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다가 나간 허리
“아니, 배낭에서 다리가 자라는 거야?” 토요일 저녁, 내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홍대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날 보며 ‘설마 저 사람이겠어’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많이 놀랐지……?” “누가 술 마시러 오는데 그런 배낭을 메고 와. 술집에 둘 자리도 없다고. 근데 배낭에서 다리가 자라는 거냐? ㅋㅋㅋ”(친구A)
수년간 익히 들어온 말이라 타격은 없다. 동계용 캠핑 장비를 다 집어넣으려면 적어도 60리터 이상 용량의 배낭이 필요하고 캠핑과 장거리 원정용 내 그레고리 디바 70리터 배낭에 물건을 하나둘 패킹하다 보면 신장의 절반 이상은 배낭이 차지하니까. 콩나물처럼 배낭에서 다리가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박배낭을 메다 허리가 나갔던 몇 년 전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다.
처음 동계 캠핑을 위해 13킬로그램 무게의 배낭을 멘 날, 난 정확히 허리가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40킬로그램 군장을 메본 남성 동지들은 알 것이다. 배낭을 짊어지는 자세와 숄더 스트랩의 위치, 그리고 힙 벨트의 중요성을. 배낭은 아래쪽에서부터 무거운 것을 넣고 점점 가벼운 것을 넣어 패킹한 뒤, 멜 때는 과회전을 주지 않고, 무릎으로 배낭을 살짝 쳐주면서 어깨에 둘러맨다. 그리고 허리와 어깨에 배낭 무게를 잘 분산시키기 위해 몸에 잘 들어맞게 숄더 스트랩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대마도로 백패킹을 떠나기 위해 처음 박배낭을 메 본 그날의 난 그 어떠한 스킬도 없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한 유도선수처럼 요령 0%의 ‘어깨 메치기’를 해버린다. 그리고 장렬히 허리가 나간다. “뚝!” 내 몸에서 이런 육중한 소리가 날 수도 있구나 싶은 비현실적인 사운드였다.
일본 백패킹에서 눈물을 흘리다
파스 냄새를 풍기며 출근해 침과 도수치료, 충격파와 전기치료를 받으며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종횡으로 가로지른 지 한 달여 만에 허리 통증은 겨우 사라졌다. 그러나 ‘배낭 아래부터 무거운 짐을 넣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은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나를 쓰러뜨린다. 새벽 배 시간에 맞춰 급하게 캠핑 배낭을 싸다가 일행의 캠핑용 이소가스 십여 개를 배낭 상단에 싣게 된 것. 택시가 왔다는 말에 급하게 움직이다 무게에 못 이겨 고꾸라지는 나,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호텔 벨보이의 거친 눈빛. 그는 황급히 뛰어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준다. “다이조부 데스카, 오캬쿠사마(大丈夫ですか、お客様 괜찮으십니까, 손님)?”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 없는 입학식도 아닌데, 가방을 메고 넘어진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빨리 내려오라며 재촉하던 일행들에 대한 야속함 때문일까. 까진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자마자 눈물이 솟구쳤다. 이런 젠장, 싸울 때도 먼저 울면 지는 건데.
이 두 번의 좌절 이후로는 아무리 급해도 절대 배낭을 급하게 싸는 법은 없다. 하지만 살다 보면 아무리 짐을 잘 싸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섬 캠핑을 위해 박배낭을 싸들고 나왔지만 여수로 가는 차를 놓쳐버린 2018년경의 어느 날처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케이티 페리의 첫 내한공연 ’위트니스 더 투어(WITNESS: The Tour)를 보고, 섬으로 가기 위해 여수로 향하는 막차를 탈 예정이었다. 옷보다는 살이 더 많이 보이는 관객들 사이로 영롱하게 빛나는 형광 윈드브레이커를 걸친 내가 달팽이집 같은 거대한 배낭을 메고 들어서자 웅성웅성하는 대중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 등산객은 뭐야.’ 공연이 일단 늦게 시작한 데다, 히트곡 ‘파이어워크(Firework)’ 떼창까지 즐긴 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시간은 11시. 여수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는 5분 전 출발한 참이다. 역 근처에서 눈을 붙이고, 새벽 첫 차를 타고 도착한 여수 항구에서 날 맞이한 건 그러나 ‘태풍으로 인한 결항’. 저 멀리 뻔히 섬이 보여도 공해상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바로 섬이다. 앞바다는 잔잔했지만 먼 바다 날씨는 알 수 없는 게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 케이티 페리의 공연을 보고 여수로 가는 막차를 놓치고, 오늘은 배까지 놓쳤는데 빙그레 또라이처럼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가지 못해도 섬은 거기 있다
배낭을 멘 나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수 앞바다로 향했다. 먼바다의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여수 엑스포공원 앞바다는 놀랍도록 잔잔했다. 배낭을 풀고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틀어둔 채 버너를 꺼내고 물을 끓인다. 섬에서 먹기 위해 산 말린 생선을 꺼내고 전남 지역 소주인 잎새주를 꺼낸다. 소주 한 잔이 들어가니 빙글빙글 웃음이 또 나온다. 드디어 득도한 것인가.
가끔은 눈앞에서 버스가 떠나고, 생각지 못한 삶의 무게에 고꾸라지게 된다. 그럴 땐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다친 허리에 파스 한 장 짱짱하게 붙이고, 까진 무릎에 빨간 약 한 번 바르고, 내게 내민 옆 사람의 손을 맞잡으면서 말이다. 또 가끔은 짐을 잘못 꾸리거나, 차를 놓치거나, 폭풍우 때문에 타야 할 배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목적지에 가지 못한다 해도 그 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방 잘 메고 앞을 잘 보고 다니라’던 어릴 적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생각해 보면 사는 것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어린이집, 첫 수학여행, 첫 소풍, 첫 입학. 그 단계에서 중요한 원칙을 놓치지 않고, 정서적인 배낭을 잘 싸며 각 단계를 뛰어넘는 게 인생의 과업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닐까. 물론 살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어이없이 포트홀에 빠지거나 인생의 무게에 짓눌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빨리 가려고 서두르거나 편법을 쓰면 삶의 무게를 버텨주는 어깨가 더 망가진다. 고꾸라지면 일어나고, 놓친 차 대신 다음 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지 못한 섬의 다음 여정을 위해 건배를 해 보자. 밤까지 이어진 여수 앞바다에서의 잎새주 한 잔은 무거운 배낭일랑 내려놓고 천천히 가라고 날 달래주었다. 물에 잎을 띄워 천천히 마시라던 옛 아낙네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