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릴 때, 저는 그곳을 떠나 왔어요. 가장 가녀린 초록이 단단한 땅을 딛고 세상을 향해 솟아날 때 그곳을 떠나 온 것이 어쩐지 저는 속상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우리 땅의 봄이 너무도 소중해서 차마 우리 땅의 바깥, 어느 곳으로도 나설 마음이 나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여린 속내를 뒤로하고 무장한 사람처럼 오래 뿌리내린 집의 문을 열고 나설 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주먹을 한번 단단히 쥐고서 |그래, 혼자. 또 다시 혼자의 길을 떠난다.| 되뇌며 밖으로 나섰을 때, 그것은 봄의 연두가 단단한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것, 메마른 땅을 뚫고 불쑥 다시 태어나 일어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새 봄에 일어나는 연두의 마음을, 솟아나는 꽃잎의 속내를 어쩐지 헤아릴 것만 같아요. 




  

   저는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섬, 족자카르타의 프라위로타만(Prawirotaman)이라는 길주변 숙소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면 벌써 천천히 날이 밝아옵니다. 켜켜이 밀집된 붉은 지붕들 뒤로 하늘이 붉으스레 물든 장면을 보며 눈을 떴어요. 이곳이 논밭 펼쳐진 시골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에 닭이 울고, 새들이 곳곳에서 지저귑니다. 물론 잠을 깨우는 것들이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와 이슬람의 성전 모스크마다 울려 퍼지는 노래(기도시간을 알리는, 절에서 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리에 그저 누워만 있을 수는 없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렇게 맞는 아침이 싫지 않네요.


이곳 사람들은 자신만의 새들을 갖고 싶은 가봐요. 집집마다 새들을 새장에 가두어 기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마당을 가진 사람들은 새장을 여러 개씩 두었는데, 이름 모를 작고 예쁜 새들, 앵무새, 부엉이뿐 아니라 비둘기, 닭과 같이 큰 조류들도 새장에 가두어 기르고 있어요. 그래서 아침에 새소리를 들을 때 마다 길을 걸으며 자주 보았던 새장 속에 가두어진 새들의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기도 하네요.  


아주 오래전에 핸드폰의 전화 벨소리를 새소리로 설정해 둔 적이 있었는데 깊은 숲에서 진짜 자연의 새들이 아름답게 울 때 전화가 온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어요.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지요. 새소리를 기계에 가두고, 새를 새장에 가두어 나만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새가 우리의 곁으로 와서 잠시 울어주는 것이 선물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새가 하늘을 날아 그 자신답게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새와 내가 서로, 함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런 분주하고도 소란스러운, 그들만의 새소리가 겹쳐진 아침이 이곳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직은 저도 이곳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없어요. 천천히 걸으며 또 느끼게 되겠지요.


 


  적도에 가까운 나라답게 습하고 무더운 날들이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의 한 여름, 8월의 가장 습한 한 때를 줄곧 보내는 것 같습니다. 잠시만 나가도 옷이 다 젖어서 얼른 씻고싶은 마음이 간절해 집니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 더 더운것 같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어제는 처음 비를 만났어요. 동남아의 스콜 같은 강렬한 비를 기대했지만 인도네시아의 우기가 지나고 건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우리나라의 봄비처럼 가늘고 가볍게 오다가는 그쳤어요.  


비를 만난 건 새벽 3시, 인도네시아 최고의 불교유적인 보로부두르가 보이는 곳으로 일출을 보러 가는 길이었어요. 가까운 길도 아니고 아침부터 1시간 반을 달려 일출을 보러 가는데 비가 오는 거예요. 미리 예약을 하고 차와 운전자를 섭외하고 가격흥정을 해서 정하는 일정이라 무조건 그날 나서야 하는 길이었죠.


날을 결정하고 그날의 날씨가 운명 지어지는 것은 어느 일본의 신사에서  수많은 나무가락이 들어있는 통을 흔들어 자신의 일년 운세를 하나 집어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한 날의 날씨가 어떻든지 그것은 운명이라고 믿으니 해 뜨는 장면을 보러 가는 길에 내리는 비가 그리 툴툴거릴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긴 길을 가면서 생각해 보았어요.  |비싼 값을 치르고 새벽에 멀리 나서야하는 해돋이를 보러 가는 날인데, 그날 비가 온다면 과연 가는 것이 맞을까?| 

아마도 저는 최상의 조건을 기다리기 위해 미루어 다시 날을 잡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한 차를 타고 가던 3명의 여행객에게 물었어요. |날씨를 종잡을 수 없으니 그래도 가겠다| 라고 이야기했죠. 아마도 저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보기와 달리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싶었어요.

해돋이를 보러 오르는 길에서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날이 밝아 오면서 구름이 금세 한 곳으로 몰려가는 것 같았어요.


 비가 와서 운무가 가득한 풍경. 정글가운데 운무사이로 보이는 보로부두르사원의 스투파. 캄보디아의 앙코르 사원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보로부두르 사원은 신의 창조물인 자연과 함께 잘 어우러져 운무가 피어오르는 가운데에서 신비롭게 아침을 맞고 있었어요. 해는 구름 속에 가려져 장엄히 등장하지 않았지만 운무가 정글사이에서 생명처럼 솟아오르는 장면은 봄에 돋는 여린 새잎을 보는 것 처럼 신비로운 장면이었죠. 또 지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아니고서는 만나지 못했을 관경이었을 거예요. 비가 와도, 하늘이 흐려도 태양은 그저 찬란히 떠오른다는 것을 잊었던 거예요. 



   처음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던 날, 자카르타에서 자바섬의 중부에 있는 족자카르타까지 닿는 길은 꽤나 힘들었어요. 비행기가 많이 미루어져 늦게 출발했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세운 치밀한 계획은 비행기가 약속된 시간에 운행하지 않았으므로 다 무산이 되었어요. 결국 가장 비싼 방법으로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하나 들어갈 좁은 길을 지나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온몸이 땀에 젖었는데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사람이 지나는 길 바로 앞이라 창문을 잘 열어 둘 수 없는 곳이었어요. 공용의 화장실을 쓰고, 보일러가 돌아가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샤워실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내고는 냉큼 들어와 소음 가운데 귀마개를 꼼꼼히 하고 잠을 잤지요.  |뭐, 내가 언제 에어컨이 있는 집에 살았다고. 이 정도 더위쯤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낙관적 위로를 하며 지새운 밤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려고 작은 식당을 갔을 때 키가 크고 푸른 눈을 가진 네덜란드 여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반가워하며 근교로 떠나야 하는 모든 일정을 바로 함께 하기로 했죠.  천천히 족자카르타의 분위기를 익힌 후 가보려고 했던 보로부두르 사원을 족자카르타에 오자마자  가게 된 거예요. 


그렇게 첫날 만난 이본 Yvonne 이란 친구와는 3일을 함께 보내게 되었어요.  

여행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쓸쓸한 한켠을 갖고도 넉넉한 무언가가 주어지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날씨가 언제나 더운 것도 (캄보디아 보다 더 많이), 길을 잘 건널 수 없을 만큼 오토바이가 많은 것도(캄보디아보다 더 거친), 이른 아침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운율을 가진 기도를 들으며 잠을 깨는 일도. 


곧, 다시 편지할게요.       




2024. 4. 17.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이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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