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는 늘 좋다. 반짝반짝한 새집으로 일상을 옮기는 행위이자, 어떻게 보면 새 출발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몇 년간 머물렀던 집에 쌓여버린 정도 정이지만, 비싼 돈을 들여 취향껏 치장해놓은 우리 집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심지어 이 예쁜 집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기 싫다는 약간의 이기심이 발현된다.

6년 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벽지, 바닥재부터 시작해서 몰딩, 웨인스코팅 등 할 수 있는 인테리어는 다 했다. 당시 나의 취향은 그야말로 18세기 말 유럽 전역에 전파된 로맨틱 스타일의 인테리어.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동화적 무드를 연출하는 스타일이었다.

집을 화이트와 연핑크로 마구 도배하고 흔한 가구부터 작은 오브제까지 앤틱한 공주님 무드로 덧칠했다. 보다 화려한 연출을 위해 로맨틱 인테리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늘거리는 레이스 소재의 커튼으로 포인트 삼았다. 이 커튼은 추후 해당 아파트에서 머문 약 5년 동안 중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주방 창문이랑 베란다 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쳐서 좋지만 층수가 낮아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간혹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거든. 꽉 막힌 커튼을 치기는 아쉽고 그냥 두자니 민망해서 은은한 레이스 커튼을 택한 것이 무드와 실용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현명한 결과로 이어졌다.

로맨틱한 스타일로 집을 치장하기 위해선, 패턴은 주로 플라워 패턴과 식물 문양, 스트라이프를 사용해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생화나 드라이플라워와 같은 꽃 소품, 화병을 통해 공간에 로맨틱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룸메이트 친구와 함께 지내온 나는, 의도치 않게 이 낭만을 잔뜩 누리면서 살아왔다. 감사하게도.

봄이 되면 룸메이트 친구는 나에게 생화를 선물한다. 이 서프라이즈 선물은 매년 이어져 어느덧 삶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어제는 외출한 룸메이트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 꽃 한 다발을 사 왔더라. 노란 리본이 둘러진 새하얀 포장지 사이로, 귀여운 데이지 꽃들이 고개를 내미는데. 나를 생각하면서 꽃을 고르고 예쁘게 포장되는 걸 기다렸을 그 로맨틱한 장면이 그려져서 순간 울컥했다. 온갖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표현을 동원에서 호들갑 떠는 나를 보며 룸메이트 친구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꽃은 선물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일 인거 알지?’ 아, 이 친구. 정말 사랑스러운 배려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다시 6년 전 그 아파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로맨틱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가구보다는 컬러나 오브제, 패브릭을 이용한 연출이 중요하다.가구는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앤틱한 원목가구 등을 배치하지만,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것들은 레이스와 실크, 벨벳 등의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패브릭을 활용하면 좋다.

이 스몰 소파도 그래서 들였다. 통통하고 섬세한 질감으로 부드럽고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외관을 자랑한다. 현대판 프랑스 왕실이 있다면,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공주님이 빠삐용 강아지를 품에 앉은 채 이 소파에 걸터앉아 있을 것만 같은 모양새다. 나는 이 미니 벨벳 소파를 거실 모퉁이에 배치해 뒀는데, 귀여운 색감과 모양에 다른 이들도 시선이 가나 보더라. 손님이 우리 집에 방문할 때면 꼭 한번 엉덩이를 붙이곤 했으니까. 

해리포터 덕후라면 알 텐데.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에서 가장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면, 마법부의 비서실장 엄브릿지가 덤블도어 대신 호그와트의 교수로 임명되는 것이다. 엄브릿지는 ‘벌(punish)’라는 명목으로 호그와트의 학생들에게 온갖 가학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주인공 해리포터 역시 몸에 상처가 생기는 체벌용 깃펜으로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 장면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엄브릿지의 방이다. 사악한 면모와는 다르게, 한없이 로맨틱한 무드로 치장되어 있던 방이었다. 고양이 액자로 채워진 벽, 벨벳 의자, 섬세하게 세공된 오브제들, 분홍색 벽지,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그녀가 즐겨 마시던 티컵 세트까지. 특히 우아하고 고전적인 티 세트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곡선을 중요시 여기는 로맨틱 스타일의 인테리어에서는 이런 티 세트가 거의 필수템이다. 컵과 소서에 새겨진 독특한 곡선이 특유의 동화적이고 부드러운 무드를 극대화해주기 때문이라고. 이런 티컵 세트 하나를 구비해두면 손님이 방문했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냥 화려한 티파티를 여는 건 일도 아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