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백지선 저자

이 사회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회는 점점 비슷한 취향과 연령의 사람을 만나는 병렬 구조로 변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나와 수십 년의 세월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밀해지니 나 또한 수많은 시간을 뛰어넘어 사회와 호흡하는 기분이 든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양육자와 분리된 아이들을 맡아 줄 입양 가정과 위탁 가정이 우리나라에는 부족하다. 출산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열 달간 내 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불안은 그걸 상상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출산 전후로 몇 개월 일을 쉬었을 때, 또 출산 후유증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공포였다. 이미 많은 아이가 돌봄이 필요하고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면, 굳이 출산하지 않고 입양하는 것이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무얼 한다기보단 내가 너무 분주했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좋은 점은 사람이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며 살지 않나. 그런데 아이들은 오직 현재에 집중하다 보니 함께 노닥거리다 보면 나도 걱정을 안고 있을 틈이 없었다. 요즘은 나는 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자 일을 한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서 무얼 하자는 약속을 잡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하면서 모여 있는 게 편한 관계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그게 가능한 것 같다. 가족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은 물론이고 말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거의 없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지 않나. 힘들다고 느끼기보단 일이든 육아든 소진되게 만드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리고 배우자가 있든 없든, 육아에서 가장 힘든 것은 독박육아다. 나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어쩌다 만난 아이를 두어 시간 동안 놀아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100퍼센트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힘들다. 나는 소진되지 않기 위해 그런 심적 부담을 최소한으로 가지려 한다.

너무 쉬고 싶을 때는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수영하러 갔다. 일이 많을 땐 아이 돌보미를 부르고 옆에서 재택근무도 했다. 육아로부터 쉬는 시간은 직장을 다니는 여성뿐 아니라 전업주부에게도 꼭 필요하다. 하루에 몇 시간만 본인의 시간을 가져도 훌륭한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노동력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생산성이 높지 않은 나이의 사람들은 쉽게 소외된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의 어머니와 아이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봐 주고,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활력이 된다. 게다가 많은 노인은 세월을 거치며 누그러진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이들에겐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물론 나도 20대 중후반에 연애도 하고 결혼 생각도 했다. 그런데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즈음 IMF가 터졌다. 생활이 불안정해지며 연애고 뭐고 사치였고, 당장 내 앞길 챙기기도 바빴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가족의 생계와 출산과 육아를 혼자 책임지는 여성들을 어릴 적부터 많이 접하며 결혼이 여성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에도 썼다. ‘결혼의 성공률보다 입양의 성공률이 훨씬 높다’.

매우 긍정적이다. 동반자 부부가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실제 어떤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가와 상관없이 혼인 신고 여부가 복지와 행정의 잣대가 되고 있어 부작용이 많다. 새로운 가족 관계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우선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연령 제한도 미리 확인해 보면 좋다. 독신자의 경우 35세가 넘되 아이와의 나이 차가 50세가 넘지 않아야 한다. 입양 신청을 할 때 건강 진단서, 법원이 선정한 기관의 심리 검사 결과, 가족 상담, 법원의 가정 환경 조사, 지인들의 추천서 등이 필요하다. 특히 내가 얼마큼의 재산이 있는지를 서류로 증빙하고 얼마큼의 확신과 책임감이 있는지를 면접에서 보여 줘야 하는데, 독신자에겐 그 절차가 더욱 엄격하다.

돌봄 커뮤니티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도우며 육아를 하면 훨씬 도움이 된다. 바쁘거나 힘들 때 서로의 역할과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기댈 수 있다. 그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아무리 나라에서 지원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 어린이집이 있어도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해 줄 친밀한 관계가 있을 때 더 행복할 수 있다. 제도가 해결해 주긴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돌봄 커뮤니티가 꼭 가족으로 구성될 필요는 없다. 친구나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구성원들끼리 서로 맞춰 가는 것이다. 내겐 아이들을 보살펴 줄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지만 그만큼 그들의 입장에 맞게 이사도 하고 주거 환경도 바꾸며 노력했다. 도움을 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노력하는 관계에서 공동 육아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깨졌다. 그런 만큼 각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양한 관계를 부단히 찾아보고 시도해 보라. 입양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 내가 가장 존중받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서 삶의 양식을 직접 택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면 좋겠다.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 가족》을 추천한다. 가족 정책을 아동 인권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와 게일 콜드웰의 《먼 길로 돌아갈까?》도 재밌게 읽었다. 캐롤라인과 게일은 친가족은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며 시간을 보낸 관계였다. 두 여성의 진솔한 관계가 드러나는 회고록이다. 유사 가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글 이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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