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위국일기, 아버지의 세 딸들 10월 1일부터 10월 3일 사이에 본 영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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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부산입니다. 내일부터 예매해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들을 하나하나씩 볼 예정인데요. 그 전에 최근 사흘간 영화관과 OTT에서 보았던 신작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먼저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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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도시의 사랑법>
10월 1일 극장 개봉ㅣ이언희 연출ㅣ김고은, 노상현 출연ㅣ118분
2010년대의 서울로 상징되는 대도시의 청년들이 겪는 거의 모든 적폐를 보여준다. 여자 혼자 사는 자취방을 노리고 베란다로 틈입하려 시도하는 남성, 회식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채로 주고받는 소수자 혐오 발언, 이별을 고한 연인을 응징하는 데이트 폭력까지. 그러나, 스무 살부터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기어코 흑화되지 않은 채로 서른셋을 맞이한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를 보는 데서 오는 어떤 산뜻함 같은 게 있다. 얼굴에 마사지팩을 꼼꼼하게 펴바르고 손끝부터 시려오는 냉동 블루베리를 입에 넣으며 그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다가 쌓이는 분노를 일상적으로 식힌다. 그것이 사랑을 말하기 전에 우선, 대도시의 생존법인지도 모른다.
원작 소설에 따르면, “실은 재희도 나도 그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서로가 좀 절실한 편“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탱하는 우정의 동력이다. 이는 흥수보다 조금 더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한 신입사원 재희의 사내 회식 자리에서 터져 나온다. ”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냐고 하지 마시고 그냥 쟤한테는 그게 목숨 같나 보다 하세요”라는 건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절친인 흥수의 입장을 만인 앞에서 대변하는 말이다. 밥맛도 술맛도 떨어져서 자리를 뜨는 재희에게 밤길이 위험하니 택시를 잡아준다는 대리님을 향해 재희는 강렬한 펀치라인을 날린다. “대리님이나 일찍 들어가세요. 남자들이 일찍 일찍 다녀야 여자들이 밤에 안전하지 않겠어요?”
김치찌개 뚝배기 위에서 찰랑거리는 소주, 다음날의 해장 라면이 부르는 또 한 번의 해장술, 내 절친의 연인과 불편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레드 와인, 속이 새까매진 흥수의 어머니가 심야 영화를 보고 와서 마셔버린 복분자주까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지만, 오히려 극장을 나올 때면 모든 것이 또렷해진다. 누구에게도 네가 너인 게 약점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을 굳이 강점으로 바꾸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렇게 나를 너무 잘 아는 존재인 재희는 떠났어도 흥수의 곁에는, 어쩌면 그들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함께했던 자궁 모형이 존재감을 드리우며 남아있다. 최근 몇 년간 본 영화 중 가장 통쾌하고도 재미있는 우정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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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위국일기>
10월 2일 극장 개봉ㅣ세타 나츠키 연출ㅣ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주연ㅣ140분
고백하자면 서울을 걷다가 궁을 마주했을 때 한자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한자를 잘 몰라서 곤혹스러울 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위국일기>의 영화 초반, “‘대야 관’ 자는 한자로 어떻게 써요?”라고 묻는 아사(하야세 이코이)의 말은 승모근에 긴장감을 한껏 불어넣게 했다. ‘대야 관(盥)‘ 자는 절구에 물을 넣고 그 아래 접시를 바친다고 쓰면 된다는 것. 그건 엄마와 아빠를 눈앞에서 사고사로 잃은 아사가 있는 곳에서 조문하러 온 어른들이 “(아직 중학생인데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으면)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 잖아“같은 말을 하는 걸 듣게 되었기 때문에 알려지게 된 정보다. 그런 말들 속에서 아사는 정말로 궁금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고 있는 이모 마키오(아라가키 유이)의 눈을 보며 질문하고, 마키오는 우발적으로 아사를 자신의 집에 들인다.
그 집은... 책과 쓰레기, 쓰레기와 책의 무덤이다... 바닥에 쌓인 책탑은 사람의 기척만 느껴졌다 하면 자꾸만 무너진다. (나는 마키오의 집에 있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 서점에 묶음 판매하는 알바를 하고 싶다!), 그들은 처음부터 혈연(마키오에게는 언니이고, 아사에게는 엄마인 대상)의 죽음이 자신들을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키오는 ‘글쓰기’라는 자신의 관심을 진지하게 여겨주지 않는 언니와 진작에 절연한 상태고, 아사는 싫어했던 피클을 어떤 계기로 다시 좋아하게 되듯 엄마에 대한 미운 마음을 거두려 하지 않는 이모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북토크를 열면 독자의 대기줄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평소라면 절대 안 입는 원피스를 입어볼 정도로 ‘글을 쓰는 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소설가’인 마키오는 마감의 고통에 압도당하고 정 안 될 때면 휴재를 결정한다. 그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그만큼 여전히 중요하다. 갑자기 현생을 내팽개치고 누군가의 부모 역할에만 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는 소설 쓰는 마키오의 작업구역과 아사의 주요 생활구역인 거실 사이의 경계를 방음에 취약한, 닫는 방법도 참으로 가지가지인, 일본식 미닫이문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살린다. 관객으로서 웃을 수 있는 구석은 거의 그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난중일기도, 열하일기도, 안네의 일기도 아닌 무언가. 이 영화는 장장 140분의 러닝타임동안 ’위국일기‘의 뜻풀이에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원작 만화에 따르면, ‘위국(違国) 일기란 ‘어긋난 나라의 일기’라는 의미다. 그럼 무엇이 어긋났는가? 개봉일에 영화를 마친 후 이어진 GV에서 정세랑 작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필연적으로 외롭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듯 자조 섞인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생활 패턴 또한 8시간쯤 이야기를 쓰고, 나머지 4시간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를 소비 하느라 ‘인간’이라기 보다는 ‘허깨비’로서 살아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쓰는 마키오가 우발적으로 조카를 동거인으로서 집에 들이는 건 그가 약간은 ‘현실 인간’이 되는 방편이라고도 말했다. 원작 만화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이 누군가에게 침범 당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아무리 악의없는 조카 때문일지라도 마키오가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모와 조카는 혈연이지만, ‘개별적 인간’이므로 개별적 감정이 존재하는 각자의 나라에 살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간편한 명제를 향해 반기를 든다. 그런데 영화보다도 만화가 조금 더 그 부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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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아버지의 세 딸들>
9월 20일 넷플릭스 공개ㅣ아자젤 제이콥스 연출ㅣ캐리 쿤, 나타샤 리온, 엘리자베스 올슨 주연ㅣ104분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알았다. 이 영화는 <결혼 이야기>의 자매 버전이다. <아버지의 세 딸들>의 러닝타임의 1시간이 지나갈 즈음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집으로 모인 케이티(캐리 쿤), 레이철(나타샤 리온), 크리스티나(엘리자베스 올슨), 세 딸들이 집 안에서 붙는 대화 시퀀스는 총 6번에 달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상대의 말에 쉽게 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지난 투병생활을 나몰라라 하던 이유가 자기 삶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던 첫째 딸 케이티는 곧장 이 집을 위한 새로운 규율을 세운다. 갑자기 사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팀에 발령받은 팀장님처럼, 케이티는 이 집을 원래 굴러가게 만들던 원칙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럴 듯하다고 여겨지는 방식들을 욱여넣는다. 이를테면,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집으로 레이철의 남자친구가 제집처럼 드나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지금보다는 아버지가 더 기운을 차리던 시절, 레이철을 제외한 다른 두 딸들보다도 레이철의 남자친구가 아버지와 더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외부인인 그가 눈에 거슬릴 따름이다. 직원을 당일 해고하듯 레이철의 남자친구를 집에서 쫓아내 버린 후 케이티는 자신의 리더십이 실패했음을 직감한다.
세 사람의 대화에서 막내 크리스틴을 가장 자극하는 말은 “(너는) 아이도 있고 몇 명 더 퐁퐁 낳을 테니까”라는 언니 레이철의 발언이다. 레이철은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가족 관계를 구축한 크리스틴의 삶에는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크리스틴은 정말로 ‘퐁퐁’에 과하게 버튼이 눌려버린다. 그렇지만 레이철 또한 매일같이 대마초나 뻑뻑 피워대기 때문에 잘한 건 하나도 없다. 위기의 상황에서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타샤가 하는 건 대마초를 피우는 일이고, 크리스틴은 성의 있게 요가를 한다. 케이티는 크리스틴을 향해 이런 상황에서 요가를 하는 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느냐는 의심의 표정을 짓는다. “우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야.” 세 사람 중 누가 해도 위화감이 없을 대사 이후로, 크리스틴은 언젠가 집에 아버지와 둘이 남아 있던 순간을 회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가 아빠가 격분하신 적이 있어. 뭔지는 몰라도 누군가 죽는 내용이었는데 나한테 이걸 설명해 주고 싶어 하셨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죽음은 실제 삶에서의 죽음과 큰 괴리가 있다는 거야. 죽음을 보여주려는 책, 영화, 그 외 모든 게 틀렸고 이미지나 언어로 옮기는 행위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지. 거대한 거짓말이랬어. 우리가 보고 있던 그것처럼…”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했든 간에 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자들에게는 다른 시작이 된다. 그의 말처럼 죽음은 어떤 작품에서도 온전하지 못하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떤 날의 우리는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이렇게라도 간접 체험을 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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