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에게,
안녕 결, 민경이야.
기차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편지를 쓰면서 꼭 듣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는데 이어폰을 가져오지 않아 조금 허전한 상태야. 그 노래는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낭만적인 가사와 청량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야.
오월에 특히 어울리는 곡이니 너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냈니? 유난히 기념일이 많았던 날들이잖아.
나는 오월 오일, 지난 편지에서 살짝 예고했듯 간식 주머니 열여섯 개를 만들어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주었어.
만들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못했었는데, 막상 길거리로 나서보니 나.. 조금 수상한 사람 같더라고.
너는 길을 걷다가 누가 갑자기 말을 걸면 어때? 나는 세상이 무너진 듯 화들짝 놀라곤 하거든. 내가 잘 놀라고 겁이 많은 것도 있지만, 워낙 흉흉한 세상이니까.
근데 과자 봉지라니, 또 그걸 어린이에게 건넨다니. 여간 수상한 사람이 아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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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쥐어짜 낸 용기와 친구의 도움으로, 열두 명의 어린이에게 과자와 ‘100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해, 온 세상이 너를 환영해’라는 쪽지를 전할 수 있었어.
어린이들도 좋아해 주고, 곁의 보호자들도 고마워해 주어 용기를 내느라 빠졌던 진을 다시 채울 수 있었어. 내년에도 해보려고. 두 번째니,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겠지?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었던 오늘은, 가족과 산속 절에 다녀왔어.
그냥 등산 간 거였는데, 형형색색의 연등과 목탁 소리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절 안으로 들어갔지. 시원하고 달달한 오미자차를 받아 들고 절 내부를 돌아보니, 그야말로 유토피아였어. 텔레토비 동산이 떠오르기도 했고.
나무수국 아래로는 연주황빛 소원초들이 타고 있었고, 옥색 한복 치마를 입은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
향 타는 냄새와 끝물인 아카시아 향, 짙어질 준비를 하는 소나무 향이 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흘러들어왔고, 대웅전에서는 불경 소리가 울렸지.
그런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소원초를 넣거나, 절을 하거나, 음식을 나눠주거나 먹고, 또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어.
그리 큰 절은 아니었지만, 잘게 나뉜 공간에 저마다 의미와 규칙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어지럽지 않게 다채로웠어.
언젠가 너에게도 소개한 적 있었던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나는 리추얼, 그러니까 반복되는 의례적인 행위가 주는 위안에 대해 깨닫게 되었었는데 그걸 오늘 경험한 기분이었어. 꼭 초파일이 아니라도 절에 자주 들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여러 존재들과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고 싶거든.
오늘 절에서 눈에 담은 모든 것이 고운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그중 가장 내 마음을 흔든 풍경은 바로 소원초를 담아둔 함 뒤편의 공간이었어.
어딜 가나 나는 구석을 찾곤 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좋아해서 그런 게 더 큰 것 같아.
특히 오늘같이 사람이 빼곡하게 들어찬 곳이라면 그와 비례하게 구석진 공간의 비밀스러움도 배가 되거든. 그리고 비밀스럽다는 건 외부로부터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해. 아지트, 은신처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공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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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는지 궁금해. 절 안에서 찾은 공간을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궁금한 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네 마음에 있는 공간이야. 외부로부터 차단된 비밀스러운 공간,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네 마음속에 있는지 궁금해. 나는 아직 그런 공간이 없어서, 책이나 영화를 보며 다른 이가 꾸려둔 공간으로 도망가거나 과거의 기억 속에 숨기도 해. (이터널 선샤인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 내 마음속 공간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건데 아직 나와 협의가 잘 안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나랑 언제 완전히 화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먼저 네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네 마음속 비밀스러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야. 혹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공간을 꾸리지 않았다면, 마음이 어려울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는지 이야기해 주어도 좋을 것 같아. 이 질문을 건네면서, 미래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울 때 도면을 그려보듯 마음속 풍경을 떠올려 보았어. 그 풍경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어느 풍경이 있어, 그걸 소개하는 걸로 편지를 마무리할게. 김광석의 <너에게>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야.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 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 있는
구석진 그 하늘 어디선가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 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비밀스럽지만 한껏 열려있고,
끝이 없지만 불안하지 않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
너의 공간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을게.
2022.05.08. 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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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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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어릴 때, 또는 최근에 받았던 환대에 대해 물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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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시간이 따스한 환대의 추억으로 남겨지길"
오늘 질문은 답장을 쓰기 어렵다.
가까운 날들에 받았던 환대를 떠올리면 쉽겠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에 콱 발목잡혀 버렸네.
아쉽게도… 유년 시절의 나는 대가없이도 어른으로부터 환대받았던 기억이 거의 없어.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더더욱.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미숙함이 잘못으로 치부되고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장점으로 여겨지던 기억만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이건 내가 가르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점점 학교를 제외하고선, 돈을 내지 않고도 어른들로부터 어린이가 환대받을 수 있는 장소가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늘상 주변 어딘가에 ‘맡겨지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 어느샌가 어린이가 ‘고객’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 이 풍경도 탐탁지 않다.
어제는 반 아이들과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어린이 선언문을 만들었어.
아이들이 어른들께 전하고 싶은 선언들이 마음을 콕콕 찌르더라.. 진심이 담긴 아이들의 글은 늘 코 끝을 찡하게 만들지. 몇 문장들은 편지로 공유하고 싶어. 편지를 받는 날은 어린이날이 지난 다음주 월요일이겠지만, 문장에 꾹꾹 눌러 담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거든.
“어린이들을 어른의 기준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어린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어린이가 자기가 원하는 꿈을 꾸게 해주세요.”
내일(내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이야!) 나는 마을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에 자원 봉사를 떠나. 오늘은 운동회고, 내일은 어린이날 행사라니. 나는 아껴둔 아주 비싼 비타민을 하나 먹기로 했어. 비록 몸은 영양제로 버티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오고싶다. 내일 만날 어린이들에게 나와의 시간이 따스한 환대의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며 편지는 이만 줄일게.
P.S. 민경의 편지도 내겐 낯선 타인이 주는 환대 중 하나인 것 같아. 매번 초록빛깔 푸른 사진과 함께 동봉되는 민경의 일상 이야기는 월요일이 내게 주는 후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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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이라서"
첫 편진데 너무 좋다!!! 너는 진짜 멋진 일을 하고있는 것 같아!!ㅋㅋ미안 너무 들떴어. 대학 때는 친구들에게 생일때마다 길고긴 손편지를 썼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는걸 문득 깨달았거든. 그래서 낯선 너가 보낸 편지조차도 천천히 아껴읽게되네. 이것도 나에겐 환대인것 같아. 고마워!
어린시절 받은 가장 따스한 환대는 음... 나는 어릴때 거의 항상 환대받으며 자란것 같아ㅋㅋ 너무 자기애가 가득한 대답인가. 왠지 나를 다 좋아했던 거 같아 ㅋㅋ 나는 실은 모범생, 착한어린이, 질투심으로 뭐든 잘해내고 싶었던 어린이였거든. 단정하고 착하게 시키는 것들(만!)은 꼭 열심히 했거든. 그냥 그게 내 성격이었어. 소심한 성격도 한몫했던 것 같아. 그런데 꼭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 나를 환대했던 것 같아. 너무나 행운이게도 주변에 어린이들을 잘 대해주는 분들이 많은 동네에서 자랐어. 어린이들이 많고, 아파트 마당과 놀이터 상가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동네에서 컸거든.
그래도 역시 가장 따스한 환대는 가족들의 환대였던 것 같아.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들이지. 부모님과 여행다닌 것. 주말에 함께 요리한 것. 등산 갔다가 칼국수먹던 것. 도서관에 함께 다니던 것. 부모님의 직장분들과 친구분들과의 만남. 운동회와 학예회 각종 공연들에서의 얼굴들. 할머니집에 도착하자마자 활짝 웃어주시는 할머니의 모습. 내가 적어도 교수쯤 되길 (되리라) 믿으시던(믿고싶으셨던?ㅋㅋ) 할아버지의 "어어 왔구나!!!" 목소리. 수능끝나고 맞아준 가족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지금까지 기억어 남아있어.
이런 것들이 나를 지탱한다고 붙잡고 회상한적은 따로 없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이 기억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던 거겠지? 크면 클수록, 아니다 나는 다큰지 너무 오래됐어. 나이가 들수록, 이런 환대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구나 싶어. 너무 감사한 일이야. 이렇게 답장을 또 쓰면서 감사의 마음을 잠시라도 가져봅니다.
가까운 날들에 있던 환대로는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나눈 환대를 소개할게. 우리반 12살 어린이들에게 쓴 어린이날 편지야.
"우리반 친구들 내일은 신나는 어린이날이에요. 어린이날은 선물받는 잠깐 기쁜 날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의 날입니다. 우리반 친구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선생님도 돕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나의 친구가 했던 말을 나누고 싶어.
"어린이와의 여행, 선물, 이벤트와 같은 환대는 커서 기억도 못하니까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삶은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이라서 어제의 좋은기억으로 내일을 지내고, 또 그다음의 좋은 기억으로 일주일을 사는거야. 그래서 아이들이 여행이나 경험(환대)을 미래에 기억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린이의 현재의 삶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한거야."
모두가 어린이를 환대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어린이날 100주년
2022. 5. 5. 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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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너를 사랑해"
안녕~경, 오월의 첫 편지 잘 받았어.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하던데 과연 그러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야. 초 봄에 앞다투어 피던 꽃들이 지고 난 틈새로 이팝나무 하얀 꽃이 거리를 수놓고 정열의 장미가 담 너머로 피어오르고 해질 무렵엔 가까운 산에서 아카시아 향이 날아오는 등등 오감을 자각하는 오월이야.
그런데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무리 오감이 즐거워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헛 것이지 싶어. 하지만 마음이 밝아질 수 없는 이웃을 인식한다는 자체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가 함께 즐길 오월의 밑거름이 될거야! 틀림없이
‘歡待‘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어쩌면 경은 운이 좋은 어린시절을 보내었나봐.
그리고 그 운을 이제는 돌려주려 하나봐.
나는 환대를 받았던 어린시절을 보내었었나?
나는 누구를 환대해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어. 운 없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확실히 환대 받지 못했던,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가열차게 애를 쓰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환대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쩌면 그러한 열등감이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누구를 혹은 무언가를 조건 없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대접하는 것이 나는 서툴러. 그래서 나는 굳기 전의 촛농의 상태로 돌아가 사랑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고 싶어.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굳어진 촛농을 녹일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네. 나도 네 편지를 받고 싶네 ‘온 세상이 너를 사랑해 ‘라는 문구가 실린,
(추신) 답장이 어쩐지 칙칙하게 그려졌지만 사실 요즈음 나의 마음 상태는 ‘喜’,‘怒’,‘哀’,‘樂’ 중에서 ‘樂’이란거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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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잘 읽었어.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어.
무례와 혐오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사랑과 환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나.
굳은 촛농 같은 마음들을 같이 녹여 나갔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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