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녀농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금메달을 땄습니다. 성급한 예측일 수 있지만 이번 동반우승이 한국

  🏟️ 월드컵 이후 미국 축구인기 상승, 메시 효과일까? ⚽


월드컵 이후 미국에서 축구 시청률이 급증했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축구(MLS)만 아니라 유럽축구를 보는 시청자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10월13일 공개된 닐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축구 팬이라고 밝힌 미국인 숫자는 7520만명으로 전년 7월 대비 13% 늘었고 MLS 팬은 28% 증가했다고 합니다.

조사결과에 고무된 MLS 커미셔너(돈 가버)는 미국인의 축구에 대한 관심증가에 대해 “올 여름이 아니라 월드컵 개최지가 결정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월드컵 개최국에서 월드컵 이후 축구관심이 높아졌다?’ 다른 나라 같으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텐데 미국이니까 뉴스가 되는 것이겠죠. 미국에서 축구는 마이너종목 취급을 받으니까요. 

미국 스포츠시장은 4대 스포츠로 대표되죠. 1876년에 시작된 프로야구(MLB) 이후 1917년에 출범한 아이스하키(NHL), 1920년에 창설한 미식축구(NFL), 1946년에 출범한 농구(NBA)가 메이저 종목으로 군림하는 시장입니다.

미국스포츠 시장에서 축구는 4대 메이저 종목의 틈새에서 그야말로 생존이 우선인 마이너종목 취급을 받고 있죠. 사실 축구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프로리그 하나쯤은 있는 가장 글로벌 종목인데 유독 미국에서만 비주류 종목 신세입니다.

그런데 월드컵 이전과 이후 미국에서 프로축구(MLS)에 대한 위상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간에 유럽리그에서 뛰던 세계적인 스타 메시가 MLS에  합류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늘 휘슬 레터는 월드컵개최국에서 축구인기가 올라갔다는 당연한 사실은 생략하고 미국프로축구(MLS)의 생존역사와 메시효과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메시는 북중미 월드컵 개최가 결정된 2018년부터 5년 지난 2023년에 인터 마이애미(MLS)에 입단했고 이번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해 마지막 결승전까지 팀리더로 활약하며 미국 팬들에게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인터 마이애미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찬 메시입니다.


    🎙️ 오늘의 이야기

1. 사라졌던 미국프로축구 다시 탄생시킨 것은 FIFA

2. 후발리그 MLS가 지켜온 철칙  

3. 메시 효과

    ① 사라졌던 미국 프로축구 다시 탄생시킨 것은 FIFA 
  
    ✅ 1994년 미국월드컵 개최지 선정조건
    •  사실 미국은 이번 월드컵 공동개최 이전인 1994년 단독으로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이 있습니다.
    •  1994 월드컵 유치경쟁이 벌어졌던 당시(1988년)에도 미국은 세계최고 수준의 경기장 인프라와 시장규모를 앞세워 경쟁에 나섰던 모로코나 브라질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가진 후보지로 평가되었죠.
    • 개최지 결정권을 가지 FIFA 역시 미국이 미식축구경기장을 활용해 경기장건설 비용을 아끼면서 안정적인 대회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단 한가지 결점이 개최지를 결정할 시점에 미국은 프로축구리그가 없는 곳이었다는 것. 1968년에 출범했던 프로축구리그(NASL)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1984년) 축구 불모지였던 기간에 개최지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 당시 FIFA는 세계 최대 스포츠시장인 미국에 축구도 뿌리내리게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던 참이었는데 ‘프로축구 리그’ 창설을 개최조건으로 내걸었죠. 그리고 월드컵 개최 2년뒤 MLS가 출범했습니다.

        ✅ 한때 24개 팀까지 커졌던 NASL
    • MLS 이전에 있었던 NASL(1968-1984) 역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문에 출범한 리그입니다. 
    • 그때 월드컵 중계가 미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1967년 2개의 프로축구리그가 동시에 출범했는데 1년만에 망하자 1968년 2개의 리그를 통합해 17팀으로 출범한 게 NASL.
    • 하지만 NASL도 1년 만에 5개 팀으로 쪼그라들면서 1970년 초반까지 간신히 운영되고 있던 차에 1971년 창단했던 뉴욕 코스모스가 1975년 당대의 스타 펠레를 영입하면서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게 됩니다.
    • 코스모스 구단은 브라질에서 은퇴한 펠레를 당시로서는 거액인 약 450만 달러(3년)에 영입했는데 코스모스의 1978년 팀 평균관중은 4만명 이상이었고 ABC 방송이 전국으로 중계할 정도였습니다.
    • 이후 다른 구단들도 유럽 스타들을 영입하면서 NASL은 24개팀까지 확장되기도 했는데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 NASL이 망하면서 남긴 교훈
    •  NASL이 망한 원인 중 가장 큰 요인은 스타영입으로 흥행을 주도한 코스모스의 모델을 따라한 여러 구단들이 과다한 인건비지출로 줄줄이 재정위기를 맞게 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 팀 수가 단기간에 24개 팀으로 증가하면서 선수수요가 늘어난 것, 중계권 계약이 끊긴 것 등도 재정위기를 가속시켰죠.
    • 리그가 미국 팬들 취향에 맞춘다면서 만든 “슛 아웃” 규칙이나 오프라인 변경, 보너스 승점제도 등은 오히려 정통 축구 팬들을 내쫓고 FIFA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역효과를 발생시켰답니다.
    • 결국 1984년 들어 9개 팀만 남게 된 NASL은 1985년 시즌을 앞두고 문을 닫게 됩니다.
         ② 후발리그 MLS가 지켜온 철칙
       
        ✅ 중앙집권방식으로 비용을 통제
    • 월드컵이 끝나고 2년뒤인 1996년 4월 6일 10개팀으로 출범한 MLS는 리그가 선수계약을 통제하는 ‘단일 법인(single-entity)’ 구조를 선택합니다.
    • 단일법인은 리그가 하나의 회사자격으로 선수 계약을 직접 보유하고, 구단 운영자는 리그의 투자자가 되는 방식입니다. 구단끼리 몸값 경쟁을 벌이다 리그와 구단이 함께 무너진 NASL의 실패를 막기 위한 장치로 보면 됩니다.
    • 리그차원에서 선수 비용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인 선수영입에 관한 규정은 다섯단계로 통제되게 만들었고요.
    • 선수와의 계약 체결 단계부터 영입경로, 지급연봉 액수, 선수를 내보내는 방식, 이적료수입을 쓰는 용도 등 각 단계마다 과다지출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이 걸려있죠.

        ✅ 로컬 룰 폐지 및 축구전용 구장건립으로 수입원 확보
    • 미국 팬을 위한 규칙으로 만들었던 “슛 아웃” 등은 전부 폐지하고 FIFA 룰을 지키기로 합니다. 전통 축구팬에게 어필하기 위한 방침이죠
    • 출범 후 2개구단이 문을 닫는 위기도 있었지만 1999년 2만석 규모의 첫 축구전용구장이 개장되면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됩니다.
    • 그동안 6-7만석 규모의 NFL 구장에 텅 빈 모습이었던 관중석이 꽉 찬 그림으로 바뀐 모양새만이 아니라 구단소유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구단이 가져가는 모델이 생긴 것입니다.
    • 물론 프로리그에서 발생하는 중계권수입이나 상품화사업 등은 시즌의 흥행여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다른 리그와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비용지출에 관한 강력한 통제장치가 전구단에게 작동하기 때문에 수익성 확보가 보다 용이해진 것이죠. 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입니다.

       ③ 메시 효과 
       ✅ 미국축구에서 뛰었던 3명의 세계적인 스타

    • 미국으로 건너온  첫번째 스타는 1975년 NASL 시절 뉴욕 코스모스가 영입했던 당시 34세의 펠레입니다. 브라질 팀에서 은퇴 후 미국으로 왔고 3년 450만달러 조건으로 알려졌습니다.
    • 두번째는 2007년 LA 갤럭시가 영입한 당시 31세의 데이비드 베컴입니다. 5년간 기본 연봉 650만달러에 각종 수입을 배분 받는 옵션까지 합치면 상당한 보수였습니다. 베컴 계약의 핵심은 구단수익의 일부를 배분 받는 것과 은퇴 후 신생구단을 2500만달러에 살 수 있는 조건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 세번째 스타가 바로 2023년 인터 마이애미가 영입한 당시 36세의 메시죠. 연봉은 수익배분금을 포함해 연간 7000만-8000만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펠레와 베컴이 남긴 것 

    • 펠레는 앞서 얘기했듯이 구단(코스모스) 관중이 4만명에 달하게 만들고 리그(NASL)가 24개 팀까지 커지는데 기여했습니다. 다만 이를 본 다른 구단들이 앞다투어 스타영입 경쟁에 나서는 바람에 재정적자 도미노 현상이 생겨 리그자체가 문을 닫고 말았죠.
    • 베컴에 대한 평가는 다소 박한 편입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미국에서도 ‘축구가 팔린다’ 라는 것을 증명한 점입니다. 입단 첫해부터 유니폼 판매와 원정 경기 관중이 크게 늘었고, 리그 전체의 시즌티켓과 스폰서 수입도 함께 증가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런 흥행이 리그 확장의 동력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 베컴이 MLS 규정의 변곡점을 만들었다는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 첫째, 리그는 그를 위해 샐러리캡을 넘는 연봉을 줄 수 있는 지정선수(DP) 규정을 만들었죠
    • 둘째, 베컴의 계약에는 은퇴 후 MLS 확장 구단을 2500만달러에 살 수 있는 옵션이 있었습니다. 이 옵션으로 2018년에 창단한 인터 마이애미 구단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베컴을 곱지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첫 시즌(2007)은 부상으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고, 2009년과 2010년에는 임대선수 자격으로 AC 밀란에서 뛰면서 팬들의 격한 반발을 사기도 했죠. 

      

       ✅ 메시 효과는 ‘은퇴 리그’로 불리던 MLS의 오명을 벗기는데서 시작   

    •  메시는 MLS에서 영입한 3명의 스타플레이어 중 가장 나이 많은 선수(36살)였죠. 하지만  그는 입단후 3년동안 리그스컵(2023), 서포터스 실드(2024), MLS컵(2025) 우승을 이끌었고 MLS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MVP(2024·2025)로 선정되며 나이를 잊은 듯한 실력을 과시합니다. 
    • 세간에서 얘기되는  메시 효과는 그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면서 ‘미국축구를 바라보는 눈’을 바꿨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 그가 오기전까지 MLS는 축구계에서 한물간 선수들이 은퇴 직전에 오는 ‘은퇴 리그’로 조롱받고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베컴부터 티에리 앙리, 프랭크 램파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설렁설렁 뛰면서 돈이나 벌다가 축구인생을 마무리하러 오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 하지만 36살의 메시는 달랐습니다. 미국으로 올때 그는 아르헨티나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약속 “저 자신과 새 클럽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속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 주려 노력할 겁니다”을 지킨 것이죠.
    • <메시 효과(The Messi Effect)> 의 저자 폴 테노리오도 메시가 마이애미에서 ‘설렁설렁’ 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으로 증명되었다고 했습니다. 
    • 돈 가버 MLS 커미셔너도 메시 효과의 진정한 의미는 “북미(北美)도 최상위 수준의 남자 1부 축구 리그를 지탱할 수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 그가 뛰고 있는 인터 마이애미의 구단 가치는 2021년 5억 2500만 달러에서 2026년 현재 14억 5000만 달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하지만 그가 끌어올린 것은 소속구단 가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 오자마자 그는  애플TV ‘MLS 시즌패스’ 구독자 수를 두 배 이상 증가시켰고 원정 팀은 그를 보려 몰리는 관중을 수용하기 위해 NFL 경기장으로 옮기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인터 마이애미 원정 경기 티켓이 2차 시장에서 액면가의 100배 넘게 만든 것도 메시 때문입니다. 그가 MLS 리그 전체를 격상시킨 게 바로 메시 효과인 셈이죠.

    오늘 휘슬 레터는 월드컵 개최국인 미국에서 축구팬이 늘어났다는 당연한 이유 뒤에는 메시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조만간 '쏘니 효과' 로 리그는 더 성장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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