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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ip | 삶의 기본 원리


자신만의 단점과 불완전함을 서로에게 드러내어 폐를 끼치고, 도움을 받고, 그런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본 원리다.
- 박혜윤, <숲속의 자본주의자> 중에서

📄 1일 3매 |  최갑수

글 같은 쓰지 않겠다며

점심을 먹으러 일부러 멀리까지 간다. 한두 시쯤 사무실에서 나와 운동 겸 산책 겸 천천히 걸어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 내 사무실은 산자락 아래에 있어 걷기가 좋다. 걷다 보면 커피잔을 손에 쥔 직장인들도 만나고 커다란 쇼핑백을 든 단체여행객들도 자주 본다. 사무실 주변에 대형아웃렛이 있어서다.


십오 분 정도만 걸어가면 금세 시골길에 접어든다. 무슨 작물을 기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농기구를 보관해 놓은 게 얼핏얼핏 보이기도 한다. 트랙터처럼 생긴 기계가 들어가 있다. 뭔가 멋쩍은 듯 서 있는 정류장도 지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제는 새로 생긴 국숫집에 갔다.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했다. 여느 국숫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저통이 달린 나무 탁자가 놓여 있고 물은 셀프. 잔치국수를 먹을까, 비빔국수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요즘 치과에 다니고 있다는 걸 떠올리곤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국수는 투명한 육수 속에 보기 좋게 담겨 있었고, 노란색 계란지단이 올라가 있었다. 반만 먹자고 했는데 다 먹었다.


국수를 다 먹고 사무실 돌아가는 길, 논둑을 따라 걸으며 베토벤을 들었다. 갈 때는 멘델스존이었다가 올 때는 베토벤이다. 곧 모내기 물을 대겠네. 무엇을 쓸까 생각하며 갔다가, 어떻게 살까 생각하며 돌아온다. 마음은 논과 같아서, 물을 대어서 고요히 파문을 들여다보다가, 어느날 무성하게 흔들리는 싹들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 기쁘게 비어 버린 들판에 몰두하는 일……. 생각 끝에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간다. 그래도 그동안 살면서 베토벤을 알았고, 이별을 나비로 만드는 법 하나는 배웠구나.


논둑길에서 잠시 비틀거린다. 다음 생에서는 글 같은 건 쓰지 않겠다며, 음악을 들으며 국수나 뽑으며 살겠다고 불평하는 나를 생이 다독인다. 어여 가, 슬쩍 등을 민다. 걸음걸이가 이민자 같다. ✉️

최갑수는 작가다. 요즘 다이어트 중인데 어제 밀가루를 잔뜩 먹고 말았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앤젤스 셰어와 몰트밀 위스키

앞서 언급한 김종관 감독의 영화 조제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위스키가 나올 때면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해 본다. 감독이 그 위스키를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취향이나 배경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쓰려는 걸까? 이런 식으로 추측과 상상을 보태 영화를 감상하면 나름의 재미도 있다. 콘스탄틴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아드벡 10년을 마시곤 하는데, 사탄과의 고단한 전투를 마친 뒤에는 묵직한 피트 풍미가 나는 아드벡이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킹스맨에선 랜슬롯이 죽기 직전 달모어 1962년산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인생의 마지막 술로 생전에 만나기 힘든 희귀 위스키를 택한 것이 꽤나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한국 영화에서도 위스키는 이따금 모습을 드러낸다.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는 단골 바에서 글렌피딕 15년을 주문해 마시는데, 물가 상승과 함께 위스키 가격이 오른 세태도 슬쩍 끼워 넣은 듯했다.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카발란 솔리스트 셰리 캐스크도 나름 의미심장하다. 극 중 탕웨이의 국적이 중국이라 인접한 대만 위스키가 친숙해 보이면서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술이라는 점에서 남편의 깐깐한 취향을 반영된 선택이란 생각이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켄 로치 감독의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를 빼놓을 수 없겠다. 제목만 보면 그야말로 위스키 애호가에게 헌정하는 영화 같지만 켄 로치가 또 누구인가. 일평생 영국 밑바닥 빈민들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들춰낸 리얼리즘의 거장 아니던가. 가벼이 위스키 영화라 여기고 관람하면 다소 당황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직업도 없이 맨날 사고 치기 바쁜 로비가 폭행 사건에 연루돼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여자친구가 뜻밖의 출산까지 하며 아빠가 된 그는 새 출발을 결심한다. 하지만 사회봉사센터에서 만난 동료들은 하나같이 술과 마약에 찌들고 남들을 속이는 데에만 몰두하는 밑바닥 인생이다. 그러던 중 로비는 센터 직원의 집에서 몰트 위스키를 난생처음 맛보고 자신이 남다른 후각과 미각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친구들과 에든버러의 위스키 시음 행사에 갔다가 세계 최고의 위스키 경매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비와 친구들은 인생 역전을 위해 한 통에 100만 파운드를 호가하는 위스키를 훔칠 계획을 세우고 수상한 모험에 나선다. (그 결과는 영화에서 확인하시길!)

영화는 위스키를 매개로 스코틀랜드의 빈부격차와 실업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지만, 정작 스코틀랜드 하층민들에게 위스키는 일상에서 도무지 만나기 힘든 상류층의 술일 뿐이다. 게다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술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위스키 경매는 이들에게 도무지 비현실적 세계로 비춰질 뿐이다. 감독은 이런 세태를 비틀어 로비와 친구들의 황당무계한 위스키 탈취 작전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로비처럼 평범한 사람도 위스키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도 은연중 들어내면서 말이다.  


위스키 애호가들을 혹하게 하는 장면도 물론 놓치지 않았다. 가령 로비가 처음 만난 위스키는 이제 만나기 힘든 스프링뱅크 32년산이고, 처음으로 찾게 된 증류소는 글래스고 부근의 딘스톤이다. 또 에든버러 시음회에서 라가불린, 크래건모어, 글렌파클라스 등 저마다 개성이 다른 위스키를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는 장면도 흥미진진하다. 결정적으로 경매에 부쳐진 전설의 몰트밀 위스키는 호기심을 한껏 증폭시킨다. 실제 존재했던 이 위스키는 현재 라가불린 증류소에 흡수돼 운영되고 있는데, 영화 개봉 이후 몰트밀 미니어처 병이 500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위스키를 즐기는 계층은 분명 나뉘어 있다. 로비와 같이 호기심을 갖고 순수한 마음으로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위스키의 가치를 일일이 평가하며 수집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위스키 가격이 전반적으로 꾸준히 상승한다는 점이다. 공급은 제한되어 있고, 수요는 늘어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발베니 1병을 사기 위해 오픈런 소동이 일어나는 현실이 무척이나 당혹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참고로 영화 제목의 일부인 ‘앤젤스 셰어’는 낭만적인 용어다.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시킬 때 해마다 2~3퍼센트씩 증발이 되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를 ‘천사의 몫’이라 불러왔다. 켄 로치 감독은 ‘셰어’에 방점을 찍고 위스키가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값비싼 희귀 위스키를 찬장 어딘가에 모셔두기보다 맛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위스키를 찾아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쪽을 선호한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알아야 할 위스키는 아직 많다.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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