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장 장재열입니다. 지난 레터를 보내드린 뒤로 비 오는 날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지난 2주가 정말 정신없이 바빴는데요. 밤 10시가 되면 노트북과 휴대폰이 꺼지도록 디지털 디톡스 설정을 해 둔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일이 많았답니다.


그럴 때마다 '나 월간 마음 건강을 만드는 사람이잖아.'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하루에 딱 5분이라도 멈춰 서서 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일에 쫓길 때는 그저 비 오는 게 더 속도를 늦추고 불편하기만 했는데, 가만히 바라보며 운치를 느끼다 보니 마음을 조금 덜 쫓기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여러분은 요즘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저처럼 숨 돌릴 틈 없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라면, 이번 레터가 잠깐 쉬어 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리해서 다 읽지 마시고, 하루에 한 꼭지씩 천천히 나누어 읽으셔도 참 좋겠네요.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 한 눈에 보는 오늘의 마음건강
① 리추얼 | 매일 아침에 하는 체크인 <셀프 호텔링>
② 인터뷰 | 월간 마음건강 책임 에디터, 김민정
③ 이달의 마음건강 강연 및 교육 정보
매일 아침에 하는 체크인🛏️
셀프 호텔링
editor 월간 마음건강 편집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여러분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부터 켜서 밤새 쌓인 카톡과 메일을 확인하거나, 영혼 없이 SNS 피드를 새로고침하며 하루를 시작할 겁니다. 그러고는 쫓기듯 욕실로 달려가 출근 준비를 하느라 바쁘죠. 정신없이 허둥지둥 집을 나서기 바빠, 내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 헝클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이불과 베개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팽개쳐진 침대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설 때면, 마음 한구석엔 왠지 모르게 시작부터 일상이 어수선하게 꼬이는 듯한 은근한 찜찜함이 남죠. 하루의 첫 단추를 어지럽게 채운 셈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나를 위해 딱 1분만 내어 침실을 5성급 호텔로 만들어보는 아침 리추얼, ‘셀프 호텔링’을 추천합니다. 멀리 떠나는 휴가가 아니더라도 매일 아침 내 공간을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마음 테라피가 되거든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이리저리 뭉개거나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과감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발을 땅에 디디세요.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내가 온기를 나누었던 이불을 넓게 펼친 뒤, 양손으로 끝을 잡고 가볍게 펄럭이며 밤새 쌓인 먼지와 눅눅함을 털어내 주는 거예요. 매트리스 위에 이불을 평평하게 펴주고, 밤새 내 머리 무게를 견디느라 푹 꺼지고 납작해진 베개는 양손으로 팡팡 두드려 솜의 볼륨을 풍성하게 살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이불의 상단 깃을 호텔 침구처럼 한 뼘 정도 깔끔하게 아래로 접어 내리면 끝입니다. 시곗바늘을 확인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음을 알게 될 거예요. 딱 1분의 움직임으로 내 방은 순식간에 아늑한 휴양지의 정취를 풍기게 되는 거죠.


겨우 침대 하나 정리했다고 내 삶이나 멘털에 뭐가 그리 달라질까 싶지만, 이 사소한 몸짓 속에는 아주 놀라운 심리학적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손으로 이불을 반듯하게 정돈하는 행동은, ‘내가 오늘 하루의 첫 번째 과제를 내 의지대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성공해 냈다’는 작은 승리의 경험을 뇌에 아주 강렬하게 각인시켜 주거든요.


우리는 매일 회사나 학교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부딪히고, 타인의 감정에 치이며 무력감을 학습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밖에서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어 돌아올지라도, 밤늦게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깔끔하게 세팅된 침실이 나를 온전히 환대해 주는 순간을 마주해 보세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완벽히 정돈된 나만의 안전 기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은 즉각적인 안도감과 함께 내일을 살아갈 회복탄력성을 선물 받게 될 테니까요.

🎤 엄마를 살리려고 나를 죽이진 않을 거니까
interviewee. 김민정 (월간 마음건강 책임 에디터, 작가)
interviewer. 장재열 (상담가, 작가)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월간 마음건강의 책임 에디터이자, 독립 출판물 『쇼를 망친 돌고래』 작가, 민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공간에 인터뷰이가 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웃음)


Q. 사실 저는 민정 님을 곁에서 본 시간이 적지 않은데도, 글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밝고 씩씩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강아지 (똥)자루와 푸근한 미소의 착한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 아마 책을 안 읽은 주변 분들도 대부분 그렇게 보실 것 같거든요.

네, 맞아요. 보통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강아지랑 남편이랑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틀린 말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분들이 제 책을 읽어줬으면 했어요.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나랑 비슷한 사연이 있었구나' 하고요. 


Q. 제목이 《쇼를 망친 돌고래》예요.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다이빙 에세이인가 했는데(웃음), 읽고 나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죠. 이 돌고래는 누구인가요? 민정 님인가요?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쇼를 망친 돌고래’는 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빠이기도 해요. 제목 자체는 저보다는 오빠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원가족에게서 벗어나려고 평생 발버둥을 쳤거든요. 근데 오빠는 달아날 힘이 없었어요. 정말 선량하고 순한 아이였는데 부모의 결함을 온몸으로 다 빨아들이며 버티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엄마를 때리기도 하고, 구치소에 다녀오기도 하는 소위 패륜아가 되어버렸죠. 유난히 착하고 똑똑하던 돌고래가 좁은 수조에 갇혀서 채찍질을 견디다가, 끝내 무대 위에서 조련사를 공격하고 쇼를 망친 것 같았달까요. 마치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같았어요. 그런데 책이 다 나오고 나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쇼를 망친 건 돌고래가 아니라 조련사라고요.


Q. 조련사는 아마도 어머니를 말씀하시는 걸 테죠? 책의 1장은 그 어머니, 인숙 씨의 이야기로 시작하던데요. 

복도식 아파트에서 수많은 발소리 중에 엄마 발소리를 귀신같이 골라내던 아이라고 스스로를 묘사하신 게 떠올라요.

맞아요. 아빠의 도박으로 이혼한 뒤 저희를 혼자 키우던 엄마가 점점 술을 찾았어요. 현관 비밀번호 틀리는 소리만 들려도 알았죠, 오늘 취했구나. 그럼 자는 척이 상책이었어요. 제일 서러웠던 건, 오빠에겐 게임이라는 도피처가 있었는데 저한텐 없었다는 거예요. 피할 데가 없으니 오히려 더 똑바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Q. 그런데 민정 님은 그 시절에도 숨기질 않았다면서요. 우리 어릴 때는 일기장을 담임이 전부 읽었잖아요. 그렇게 일기 검사받던 시절에 엄마가 술 먹고 현관에서 잤다는 걸 그냥 써버리고, 학급 교환 일기에도 집안 얘기를 적어서 교무실에 불려 가고.

네, 친구들은 보통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상했어요. 이 상황 중에 내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왜 말을 못 하지?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굳이 말 못 할 이유도 없잖아요.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어." 하고 먼저 말하기도 했어요.


Q. 저는 이런 민정 님의 성격이 늘 인상적이었어요. 가족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은 대개 자기 연민에 빠지거든요. 그런데 민정 님은 연민은 거의 없고 '자기 옹호'가 기본으로 깔려 있어요. 그 기질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어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기질 검사까지 받아봤는데 낙천성이 100점, 사회적 민감도가 99점이 나왔어요. 보통 이 둘은 같이 안 간대요. 민감도가 높으면 남 눈치를 보며 자책하기 쉬운데, 저는 남이 기분 안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면서도, 그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명백히 피해자고, 저 사람들(부모, 형제)은 사정이야 있겠지만 어쨌든 가해자다. 그 구분이 저한테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 같아요.

Q. 근데 저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 혼자 어떠한 동력이나 보호도 없이 혼자서 계속 독한 년으로 버티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 '동력'이 제일 궁금해서 찾아봤는데요, 책 말미에 남편부터 시작해서 열 명이 훌쩍 넘는 친구분들이 글을 써주셨잖아요. 추천사라고 해야겠죠? 보통 추천사는 권위자나 유명인이 쓰는데, 다 주변인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추천사가 아니라 '증언록'이라고 느꼈어요.

그 말씀 듣고 생각해 보면 자라는 동안 저는 주변에 좋은 어른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20대 중반까지 어른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심했고요. 대신 저한테는 늘 힘이 되는 또래 집단이 있기는 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엔 '화니'라는 단짝 친구가, 결혼 후에는 남편이 제게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줬죠. 


Q. 결국 지금은 내가 선택한, 화목한 가정 속의 한 구성원이 되셨잖아요. 이제는 불행이 끝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사실은 여전히 그러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죠? 원 가족 안에서는요.

맞아요. 사실 제 고통은 끝난 게 아니거든요. 엄마가 살아 계신 한, 아빠가 언제 또 돈 떨어져서 나타날지 모르는 한, 오빠가 지금은 직장 다니며 마음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는 한 끝은 안 난 거죠. 그래서 20대 때까지는 정말 괴로웠어요. 저는 딱 떨어지는 결론이 나야 하는 사람인데, 완전히 가족과 절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복될 가정도 아니고.


Q. 독하게 선을 긋고 사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또 완전히 절연하지는 못했어요.

맞아요. 책을 쓰느라 어린 시절을 자꾸 들춰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엄마가 저를 괴롭게 한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 어설프지만 분명 사랑이었던 순간들이 자꾸 보이는 거예요. 물론, 자식에게 필요한 방식은 절대 아니었지만요. 너무 밉다고 쓰면서도, 어느 순간엔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Q. 그 사랑을 인정해버리면 보통은 거기에 다시 붙잡히잖아요. 그런데 민정 님은 안 붙잡히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더 편해졌어요. 가해자인 엄마는 절대 나를 먼저 못 버리고, 피해자인 나는 엄마를 버릴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칼자루를 제가 쥐고 있달까요. 그래서 제 마음이 괜찮을 땐 연락하고, 다시 가해자가 되려 하면 딱 거리를 둬요. 끊었다가 이었다가, 그 주도권이 저한테 있다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사실 나를 괴롭히는 관계에서 못 벗어날 때 많은 사람이 갖는 생각 중 하나가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거든요. 근데 살아보니 그게 진짜 큰 착각이더라고요. 회사도 나 없이 잘 굴러가고,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살려고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생각보다 별일은 안 일어나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 있거든요. 그 믿음만 있으면 첫발은 떼져요.


Q. 그 말이 결국 비슷한 처지인 사람에게는 '나도 내 선을 그어도 되는구나' 하는 용기가 되어 주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마지막 순서가 남았는데요, 공통 질문입니다. 요즘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요즘 제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죄책감과 싸우고 있는 분들’이에요. 그 대상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오랜 친구든 간에 뒤틀린 관계 속에서 내 선을 긋고 한 발짝 걸어 나온다는 건 쉽지 않거든요. “너를 먼저 챙겨라”는 말 자체는 쉽지만, 나를 얽매던 관계를 스스로 깬다는 것 자체가 꽤 큰 고통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 때문에 선을 긋고 나서도 ‘내가 너무 매정했나? 내가 예민한 걸까?’라며 끊임없이 자기 검열의 지옥에 갇히기도 해요.

 

그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이거예요. “당신의 생존을 위한 이기심은 언제나 옳습니다.” 상처 입은 기억 위에 억지로 아름다운 꽃을 심으려 하지 마세요. 세상이 말하는 정답 같은 관계에 맞추느라 나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억지로 용서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거리 두기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저는 믿거든요.

editor 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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