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민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뉴스민 뉴스레터 담당자 김보현 기자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선 홍범도 장군 논란에 대한 칼럼 두 개를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 8월 30일자 매일신문의 사설, 그리고 이를 반박한 뉴스민의 칼럼입니다. 

 매일신문은 지난 8월 30일,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국군의 출발점'은 엄밀하게 말해 1946년 미 군정하에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이다. 홍 장군과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어떤 연결 고리도 없다. 그런 점에서도 홍 장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홍 장군 흉상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육사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이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으로 불거진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오늘 뉴스레터도 시작합니다! 
  ⏰ 뉴스레터 미리보기

* 매일신문 사설 "홍범도 장군 ‘국군의 뿌리’ 아닌 항일 무장투쟁 주역으로 기려야"
* 1948년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와 직접적 관계만을 따지는 건 역사인식 부재하다고 볼 수밖에
* 국군의 뿌리는 정신적, 인적, 역사적 근거에서 찾아야
  🐮들어가기 전에 알면 좋은 것 

* 홍범도 장군? 한말의 독립운동가. 일제시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입니다.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어요. 러시아령 흑하자유시로 이동하여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했으나 같은해 6월 자유시사변을 겪은 뒤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이동했습니다. 1937년에는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고, 해방을 앞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습니다.

* 육사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은?  육사가 교내 독립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고, 대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인물의 흉상을 둘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김 기자: 이번 주 ‘친절한 김 기자’가 PICK한 기사는 9월 4일자 기사 👉국군과 항일무장투쟁 관련 없다는 ‘매일신문’의 궤변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선 칼럼 전문을 옮깁니다. 

 “홍범도 장군은 ‘국군의 뿌리’가 아닌 항일 무장투쟁 주역으로 기려야” 8월 30일 <매일신문> 사설 제목이다. 사설을 읽고서 반성부터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한치 앞을 다투는 때 국군의 뿌리를 논하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해당 사설의 논리대로라면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해군사관학교 앞에 건립한 이순신 동상도 철거해야 할 판이다.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 해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고, 조선왕정 아래 군인으로 생을 보냈다. 1948년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와 직접적 관계만을 따지는 건 역사 인식이 부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시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제막식 기념사에서 “충무공은 적선 300여 척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순국해 군인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며 “해사 생도를 비롯한 모든 해군과 해병대 장병은 명예, 헌신, 용기를 충무공을 사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관학교 생도를 포함한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무하여야 한다는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매일신문은 위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국군의 출발점’은 엄밀하게 말해 1946년 미 군정하에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이다. 홍 장군과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어떤 연결 고리도 없다. 그런 점에서도 홍 장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홍 장군 흉상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육사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밝힌 연원만을 본 것이다.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30년사』에는 “육군사관학교의 연원은 1946년 5월 1일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서부터 그 시발점을 삼고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지 역사적 근거나 논리가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국군의 날을 국방경비대 창설일로 해야 한다는 논리나 주장은 없었다.

 국군의 뿌리는 정신적, 인적, 역사적 근거에서 찾아야만 한다. 국군 창설에 참여한 군사경력자는 크게 보면 두 부류였다.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가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 그리고 또 하나는 일본군 출신이다. 일본군 출신들은 군대 창설을 준비했지만, 자신의 뿌리를 국군 창설의 정신적 근거로 삼지 않았다.
 
 일본군 대좌로 활동했다가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의 회고록에 따르면 스스로 전면에 나서기를 주저했고, 오히려 임시정부에서 참모총장을 맡은 유동렬을 ‘미군정 과도정부 남조선 통위부 부장(현 국방부장관)’으로 추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달라는 것이며, 국군의 상징과 정신은 광복군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후 광복군 출신들이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이범석 장군이 초대 국방부 장관을 맡게 됐다. 광복군 출신으로 국군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지만, 알려진 인물은 102명이다.

 역사학계에서는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뿌리를 명확하게 정립하자는 제안도 한 바 있다. 나라를 빼앗긴 이후 항일독립운동의 큰 흐름이 독립전쟁론에 있고, 국군의 원류를 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보자는 취지다. 홍범도 장군은 1907년 대한제국군 해산 의병으로 활동했다. 대한제국군 편제를 바탕으로 의병부대를 정비해 연해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십여 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홍범도는 연해주와 만주를 왕래하면서 국내진입작전도 계획했고, 봉오동 전투를 치룬 후에도 독립군 세력 통합에 나서기도 했다.

 독립전쟁을 벌인 독립군 부대들은 이념과 방략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가 뒤섞여 있었으나, 빼앗긴 나라를 독립전쟁으로 되찾자는 뜻은 같았다. 국방부와 매일신문의 사설이 문제 삼는 홍범도의 소령공산당 가입 경력이 문제라면, 1943년 홍범도 장군이 세상을 떠날 당시 소련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 중이던 미국, 영국, 프랑스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군의 뿌리가 ‘남조선 국방경비대’라면,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이들을 국군의 정신적 원류로 삼을 수는 없지 않는가.

 ※참고문헌
육사30년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30년사』, 육군사관학교, 1978
조동걸, 『한국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김민호, 「한국광복군 출신의 대한민국 국군 참여와 역할」, 『군사』 125호,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22
김주용, 「홍범도의 항일무장투쟁과 역사적 의의」, 『한국한 연구』 32권,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
한시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국근현대사연구』 84호, 한국근현대사학회, 2018
📢 (알림) 2023 대구경북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 성황리 마쳐

  뉴스민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경북협의회, 성서공동체FM이 8월 12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한 ‘2023 대구경북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에서 최우수상에 권규인, 심순경, 정진원의 <산안법 사각지대 아파트 청소노동자를 만나다>, 우수상에 박규선, 이윤호, 황민혜의 <“나를 믿어주세요” 내 삶을 찾는 도전, 탈시설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선정됐습니다.

 <산안법 사각지대 아파트 청소노동자를 만나다>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팀의 심순경 씨는 “청소노동을 18년 동안 최저임금을 받고 있던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한테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이런데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던 게…지역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조금이라도 알릴 기회가 된 것 같아서 기뻐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나를 믿어주세요” 내 삶을 찾는 도전, 탈시설 장애인들의 이야기>로 우수상을 수상한 황민혜 씨는 “언론과 전혀 관계 없는 학과를 다니고 있어서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일하는 것은 싫고 자유롭게 노는 게 좋잖아요라고 탈시설 당사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회에서 나누려고 하지만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다.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참여한 6팀의 모든 보도는 <뉴스민>과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할 예정입니다. ‘대구경북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은 참가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다음에는 더 긴 시간을 갖고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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