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성차별, 정말 없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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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와 함께 발행합니다. 여성과 일, 그리고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고민을 담은 논문들을 달마다 키워드로 묶어 전해드려요.
폴리버리 레터는 매 달 두번째, 네번째 월요일 오전 8시에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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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별소득격차, #노동시장불평등, #구조적성차별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그게 다일까?
통계적 함정에 주목!

성별 소득격차 10년째 OECD 1위, “대한민국”

우리나라 성별 소득격차는 OECD가 1992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 해도 31.1%라는 격차를 보이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죠. 노동시장 내 성별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은 분명 있었습니다. 여성고용할당제도 있고, 요즘에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각종 돌봄 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잖아요?

나아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성별 소득격차,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은 이제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은 없어졌는데, 여성들이 임신, 출산 등으로 경력단절을 겪어서 성별 간 소득 격차가 나타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후자가 아닌 전자, 즉 ‘성차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성별 소득격차와 통계적 착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결혼 전인 20대 청년층에서는 성별 소득격차가 두드러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출산과 육아가 소득격차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고요. 그러나 국내 한 연구자는 이것이 통계적 착시임을 지적합니다. 이 착시를 걷어내면 성별 소득격차가 이미 노동시장 초기 진입 단계에서부터 나타나며, 이는 성차별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죠. 자세히 알아볼까요?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그게 다일까?

그동안 연구자 및 정책 입안자들은 국내 성별 소득격차의 원인을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로 설명해왔습니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소위 ‘M자형’ 모양을 보이는데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별 고용률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마치 알파벳 M처럼 중앙의 30-40대 여성의 고용률만 뚝 떨어지는 모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30-40대 사이에 잠시 일을 그만두었다가 아이가 어느정도 성장했을 때 재취업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 보니 국내 노동정책들도 자연스레 경력단절 여성에 집중해왔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첫 진입한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은 없는 것처럼 여겨졌고요. 그런데 M자형 곡선은 비단 한국에서만 특수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옆 나라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고, 여타 유럽 및 선진 국가에서도 완만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형태의 그래프를 보여주죠. 만약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이것 만으로는 한국의 높은 성별 소득격차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죠.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2021.03.19. “한국 여성 고용률은 M자형 곡선...20대에 최고점 → 30대 급락”.>

통계적 함정에 주목!

그동안 우리나라 20대 청년층에서 성별에 따른 고용률이나 소득격차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이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요.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한국에서만 보이는 연령의 독특성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통계적 착시라고 주장합니다.

💡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사회적 나이

보통 성별 소득격차를 확인할 때, 동일한 나이대의 남성과 여성을 비교합니다. 여기에 바로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에게는 병역의무가 있다는 사실이죠. 저자는 한국의 경우 대다수의 남성이 군 의무복무를 마치고 졸업 및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같은 연령대에서 여성의 경력이 남성보다 2~3년 더 많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26세라 하더라도 남성은 이제 막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상태라면, 여성은 이미 2년차 이상 경력직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동일 연령대에서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둘을 비교하면 오히려 여성의 소득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겁니다.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기술통계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죠. 실제로 졸업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에서도 약 2.2년이라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것이 나타났으며, 따라서 저자는 연령 대신 대학졸업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의 월 평균 소득을 비교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 스펙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소득비교에 더 적절한 변수를 찾았으니 이제 분석을 해볼 수 있겠네요. 통계분석에서 어떤 변수를 ‘통제한다’는 것은 ‘만약 해당 조건이 동일하다면’을 가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해도 내가 관심있는 변수의 영향력이 유효한가를 확인할 수 있죠. 우선 아무 변수도 통제하지 않았을 때 여성의 월 평균 소득은 남성보다 낮았습니다. 소득격차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았으니 이 결과 자체로 성별 소득격차를 주장하기는 어렵죠. 문제는 소득에 영향을 주는 가족배경 변수(부모 최종학력, 출생지역, 가구 소득 등)와 인적자본(최종학력, 전공, 학점, 자격증 보유 및 인턴경험 여부 등)을 통제했을 때에도 여전히 여성의 월 평균 소득은 남성보다 낮았다는 겁니다. 이는 스펙이나 다른 조건들이 동일했을 때에도 여전히 성별 소득격차는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 성별에 따라 원하는 전공, 일자리가 다르잖아

만약 여자와 남자가 선호하는 전공과 일자리가 달라서 그렇다면요? 성별 소득격차를 이야기할 때 종종 설명되어지는 방식 중 하나이죠. 많은 사람들이 남성은 이공계열, 여성은 인문계열 전공을 선호하기 때문에 남성이 자연스럽게 소득이 더 높은 이공계열 업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공과 업종과 같은 일자리 변수를 통제했을 때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소득격차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성별 소득격차는 전공, 일자리가 달라서 생긴 게 아니라, 동일한 전공, 일자리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추가로 상위권 대학 졸업자일수록 성별 소득격차가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상위권 대학 출신 여성이 하위권 대학 출신 여성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면, 여성고용할당제는 상위권 대학 출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상위권 대학 출신 여성의 차별을 완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한국에서 성차별 기제로 작용하는 ‘연령주의’

스펙, 선호하는 일자리 등 가능한 요인들을 모두 통제해도 동일 경력의 성별 소득격차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차별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죠. 그러나 이를 통계적으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노동시장 진입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이 혹시 한국의 ‘연령주의’를 통해 작동하는 것은 아닌 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인적자본과 같은 스펙 변수를 통제했을 때에는 소득격차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반면, 연령만 통제했을 때 훨씬 더 크게 줄었거든요. 나이가 성별 소득격차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겁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한국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죠. 나이가 든 사람이 성숙할 거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20대에는 같은 신입일지라도 군복무를 마친 남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나이차이가 있기 때문에 군복무를 마친 남성이 더 성숙하다고 여겨져 채용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진입 초기에는 연령에 따른 일시적인 격차가 있을 수 있겠으나,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것이 없어져야 하는 게 맞죠. 그런데 문제는 나이와 스펙 등의 조건이 비슷한 고연령층에서 소득격차가 더 커진다는 거예요. 저자는 이를 나이가 성차별 정당화의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즉, 남성은 나이가 많으면 성숙하다고, 여자는 나이가 많으면 부적격 노동자라고 여김으로써 연령주의가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오늘 소개한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는 기술적인 통계 수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릇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회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적 수치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엄밀한 분석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해당 사회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그에 맞게 데이터를 적절히 조작하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얻게 되니까요. 이는 비단 연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나 언론,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통계를 논리의 근거로 사용하고, 통계적 수치를 의심없이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통계가 교묘한 왜곡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성별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소득격차는 이미 노동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30대 이상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에 정책적 초점을 맞추면 한계가 있겠죠. 중요한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입니다. 저자는 노동시장 내 여성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도 차별이 지속될 시에는 정책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성차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