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 '넌 어떤 음악 좋아해?'
047_살아남은 음악 태준 to 오막 & 아임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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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 '넌 어떤 음악 좋아해?'
사람은 변한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변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변한다. 나도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나의 음악적 취향은 뭘까.
내가 좋아하던 음악들은 대부분 내 귀에 새롭게 느껴지는 음악들이었다. 새롭다는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니고, 생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나오는 한 번의 스네어, 변형과 변주, 익숙함에서 벗어나면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음악. 어쩌면 음악적 비꼼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음악을 쉽게 듣고 싶어 한다. 굳이 음악을 들으면서까지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냥 쉬려고 듣는 거지. 나는 좀 더 집중해서 듣고 싶다. 음악을 구성하는 사운드들, 그 사운드들이 그려내는 질감과 색감들.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을 글로 설명하기엔 글솜씨가 현저히 떨어지니 좋아하는 음악을 나열해 보자. 그럼 어떠한 공통점이 발견되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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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ic Paramount - D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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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악기가 정신없이 달린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기 마음대로 달린다. 마치 어떠한 구조나 형식이 없는 것마냥. 정확하게 맥을 짚어주지 않는 드럼과 공간계 이펙터가 장악해버린 기타 사운드는 불안하고 기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래서 한순간, 한 지점에서 헤쳐 모여서 칼 같은 군무를 보여줄 때 쾌감이 크다.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잘 알고 적절히 치고 빠지는 구성은 치밀하게 느껴진다. 소리만 들었을 땐 정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아주 치밀하게 구성된 자기주장. 아무런 질서 없이 자기 생긴 대로 뛰어놀다가 서로 약속된 지점에서 정확한 질서와 규칙 속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너무 좋다. 재즈와 닮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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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하고 착하게 신나는 음악이다. 페스티벌에서 석양이 질 때쯤 태양빛을 받는 밝기가 어울리는 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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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두 곡들이 빈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성향의 음악이라면 Ball은 정반대 편에 서 있다. 뭐가 없어서 좋다. 화려하진 않지만 피아노의 독무대는 어느새 머릿속을 꽉 채운다. 피아노 연주로 만들어진 리듬감은 타악기의 리듬과는 다른 맛을 보여준다. 반복적인 라인에 약간씩 추가되는 사운드, 조금씩 변하는 음들의 길이감이 마치 색을 덧입혀 만들어낸 유화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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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참 안정적인 맛이다. 하지만 빛이 난다. 클래식하다. 뭔가 세련되고 멋있는 척을 안 하는데 세련되고 멋있는 기분이 드는 곡이라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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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 Ayres - Jumping Of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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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틀어놓으면 좋은 노래. 언제, 어디서 들어도 항상 그냥 좋은 노래. 익숙한 맛, 안정적인 맛, 그러면서 질리지 않는 맛. Mac Ayres는 참 신기한 게 앨범에서 별로인 곡이 한 곡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느낌을 유지하면서 질리지 않게 좋은 곡들을 만들어내는지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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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gnito - Don't Turn My Lov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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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 생각 본 적이 없다. 그냥 좋다. 어떤 분석적 의식을 갖기 전에 이미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 그냥 좋은 걸 왜 좋은지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히네. 다시 들으면서 느껴지는 건 완벽한 밸런스. 완벽한 밸런스 속에서 보컬과 베이스가 주고받는 라인들이 너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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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ohtrix Point Never - Sleep Dea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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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음악은 무엇일까? 음악을 구성하는 소리들. 이 소리들은 대부분 악기나 목소리로 구성된 소리들로 인식된다. 어디까지가 음악적인 소리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이 고민이 중요하다거나 필요한 고민인가? 모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고민은 아니겠지만, OPN은 그 고민의 답으로 이런 음악을 제시해 주고 있고 나는 그 음악을 머릿속에 잘 새겨 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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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wai - I'm Jim Morrison, I'm D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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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너무 직관적으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언어가 없는 연주음악은 악기의 소리들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도 더 많고 듣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감상의 결괏값이 나올 수 있다. 보컬이 들어가는 곡은 대부분 보컬을 위해 전체 소리의 가운데 지점을 비워두는 믹싱을 한다. 그래야 보컬이 소리의 중심에 위치해서 깔끔하게 들리고 정확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컬이 빠진다면 소리의 넓은 영역을 각각의 악기들로 자유롭게 채워 넣을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보컬이 없는 연주곡을 좋아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운드를 조합하여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유추하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재미. 나는 짐 모리슨에게 어떤 감정이 들어서 이 노래를 만들었어. 이 한 문장을 음악에서 보컬을 통해 전달하는 것보다, 악기들의 소리로 그 생각과 감정을 비유하면서 전달할 때 더 복합적이면서 섬세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적인 전달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정확한 의사 파악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감정과 생각을 유추하기 위해 음악을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화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아 듣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지점이 포스트락이라는 장르에서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거 같다. 포스트락은 밴드의 사운드로 구성된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감정 전달 방식은 모두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들의 섬세한 스토리텔링에 밴드 사운드의 색채를 입힌 것이 포스트락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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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sions in the Sky - The Only Moment We Were Alone (NPR Music Front Row L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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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락 밴드 중에 제일 좋아하는 두 밴드가 Mogwai랑 Explosions in the Sky이다. 두 밴드는 비슷한 듯 다르다. Mogwai가 사운드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더 어둡고 끈적하고 noisy 하다. Mogwai는 스코틀랜드 밴드고 Explosions in the Sky는 미국 밴드라서 분명 지역의 차이가 만들어낸 표현 방식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과장을 하자면 밴드 사운드를 주로 쓴다는 것 말고 다른 성향의 밴드라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Explosions in the Sky는 자신의 감정을 길고 장황하게 표현한다. Mogwai와 똑같이 noisy 한 사운드를 사용해도 그 결괏값은 항상 밝은 이미지를 향해 있다. Mogwai가 시크한 고양이 같다면 Explosions in the Sky는 사람을 좋아하는 댕댕이 같다. 모든 음악이 마찬가지이지만 포스트락은 정말 라이브 공연을 실제로 찾아가서 들어봐야 한다. 사운드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힘, 음장감은 실제로 들어봐야 알지 글로 혹은 유튜브 영상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음악이 내 육체를 물리적으로 때릴 때 느껴지는 희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이 밴드의 음악으로 흠뻑 샤워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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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혹은 사운드적 통일성 없는 정말 중구난방 음악 취향. 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음악을 찾아보고 들어보면서도 이걸 넣는 게 맞나? 나 이 음악 진짜 좋아하나? 끝없이 자문한다. 글을 포스팅하고 나서도 곡 선정에 있어서 이게 맞나 고민할 것이다. 나한테 음악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끝없이 물어보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어떠한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대상. 결과적으로는 끝없이 물어보고 의심하고 질문할 가치가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참 어렵다.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감정을 언어적으로 정의해서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곡들이 나에게 살아남아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언제, 어디서, 어떤 감정으로 들어도 항상 좋은 곡들이다. 음악적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라인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넓디넓고 음악은 많고 많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음악들이 너무도 많지만, 내 머릿속에 저장된 음악들 중에선 신선한 음악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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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지를 보낸 태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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