, 쉽게 대해도 되고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것이죠. 하대해도 되는 사람, 얕잡고 내려치기해도 되는 사람. 당연하게 고려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또는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기꺼이 감사를 표해야하는 사람이요. 이건 어린이나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과도 같아요. 결국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는 건 단지 나이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어디서든 가장 낮고 무시받는 약자라는 정체성인 것 같아요.

 

야독: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한 게,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약자성은 ‘시간성’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제가 어린이였을 때, 청소년 시기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지금은 기억 안나거든요. 그렇게 누구나 한 번은 겪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겪었던 것을 잊게 되는 좀 특이한 약자성인거죠. 그런데 청기행 활동가 분들은 여전히 그걸 기억하고 계시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경험하고 계신거잖아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청소년으로서의 약자성을 끊임없이 겪어내야 하니까 지치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이레: 맞아요. 성공하는 날보다는 실패하는 날들, 별 성과가 없고 어쩌면 존중받지 못하는 날들을 훨씬 많이 경험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견디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현정: 그냥 버티는 것 같아요. ‘모두의 기후정치’ 캠페인을 진행하고 나서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는 번아웃이 세게 와서 그런 무력감을 많이 느꼈어요.

 

이레: ‘모두의 기후정치’는 대선 후보들의 환경 정책을 비교 분석해서 소개하는 활동이었죠. 

 

현정: 네. 거의 모든 후보들이 그 점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환경 관련 정책이 없다시피 했던,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던 후보가 당선되었죠. 사실 전 그때 투표권이 없었어요.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이레: (경악) 그러셨겠네요. 직접 투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 지켜보시고 관련 캠페인까지 진행하신 거잖아요. 무력감이 정말 심하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현정: 제가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에요. 기후위기는 내 일이잖아요.  내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저희(청기행)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제가 안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희망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야독: 저는 두 분이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느낀 건데, ‘다르게’ 하려고 엄청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남들이 하는 거랑, 그러니까 기존의 환경단체들이 하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다르게 하는 힘이 나오는지 궁금했어요. 


현정: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는 기존의 운동방식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고 겪었으니까요. 기후운동이 특히나 그런 부분이 있는게, 기후위기의 해결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정책을 제안하거나 분석하고 안을 만드는 일은 특별히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영역으로 여겨져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존중받고요. 반면 대중운동을 조직하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처럼 취급 받곤 하죠. 그렇게 운동 사회 내에서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위가 주어지고 그들이 주도권을 잡고 마이크를 독점하는 방식의 운동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방식으로 이어지는 운동은 실효성이 없다고 느껴요. 어려운 언어로 된, 접근성 떨어지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변화를 만들지 못하니까요.


보림: 기후위기는 한순간 뿅하고 나타난 예측 불가능했던 위기가 아니죠. 우리가 사는 사회가 선택해온 제도와 방식들이 쌓여 결국 기후위기를 만들었어요. 사회가 주류적으로 선택해온 방식들은 결국 화석연료를 태우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돈을 버는 것을 어느것보다 보장해주게 되었지만, 위기를 통제하고 충분히 안전하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입법과 행정이 주로 해왔던 기후 대응의 방식은 모두 실패해 온,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식들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대표적인 실패의 방식으로는 ‘시스템의 효율'을 핑계로 위기를 유발한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이죠. 그래서 지난 5년동안 기후 운동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공허한 선언을 마주했어요. 모든 정치인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은 5년동안 하나도 마주하지 못했죠.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실제로그 말 뒤에 이루어진 결정들은 화석연료를 늘리고, 온실가스를 막대히 배출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법과 정책이었어요. 


야독: 결국 그런 ‘실패하는 방식’은 약간 관료주의적인 패턴인 것 같아요. 보여주기 위해서, 소위 쇼잉(showing)하기 위해서,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페이퍼 워크 하듯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두 분은 안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차별점이 아닐까.

현정: (감탄하며) 궁금한데 혹시 기후단체에서 일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레: (웃으며) 야독한테 통찰력이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를 처음 알았을 때 너무 좋았던 게 저도 청소년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그 관심을 공유할 사람들이 없어서 되게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었는데 이분들은 그때의 저와는 다르게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구나, 그 점에서 제가 위로받고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계속 활동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또 하시는 활동들이 다 뭔가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활동이라는 점이 너무 여실히 느껴졌어요. 


영이: 저희가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제일 처음 인터뷰할 사람 후보 1번이 청소년 기후 행동이었거든요. 진짜 무조건 가야 된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야독: 사실 여러분을 만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레: 맞습니다. 청소년이 당사자로서 말하는 운동 자체도 굉장히 소중하지만 청소년이 기후 위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고 또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그걸 앞장서서 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저는 더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 운동이 가장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걸 계속 증명하고 계시니까요.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과 사례가 사회에서 많이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 ➁'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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