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별한 의뢰: 아무래도 문구 제작과 프로젝트 일이 주로 많다 보니 개인 책 제작 문의는 모두 조금 적어도 좋아를 통해 안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올해 가깝게 지내는 책방 카프카의 밤으로부터 특별한 책 제작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카프카의 오랜 손님인 희자 님에게 지난 한 해 동안 모아 온 일기 기록물이 있는데 책으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 수소문한 것이 저에게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2. 희자 님: 오늘은 독립출판물 간병일기 제작기와 처음으로 작가로의 삶을 조금 즐기고 있는 희자 님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간병일기의 작가 희자 님은 70대의 여성으로 평생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1년 반을 근무하기도 하셨죠. 

3. 간병일기의 시작: 남편분에게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오자 직접 보살피며 남편의 상태와, 일과, 간병의 어려움과 주변인들에 관한 일기를 조금씩 적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021년 2월부터 11월까지 담담하게 이어가는 40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는 저로서는 많은 생각과 감정을 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4. 영감과 배움: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고, 배우고, 성장하고, 더 연결되고 나아가는 세계만 편식하듯이 탐독하는 저에게 침대만큼 좁아진 생활 반경 속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희자 님의 이야기가 큰 영감과 배움이 되어주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하니 지나치게 과거에 붙잡혀있지도, 그리고 미래를 향해 뛰거나 서두르지 않는 지금 현재에 맞춰진 문장들이 가진 힘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요.

5. 본문 디자인: 책의 본문은 희자 님과 친구 분들을 위해 저시력자용으로 제작된 서체와 나름의 가이드에 맞춰 준비했습니다. 제가 디자인한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유용한 서체를 실제로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어서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뿌듯)

6. 표지 디자인: 책의 표지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희자 님과 카프카의 밤에서 정성껏 준비해주신 사진을 보면서 입고 계신 의상에서 착안하여 노란색을 빌려왔고, 남편분께서 사용하시던 보행기의 손잡이 바 bar가 가진 굴곡을 가지고 간결한 도형을 만들었습니다. 제목과 부제의 글과 함께 적절하게 배치해서 어떻게 보면 (짧은 일기로 구성된 책이니) 시집 같다는 인상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7. 초판 완성: 작업하는 내내 이렇게 근사한 이야기가 저에게로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꺼운 분량도 분량이었지만 책으로 작업하면서 실제로 읽고 생각에 잠긴 적도 많다 보니 책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신중하게 샘플을 만들어가며 완성된 초판 책이 나와 다행입니다. 

8. 추천사: 독자를 생각하고 놀라운 전략이 들어간 요즘의 책들과 달리, 매일을 기록하는 일이 다름 아닌 삶이었던 분의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은 채 물성이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병일기를 누구에게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2021.3.19.

지난밤 꿈엔 친정아버지가 나타나셨다. 나의 꿈엔 잘 나타나지 않으시는데. 여행 중인 나에게 나타나서 엄마와 헤어지기로 했으니 자기 고향 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신다. 살아계실 때 의좋게 잘 사셨는데 왜 그곳에 가셔서 헤어지려고 하실까? 생각했다.

아침에 카톡을 열어보니 서울의 숙자가 죽음에 관한 연구를 하신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죽음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신체의 변화가 오는데. 체중 감소, 식욕 감퇴, 쇠약, 부종, 정신착란, 불안, 흥분 같은 정신적 증상, 음식 삼키기가 힘들고 수면시간이 길어지고 세상사에 관심이 없고 소변 배출량이 감소하고 가래 끓는 소리, 혈액 순환 장애로 푸른 자줏빛 반점이 생긴다고 한다.

“죽음은 사방이 꽉 막힌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도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마지막 떠나는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다.

ㅡ 간병일기 中에서

§ 구매처: 카프카의 밤, 나락서점, 마이 유니버스

* 추신: 글쓰기 커뮤니티 조금 적어도 좋아가 올해 마지막 시즌 멤버십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스토어 추가 혜택이 드리고 있으니 원하는 모임과 함께 기분 좋은 시작을 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