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요즘 나는 갓생 살기에 미쳐있어.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고 6시에 수영한 뒤 집에 와서 뉴스레터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보는 삶.. 이정도면 갓생 아닐까? 문제는 피곤해서 9시면 갓생이 강제 종료된다는 거야😅 갓생..맞지? 그래서일까. 지난 금요일 협박받아서 시체를 운반하다가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을 든 남자 4명에게 둘러싸여 찔려 죽는 꿈을 꿨는데 그뒤로 매일매일 쫓기거나 슬픈 꿈을 꿔. 지루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가도 악몽을 꾸고 나면 현실에 돌아와 너무 다행이란 생각을 해. 현실을 빨리 끝내고 싶어 얼른 눈을 감으면서도 말이지. 내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만약 인생을 리셋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거야?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다면 아마 오늘 추천작이 깊이 와닿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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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쉬업라이프 #요약
2023년 1분기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 수 있는 일드 [브러쉬 업 라이프]를 소개해줄게. 일본 인기 MC이자 코미디언 바카리즈무의 각본으로, 분기별로 개최하는 제 115회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안도 사쿠라), 여우조연상(카호), 각본상, 감독상을 휩쓸었어. 평범한 시청 직원 서른 셋의 아사미(안도 사쿠라)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몇 번이고 현세를 반복해 살아가는 회귀물이야. 현세에서 쌓은 덕이 부족하면 내세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하거든. 1회차의 인생이 끝나고 아사미가 안내받은 내세는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개미핥기였어. 같은 인생을 반복하면 더 나은 삶이 가능할까? 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드라마야.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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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의 변주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진 채 과거로 돌아간다는 장르적 특성에서 비롯된 예지능력, 시작점이 한참 앞서있는 지적 수준 덕에 이전 생과 달리 우월한 존재가 되어 운명을 뒤집는 극적 희열이 회귀물의 묘미야. [브러쉬 업 라이프]는 회귀물을 판타지가 아닌 일상 드라마에 점목시켜 사건의 크기를 축소시킴으로써 클리셰를 비트는 동시에 착실하게 클리셰를 이용하는 영리한 구조를 지녔어. 생활 감각이 살아있는 만담같은 대화 중심의 각본도 이 드라마만의 차별화 요소 중 하나야. 아사미의 N회차 인생을 들여다보면 다시 태어나도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놀면서 전교 1등이 가능하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거든. 노력에 따라 미래가 좌지우지되긴 1회차와 마찬가지야. 다만 어린 시절 어른의 시선으로 친구 아버지와 유치원 선생님의 불륜의 기미를 눈치채서 막는다거나,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몰려 해고당했던 중학교 선생님의 누명을 벗겨줄 수는 있어. 물론 ‘죽은 친구를 되살리거나, 많은 사람들을 구하거나, 구세주가 되는 히어로’에 비하면 ‘재미없는’ 2회차 인생인 건 분명해. 그럼에도 아사미가 몇 번이고 끈질기게 지켜내는 정기 미션들은 재미는 조금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직결된 일상의 문제들이야. 그럼 미리 알고 있는 부정적 사건은 전부 피할 수 있을까? 아사미는 전 남자친구와 만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면서도 어떤 삶에선 끝을 아는 인연을 다시 시작하기도 해. 그리고 새로운 주변 환경의 변수들로 인해 결과를 바꿀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이런 에피소드들이 [브러쉬 업 라이프]의 단단한 코어 같아. 인생을 바꿀 기회가 주어져도 이번 생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별은 쉽지 않은 선택이고, 똑같은 삶을 반복해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는 작가의 가설에 공감하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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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올>과 닮은 점
아사미의 마지막 인생까지 보고 난 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가 떠올랐어. 표현적 측면에서 [브러쉬 업 라이프]와는 극단에 있는 영화야. <에.에.올>에는 기본적으로 큰 줄기의 삶이 있고, 여러 선택들에 따라 갈라진 수만개의 에블린(양자경)이 존재해. 에블린은 멀티버스 속 여러 버전의 자신들을 발견하는데, 지금 버전의 내가 가장 볼품없다는 걸 깨닫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었을까? 에블린이 후회를 딛고 현재를 택하는 이유는 이 버전의 삶에서만이 가능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어. [브러쉬 업 라이프]의 아사미도 인간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2회차부터 오로지 내세를 위한 현세를 살아가는데, 큰 사건은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직업들을 택함에 따라 여러 버전의 아사미가 탄생해. 그 과정에서 가까웠던 사람과 남이 되기도 하지.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관계는 가족과 소꿉친구 나츠키(카호)와 미호(키나미 하쿠라)였어. 그런데 이상하지. 가장 덕을 쌓았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츠키, 미호와 처음으로 친구가 아니었던 가장 외로운 인생이었거든. 현세를 대가로 치른거야. 그건 좋은 삶이었을까? 보통의 여자들의 대화를 엿보는 기분으로 낄낄대며 지켜보던 아사미의 마지막 인생 끝엔 예상치 못했던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 난 인연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워질때마다 다른 우주의 나, 혹은 내세의 나를 기대하는 습관이 있어. 적어도 다른 세상에선 원하는 형태의 관계이길 바랐거든. 그런데 그 쓸쓸함을 포함해서 지금 인생의 결말을 전부 안다 해도, 내세에 인간이 될 수 없다 해도(갯강구는 아니길..) 같은 삶을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 그래야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몇백년이고 이 삶을 반복할거라고 생각했어. 누군가 나를 위해 한 번은 다시 살아주길 바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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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1
각본가 바카리즈무는 내세를 안내하는 접수원을 연기했어. 자신이 쓴 드라마에 대부분 주조연으로 출연하곤 해. 연기도 잘하지만 어떻게 일상적 대화의 순간들을 여자의 언어로 능청스럽게 옮겨 담을 수 있을까 신기하더라고. 이에 대한 인터뷰에서 “여자의 마음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일부러 쓰려 한 것은 아니고, 남자들도 이런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 남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을 그렸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어. 게다가 러브라인이 전혀 없는 이야기라는 점이 신선한데, 실제로 프로듀서와 이 문제로 논쟁을 했다고 해. “결혼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여러 방식의 삶이 있으니 각각 행복하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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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2
소메타니 쇼타가 아사미의 동창으로 나와. 전혀 성공할 수 없는 실력의 뮤지션으로 공감성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역시나 기가 막히게 소화했어. 참 좋아하는 배우야. 여성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라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도 남우조/주연상 수상은 없었는데, 그 와중에 소메타니 쇼타가 남우조연상 3위에 올랐어. 남다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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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포인트03
199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동시기를 살았던 세대라면 공감할 전자기기나 게임기부터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음악, 만화 등 추억의 일본 문화를 엿볼 수 있어. 다마코치를 키우는 초등학생 아사미, 만화책 [NANA]를 읽고 드라마 [굿 럭]을 보는 중학생 아사미 등 어? 저거! 를 종종 함께 외치게 될거야. 아사미와 나츠키, 미호의 '드라마 클럽'에서 언급된 드라마를 정리한 리스트가 있으니 참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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