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청소년 현장에서는 ‘자립’이 일상적으로 썼던 표현이지만 20살 청년 성소수자가 된들 세상이 환대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 불안정한 삶이 계속 이어져 갈 수밖에 없죠. 아르바이트를 하면 자립인가? 경제적인 것들이 보태진다면 자립인가?그것도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자립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됐고 단순히 쉼터라는 곳에서 1주가 됐든 2년이 됐든 그 상황에 맞게 머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저희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거죠.
미쉘 : 저희가 최근에 ’탈가정 청년들의 자립이 무엇일까’를 저희 그룹에서도 얘기하고 다른 청년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하고 얘기하는데,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집 구해서 경제적으로 돈을 벌고 이런 게 자립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각자만의 속도가 있는 거고 각자가 원하는 자립이 있는 거라서 지금은 사실 그런 것들을 내부적으로는 실험하는 그런 단계에 있어요.
민석 : 저희랑 비슷하네요. 저희는 우선 경제적인 거 다 떠나서 정체성에 대한 주체성이 어느 정도 서있어야 세상의 풍파와 온갖 반대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도 본인을 잘 세울 수가 있으니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자신을 갉아먹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자기가 올곧게 서 있지 않으면 ‘내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마음이 드는데, 그 전제는 자기 존중이 없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자립도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혹시 그 정체성이 굉장히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이건 아주 큰 문제이기도 하고, 그 문제야말로 띵동이라는 단체가 옆에서 어루만져 줄 수 있죠.
미쉘 : 우리가 이런 얘기들을 하면 사람들이 ‘좋은 일 하시네요.’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그런 것보다는 사실 필요한 일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들거든요. 필요한 일을 하는데 재원이 충분치 못하면 너무 좌절감에 휩싸이잖아요. 띵동은 어떤가요? 재원이?
민석 : (한숨)
미쉘 : 한숨은 쉬지 마세요 ㅎㅎㅎ
민석 : 저는 사람들이 좀 더 어려운 아동 청소년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은 선의의 마음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하는데, 띵동 역시 개인 후원인들이 많이 버텨주고 있어요. 종종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초반부터 저희는 국내 모금보다는 해외 모금을 먼저 시작했어요. 국고 지원은 없습니다.
미쉘 : 모금 그게 참 힘들잖아요. 너무 힘들텐데 어떻게 10년 가까이하고 계시는지…. 10년 넘게 하셨잖아요.
민석 :제가 생각하는 모금이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많이 모여서도 기쁘지만, 돈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 우리랑 새롭게 관계를 맺은 사람이 늘어났다는 개념인 거니까요. 중요한 건 눈앞에 떨어진 그 돈보다 돈으로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 같아요. 이 감사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당신이 기부해 준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아주 간단한 누구의 삶의 이야기 한 줄이더라도 전달하려고 하죠. 그렇게 하면서 띵동도 꾸역꾸역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 스스로는 최대한 돈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미쉘 : 앞으로 띵동은 어떻게 할 계획이세요? 조금 더 확장한다든지 센터를 더 늘린다든지?
민석 : 확장하는 게 제일 무서워요. 근데 계속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 우리들의 요구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요구로 계속 가고 있어요.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유일하다.' 는 말이, 예전에는 누군가한테 설명할 때 내심 뿌듯하고 너무 좋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제가 가장 표현하기 싫은 말 중에 하나에요. 오죽하면 10년이 지나도 유일할까 싶어서요.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거나, 정책을 만들거나 입법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논쟁거리쯤으로 여기는 동안 이들은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전히 논쟁거리로 치부하는 사회의 분위기, 입법자들의 이런 모습들을 활동하면서 많이 만나게 되고 그때가 제일 지쳐요.
미쉘 : 왜 다른 기관들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련한 이슈를 안 다룰까요?
민석 : 일단 첫 번째, 잘 모르고요. 여가부에 문의해서 우리 청소년들이 쉼터에서 다 거부당하고 나왔다고 하면 여가부에서 당황하죠. 왜냐하면 이들의 정책 안에서는 (대상자가) 모든 청소년이거든요. 트랜스젠더 청소년이든 개인 청소년이든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이든 이성애자 청소년이든 다르지 않은데, 쉼터의 기준은 다르다고 하면 책임을 쉼터에 위임해 버려요. ‘너희끼리 알아서 현장에서 해결해라’ 이런 느낌이거든요.
비비안 : 맞아요, 탈가정 청년들도 그런 상황들이 있어요.
민석 : 홈리스나 탈가정처럼 통계조차 없어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관련 연구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여성가족부에서 한 번도 (관련 연구에) 돈을 써본 적이 없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있어서는 특히 더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연구라도 한번 해보라는 것이에요.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홈리스나 주거 불안정을 경험한 비율이 40%까지 나와요. 홈리스 청소년 중에서 LGBT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이 그 정도로 위기가 굉장히 깊은 거거든요.
비비안 : 한국도 상황이 비슷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련 연구가 꼭 필요하겠어요.
민석 : 부딪혀 가면서 처음보다는 나아졌고, 저희가 만든 성과로 성소수자 청소년들 위기 지원하는 현장의 감수성을 조금 높였다는 것이 있어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종교 법인이지만 띵동에서 의뢰를 하면 그래도 그 청소년의 상황에 맞는 공간에서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게끔 하는 그런 협의가 가능한 쉼터들이 몇 개 생겼어요. 지금은 10개도 안 되지만 130개를 변화시키는 게 저희 목표에요. 여전히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하면 ‘넌 안돼.’ 하는 쉼터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계속 정부 부처한테 항의도 하고, 대책 마련하라고 요구도 하고, 대책 마련할 책임은 정부한테 있다고도 얘기하고 있어요.
바이올렛 : 띵동이 대신 목소리를 내느라 정신없이 바쁘시겠어요.
민석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본인들이 열심히 싸워요. 제가 오늘 오후에 가서 진정서를 써야 하는 친구도 고등학교 다니는 청소년인데, 커밍아웃 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거든요. 자기 지정 성별(태어날 때의 성별)의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학교에 화장실 마련을 요구했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으니 학교에서 물도 안 먹고 밥도 안 먹어요. 우울증부터 해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나빠지는 상황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보건교사와 부모님도 알게 됐고, 정신과도 다니고 있어요. 근데 이 친구가 여태 부딪힌 거잖아요, 자기 삶을 위해서. 그래서 저희가 같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로 했어요.
비비안 : 청소년 시기에 그렇게 해서 만약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하면 정규 과정을 못 마치는 거잖아요. 집에서 탈가정하고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면 그다음에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게 어려운데 다들 먹고 사는 것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